ABCD포위망

일본제국이 동남아 진출을 합리화시키기위해 만들어낸 선전구호

1 개요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 이권을 지닌 대표 국가는 미국,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령 동인도가 있었다. 그런데 중일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중국의 원조 루트를 차단하고 대규모의 천연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 일본은 동남아시아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한편 1940년경 나치 독일의 공격으로 프랑스 본토가 함락되고 프랑스령 인도차이나가 일본에게 실질적으로 양도되었다. 이로 인하여 프랑스가 탈락하게 되었고 이에 일본은 ABCD(A: America/미국, B: Britain/영국, China/중국, Dutch/네덜란드)가 일본을 포위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들이 일본을 고립시키려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은 실제로 존재한다기 보다는 중일전쟁의 전황을 타파하기 위한 일본의 중상모략에 가깝다. 당장 저 4개국에 실제로 포위되는 형상이 나올려면 일본이 남중국해까지 진출해야 하는데 일본이 왜 거기까지 가야하는 걸까? 결국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 대동아공영권이라는 개념이 나오게 되었고 이후 태평양전쟁으로 대표되는 파멸의 구렁텅이로 떨어지게 된다.

1.1 배경과 그 결과

1939년부터 일본은 미국, 영국, 네덜란드가 이권을 쥐고 있는 동남아시아로의 무력 진출을 하고 있었다. 네덜란드는 독일에 항복하였고 일본은 독일의 동맹임을 이용해 네덜란드령 동인도을 압박하여 동남아시아의 물자 90퍼센트의 독점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영국의 경우에는 이미 국내에 반일 감정이 솟아난 데다가 일본이 추축 삼국 동맹에 들어가 있어 사실상 독일과 같은 적국의 나라였고 미국은 추축 삼국 동맹의 창 끝이 어디를 향하는지 알고 있기에 일본의 팽창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1]

1940년 미국이 일본에 대한 석유 금수 조치와 철강 수출 제한 조치를 내리면서 일본은 경제적 고립으로 인해 전쟁 수행에 필요한 물자 부족에 빠지게 된다. 일본은 이미 중국에서 전쟁을 수행하고 있었기에 이는 엄청난 문제로 번졌으며 이를 풀기위해 1941년 9월에 열린 어전회의에서 영국과 미국과의 교섭을 진행하자는 결론을 내리고 1941년 11월에 미국에게 타협안을 제시했다. 미국은 네고를 칠 생각으로 일부러 무리한 요구를 제시하는데, 중국 대륙 철수와 삼국 동맹 조약 폐기, 중국의 유일한 합법 정부인 충칭 국민정부 이외의 정권을 승인하지 말라는 등이었다. 하지만 잘못 번역된 문서를 보고 협상의 여지가 없다고 자기 멋대로 판단한 꼴통 일본 정부는 진주만 공습을 준비하게 된다
  1. 본래 이전에 있던 삼국 방공 동맹은 소련을 견제하기 위함이었지만 이때의 삼국 추축 동맹은 미국과 영국이 견제 대상임이 뻔히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