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사

1 관아의 구성요소

客舍

궐패를 모셔놓고, 관아를 방문하는 관리나 사신들이 머물던 곳으로서 관아에 관련된 시설들 중에서 서열이 가장 높은 시설에 해당된다. 여기에 모셔놓은 궐패란 한양에 있는 을 상징하는 물건으로 왕이 보고있다 수령이 왕의 지시에 따라 고을을 다스리는 의미에서 비치해 두었으며 수령을 비롯한 관원들이 초하루와 보름 그리고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 대궐을 바라보며 절하는 향망궐배(向望闕拜)가 이루어지던 곳이다. 또한 객사는 중앙으로부터 임금의 뜻을 받들고 내려온 사신들을 머물게 하며 접대하던 건물이기도 하였으며, 관찰사가 순시차 들르면 잔치를 벌이거나, 백성들에게 향시를 베풀기도 하였다. 이런 이유로 객사는 각 지방에서 가장 경치 좋은 곳에 세워지거나 관아와 나란히 지어지곤 하였다. 관사(館舍)·객관(客館)이라고도 하였다.

보통 객사 건물은 건물 중앙부에 정청이라고 부르는 건물을 만들어 놓고 그 좌우에 익헌이라고 불리는 길쭉한 형태의 건축물을 연결하는 형태로 만들어졌으며 중앙부에 만들어지는 정청은 좌우익헌보다 약간 높이가 높게 되어 있는 독특한 외관을 자랑한다.

조선시대의 관아 건물들이 구한말과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대부분 파괴되었지만,그래도 객사만큼은 현재까지 살아남은 비율이 많은 편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객사라고 하면 한국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진남관이나 전주 풍패지관, 나주 금성관 등이 있다.

현존하는 객사건물 : 조선전기의 것으로는 전주객사(1473년 이전, 보물 제 583호), 안변객사의 가학루, 고령의 가야관(1493), 경주의 동경관(16세기 말) 좌우 익실 등이 있고, 후기의 것으로는 성천객사 동명관의 강선루, 통영객사, 여수객사, 다대포객사, 흥덕객사, 순창객사가 있고 객사에 딸린 누(樓)로는 밀양객사의 영남루와 제천객사의 한벽루가 있다.

1.1 전주 객사길

전주시 객사가 유명한 이유는 전주 객사길이 유흥가이자 구 도심, 시내이기 때문이다. 대전광역시의 은행동, 광주광역시의 충장로와 비슷한 분위기와 포지션의 시내. 옷가게와 NC 백화점, 맛집, 레스토랑들이 입점해 있다. 전주에서 '시내 가자' 라는 뜻은 객사에 가자는 뜻. 중고등학생들이 많다. 특히 전주국제영화제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2 집이 아닌 곳에서 사망함

客死

, 요양원, 병원처럼 죽음을 염두에 둔 장소가 아닌, 외지에 나가있다가 갑작스럽게 급사하는 것. 주로 심혈관계 질환처럼 건강 상태와 악화 상태의 격차가 심한 병증으로 죽는 경우가 많다.

죽음의 경우 가운데서도 자살과 더불어 가장 불행한 죽음으로 간주되며, 가족친지의 얼굴도 못 본채 죽기 때문에 미련이 남아 죽어서도 악령이 되기 쉽다고 한다. 같은 외지에서의 죽음이라도 전쟁에서 명예롭게 전사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있을지언정 외지에서 돌연히 객사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타살된 경우는 객사라고 부르는 경우가 드물다. 애초에 타살이라는게 외지에서 당하는 경우가 훨씬 많은데다 방식도 인위적이기 때문이다.

객사 중에서도 비행기열차에서 죽는 경우처럼 이동수단 안에서 죽는 극적인 경우가 가장 객사의 전형성을 띈다고 할 수 있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죽을 때까지 철덕[1] 김일성, 김정일세계의 멸망을 거론하는 주제에 자기 앞날은 한치도 몰랐던 여호와의 증인 창립자 찰스 테즈 러셀. 그리고 불로장생을 꿈꾸었으나 썩은 생선내에 파묻혀 돌아온 진시황.

톨스토이는 열차를 타러 간 역에서 쓰러져 역장실로 옮겨졌으나 숨을 거뒀다.

퓰리쳐상노벨문학상을 수상했던 미국의 극작가 유진 오닐은 호텔 방에서 태어나 호텔 방에서 죽었다. 이게 그의 유언이기도 하다(...)

에이서 제품을 산 고객들에게 하는 감사 인사이기도 카더라(관련 글).

2.1 객사의 유형

  1. 날아다니는 이동수단은 암살자들의 표적이 될까 무서워서 못 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