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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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선수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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칰무원 한화이글스 코치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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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코치

두산 베어스 No.86
강석천(姜錫千 / Seok-Chun Kang)
생년월일1967년 12월 7일
국적대한민국
출신지충청북도 청주시[1]
출신학교신탄진초-한밭중-대전고-인하대
포지션3루수, 중견수[2], 유격수, 2루수[3]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89년 1차지명 3순위(빙그레)
소속팀빙그레-한화 이글스(1989~2003)
지도자 경력한화 이글스 2군 수비코치(2005)
한화 이글스 1군 수비코치(2006~2008)
한화 이글스 2군 타격코치(2009~2011)
한화 이글스 1군 타격코치(2011~2012)
한화 이글스 2군 타격코치(2012~2013)
한화 이글스 1군 수비코치(2013~2014)
두산 베어스 1군 수비코치(2015~ )
한화 이글스 역대 주장
장종훈
(1996)
강석천
(1997~2000)
장종훈
(2001)

1 소개

"못치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하는 것이다. 못치면 경기 끝나고 숙소까지 뛰어간다는 생각으로 악을 갖고 야구를 해야 한다"

한화의 소리없는 강자

1990년대 초반 한대화, 1990년대 중반 홍현우, 1990년대 후반 김한수에 가려 단 한번도 스타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본적이 없지만, 묵묵히 이글스의 3루를 지키던 선수. 바로 강석천이다.

팀 동료들이 경쟁하듯 빛을 내뿜던 시절에는 그 빛에 묻혀있어야 했지만, 하나 둘 불이 꺼진 암흑기에도 홀로 남아 고군분투하며 팀을 치욕에서 구하고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선수였다. 강석천은 신인지명된 1989년부터 1990년대 초반 사이 한국시리즈의 단골손님이었던 최강팀 빙그레 이글스의 주축선수였지만, 다이너마이트 타선이라고 불렸던 장종훈, 이정훈, 이강돈 등에 묻혀있는 선수였다.

그러나 이정훈과 이강돈도 떠나버리고, 장종훈의 방망이도 서서히 식어가며 침체기로 빠져들던 1990년대 후반에 강석천은 자신의 전성기를 맞이했고, 1999년 팀의 유일한 우승을 이끌어낸 주역이 되기도 한 선수였다.

2 현역 시절

데뷔 첫 해 강석천은 70경기에 출장해 .289를 기록했고, 이듬해에는 확실한 주전 3루수로서의 입지를 굳히며 역시 2할8푼 대의 방망이 솜씨를 과시했다. 그러나 타격왕(89년 고원부, 91~92년 이정훈), 타점왕(89년 유승안, 90~92 장종훈), 최다안타왕(87년 이정훈, 89~90년 이강돈, 91년 장종훈), 홈런왕(90~92년 장종훈)이 있었기에 2할8푼정도의 기록은 눈에 띄지 못했다.

1990년 쌍방울 전에서 싸이클링 히트를 치고, 1992년까지 매년 두자릿 수 언저리의 홈런, 도루 모두 해낼 수 있는 호타준족이였으나,[4] 1993년 시즌 후반에 부상을 입고 장타력이 사라져버렸다. 외야수 전향도 해보았지만 삼성에서 트레이드된 정영규에게 자리를 빼앗겨 실패하며 영원히 잊혀지는가 싶었으나, 한화의 주전 핫코너 붙박이로 복귀, 홈런은 없어진 수준으로 줄었지만 두자릿수 도루에 2할9푼 근처의 타격을 보여주며 이영우등장 이전까지 한화의 리드오프를 이끌었으며, 1998년 정영규가 망하자 다시 외야수를 보며 올스타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1999년 우승에는 두번째 3할 타율을 기록하고 20도루를 하는등 팀 우승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안습한 연봉으로 주목받은 적이 있는데, 1996년도에 연봉이 고작 2900만원이었다. 당시 야구선수들 연봉은 지금의 그것에 비해 많이 적긴 했지만, 1996년에도 2900만원의 연봉은 주전에 어울리지 않았던 액수. 다행히 1997년부터에는 그럭저럭 주전에 어울리는 연봉을 받았다.

2003년 9월 20일, 대전 KIA 타이거즈전에서 은퇴했다.

2.1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1989빙그레 이글스70135.2893911052423112.481.347
1990113356.28110024
(2위)
11249671651.455.367
1991126465.2751282141157721749.409.342
1992109393.257101215125457931.427.310
199376269.24967161938331221.416.299
1994한화 이글스46150.227348031324521.340.322
199581257.24563103416331217.354.290
1996113357.286102152449441836.373.349
1997123447.322
(7위)
144
(6위)
194
(9위)
734661744.430.379
1998125471.276130235
(5위)
642582028.384.316
1999130433.303131222542652449.397.370
2000123433.286124242749571544.400.349
2001120407.260106181245441933.324.315
200294242.2897011162827722.417.347
2003818.16732003001.278.211
통산(15시즌)14574833.27813422453193543670192459.399.338

3 지도자 시절

3.1 한화 이글스

3.1.1 2014년 이전

은퇴 이후 1, 2군을 오가며 수비, 주루코치를 했었고, 2011년 1, 2군 코치 인사이동으로 타격코치로 이동했다.

코칭스태프 보직 변경 전 27경기에서 팀 타율 2할2푼1리, 경기당 평균 3.0점밖에 못했지만, 보직 변경 후 17경기에서 팀 타율 2할4푼7리, 경기당 평균 4.2득점으로 눈에 띄게 공격력이 향상됐다. 타율 상승의 원인은 바로 짧은 스윙을 강조했다고 한다. 1군에 올라오니 선수들이 죄다 홈런 스윙을 하고 있다하더라. 장전드 디스 이후 타격폼을 수정하여서 소총수는 소총타격으로 전부 고쳐주었다.

이에 강석천 코치는 "성적이 좋지 않으면 스타도 없는 것이다. 팀이 이겨야 스타가 만들어지는 것 아닌가. 상황에 맞는 스윙을 하도록 주문하고 있다. 개인주의로는 절대 안 된다. 각자 해서는 예전 빙그레 시절처럼 좋은 타선은 만들기 어렵다. 하나의 팀으로 생각해야 한다. 각자 역할을 잊지 않고 에버리지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3.1.2 2014년

보직은 수비코치로 송진우 2군 투수코치, 정민철 1군 투수코치와 함께 한화 이글스의 하위권에 큰 일조를 하는 중이다. 수비에서 어이없는 외야 실책이 벌어지면 상당수가 강석천 코치의 수비 시프트로 인한 결과. 역 시프트 그에 따라 2014시즌, 좌익수 최진행과 중견수 피에가 매우 힘들게 수비를 하고 있다. 원래 위치에 있었다면 잡을 수 있는 평범한 외야플라이를 2루타, 3루타로 만들어버린다며 한화 이글스 팬들은 강석천 코치의 퇴진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 중. 코치 WAR 계산법은 없나

피에와 수비문제로 말다툼이 있었는데 욕설이 입모양으로 다나와서 논란이 일었다.

결국 2014 시즌 후 김성근 감독이 새로 부임한 후 10월 27일 코치에서 물러났다.

3.2 두산 베어스

그 후에 조경택과 함께 두산 베어스 쪽에서 모습을 보여 두산 베어스로 간 것이라는 카더라 통신이 유포되었고, 결국 11월 30일 '곰들의 모임'의 신임 코치 환영식을 통해 수비코치로 취업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칰갤에서는 '조강' 지처 드립을 하였다(...)

1군에서 전형도와 같이 수비코치를 맡게 된다.

그리고 역시나(...) 한화때와 다름 없는 무능함을 보여주며 돡무원 권명철과 무한 까임을 맡고있다.[5] 1루 주루코치를 겸임했으나, 강동우를 콜업하면서 수비만 맡는다. 이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어갔고, 팀이 우승을 함에 따라 99년 이후 16년만에 우승 반지를 획득했다.

OSEN 조인식 기자에 따르면 2016년 전지훈련 때 나는 행복합니다를 불렀다고 한다(...). 탈칰효과

2016년 들어서 이미지가 가히 기적적으로 바뀌었다. 두산이 리그 최고 수준의 성적과 함께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 놀라운 수비력을 보여주면서 강석천의 수비 코칭이 팀에 도움이 되고 있다는 인식이 팬들 사이에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덕아웃에서 화면에 잡히기만 하면 늘 선수들과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고 있으며, 특히 어린 호수비한 선수들이 덕아웃에 들어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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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예뻐 죽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6]

또한 수비이닝이 끝나고 들어올 때도 야수들과 열심히 소통하는 모습이 보이고 있는데, 특히 주전 키스톤 콤비 오재원, 김재호와는 토의를 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KBS N Sports의 송진우 해설위원에 따르면,[7] 두산 선수들이 강석천을 굉장히 잘 따른다고 한다. 이에 돡갤을 비롯한 야구 커뮤니티에서도 강석천을 매우 좋아하고 있으며, 도대체 이런 분을 왜 칰무원이라고...라는 반응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4 기타

  • 법 없이도 살 사람들이 많은 한화에서 이정훈 2군 감독과 함께 보기 드문 근성파 선수.
  • 날렵한 이미지와는 달리 3루 수비에서는 구멍이나 다름없었다. 95~98시즌에 황대연(96년 시즌 중 LG로 트레이드), 이민호, 홍원기들에 밀려 외야수 수비를 잠시 하게 된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황대연은 1996년 시즌 중 LG로 트레이드, 이민호가 버거씨병으로 리타이어하고, 홍원기는 두산 베어스로 트레이드되면서 3루수로 복귀한 1999년에 유일무이한 한국시리즈 우승의 일원이 되면서 이는 추억보정으로 어느정도 묻혔다(...). 그 다음 시즌 2000년까지 주전 3루수의 역할을 수행하였으나, 2001년에 어떤 별명 많은 야구선수[8]크보의 대표 꽃미남,[9] 3루수 용병들의 등장으로 입지가 좁아져 은퇴 하였다.
  • 공필성과 많은 공통점이 있다. 호적상 1967년생, 3루수, 선수시절에 돌글러브 수비와 근성으로 유명했던 점, 코치시절의 무능함과 생명력까지. 다만 타격코치나 주루코치로는 어느 정도 역할에 충실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적성에 맞지 않는 수비코치 보직을 맡아 본의 아니게 비난받는다는 소수의견도 있다. 사실 위에서 말한 대로, 현역 시절 수비에서는 구멍이나 다름 없었던 선수를 왜 수비 코치를 시키는지. 이후 2016년부터 공필성이 두산 베어스 2군의 감독으로 부임하며 같은 팀 코칭스태프로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 게다가 둘 다 두산에서 이미지가 바뀌고 있다.
  •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모 연예인과 성빼고 이름이 같아서. 매느님, 원조 강게이로 불린다(...).
  1. 정확히는 현재 청주시와 통합된 청원군 출신.
  2. 1998년 딱 1년동안 주전 중견수였다.
  3. 2001년 후반 김태균에게 주전 3루수 자리를 넘긴 후 이광환 감독은 선발에 방진호라는 선수를 기용한 뒤 공격권이 들어가면 강석천과 교대하는 전술을 사용했다. 종종 선발 2루수로 출전하긴 했지만 극히 일부였다.
  4. 92년에는 도루가, 93년에는 홈런이 하나씩 부족했다.
  5. 한화에서 말이 많던 강석천 시프트를 그대로 보여줬다.
  6. 당시 조수행 선수가 했던 호수비 링크
  7. 2016년 4월 24일 경기 중계
  8. 그 다음 시즌인 2002년부터 1루로 전향.
  9. 2005년 3루수를 전담하기까지 유격수와 3루수를 번갈아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