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도vs해동 삼대논쟁

해동검도검도에게 걸었던 3대 시비거리.

1 삼대논쟁이란?

해동검도가 80년대에 급격히 세를 불리게 되면서, 검도 측과의 충돌이 시작되었다. 검도는 <검도:劍道>라는 단어는 자신들의 죽도검도를 뜻하는 고유명사라고 하면서, 자신을 검도 9단이라고 자처한 나한일을 단급 사칭 및 검도 단어의 무단 사용으로 고소하였다. 이에 나한일 측은 검도는 보통명사이므로 독점할 수 없으며, 자신은 해동검도 9단이므로 검도 9단이라고 말했다는 요지의 주장을 하여, 재판정에서는 결국 검도라는 단어는 보통명사이고 나한일의 주장은 문제될 것이 없다는 판결을 내려 검도라는 단어는 개나소나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검도와 해동검도의 악연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검도 항목을 봐도 알 수 있듯이 검도는 일본에서 검도라는 무도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있었던, 검술을 가리키는 일반명사였다. 검도라는 이름의 고유명사가 생겼다고 해서 일반명사로서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므로 이 부분에서 만큼은 해동검도 측의 의견이 더 일리가 있다. 검도가 본국인 일본을 비롯해 어느 나라에서든 이제는 일반명사로서의 뜻으로 쓰이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애초에 이미 있던 일반명사로 이름을 지은 쪽이 잘못이다.

이후 해동검도 측이 세를 불리면서 검도에 대해 디스를 걸기 시작했는데, 이는 앞서의 검도 측과의 원한도 있지만, 당시 메이저였던 검도를 까고 자신들의 위치를 확고히 함으로써 수련자를 떼로 긁어모으고, 창작무술이 근본이었던 자신들의 취약한 기반을 가리고자 하는 데 있었다. 해동 측에서 다양하게 검도를 디스했지만 총체적으로는 3개 주제로 압축할 수 있으며, 90년대와 2000년대 중반까지 무술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늘 이 문제로 시끌벅적했었다. 3개 주제는 다음과 같다.

1.1 왜색논쟁

해동검도 측이 검도를 공격하는데 쓴 가장 큰 떡밥. 간단히 말해서 검도는 독립군 학살하던 침략자 일본군의 무술이고, 해동검도는 고구려 시대부터 전해내려온 고유의 우리검도라는 논리. 해동검도 측이 자부심을 가지는 가장 큰 원천이자, 지금도 일부 유효한 문제이기도 하다.

검도는 80년대까지 굳이 역사나 그런 것을 건드리지 않고 그냥 조용히 수련하는 것을 방침으로 가지고 있었다. 누가 봐도 일본옷인 하카마를 입고 죽도와 호구를 쓰기 때문에 반일감정을 굳이 자극해서 손해를 볼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으며, 수련자들이나 일반인들도 일본의 운동인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국내 사회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었고, 또 대다수의 일반인들은 비싼 운동으로 알려진 검도보다는 쿵후중국무술, 태권도, 합기도 같은 맨손무술을 더 배우려고 했기 때문에 대중의 관심도 그렇게 크지 않았기 때문에 별 문제 없이 지속할 수 있었다.

문제는 딱히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이 점을 당시 신생단체였던 해동검도가 크게 자극시킨 것. 특히 80년대는 국풍81등 전두환 정권의 민족주의 강화 정책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던 때였고, 지금보다 반일감정이 훨씬 심했기 때문에 검도의 약점인 "쪽바리 일본무도를 배우지 말자"라는 슬로건을 해동이 터트리면서 검도는 대내외적인 폭풍에 휩싸이게 되었다.

여기에 드라마 '무풍지대'등으로 크게 이름을 알린 해동검도의 총재 나한일의 후광과, 고구려 전통 검술이라는 드립, 민족검도라는 드립에 의해 해동검도는 대대적인 중흥기를 맞게 되었다. 대규모 사범 연수를 통해 적극적으로 세력확장에 나선 때도 이 즈음. 이후로 해동검도 수련자들은 2000년대 초반 나한일과 김정호의 분쟁으로 인한 재판판결문에 의해 해동검도의 진실이 파헤쳐질 때까지 이 점에 대해 커다란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검도 측의 총재였던 이종림씨는 이런 후폭풍에 대응하고자 한 나머지 "검과 검술을 전해준 것은 우리 나라이며 그게 일본으로 건너가 발전했으므로 결국 검도는 우리가 준 것을 다시 되찾아온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우게 되었으며, 이것은 국제검도연맹의 회원국인 대한검도회의 공식 입장이 되어 있다. 참고로 대한검도회는 검도가 보통명사로 인식되는 걸 막을 수 없게 되자 다른 단체들과 구분하기 위해 붙인 협회명이다. 다만 검도인들 사이에서는 대한검도회라는 단체명보다는, 검도라는 원래 이름으로 불러주기를 바라고 있는 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논리상으로 큰 무리수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애초에 우리가 검과 검도를 일본으로 전파했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전파했다 해도 위 주장처럼 '일방적'이진 않았을것이다. 역사적으로 일본이 고구려나 백제와 많은 교류가 있었지만 교류하기 전에 왜구들이 칼을 들고 휘두르지 않았을까? 물론 아니다. 검술은 영향받은 것도 서로 있을지 몰라도 실제적으로는 각 나라마다 지방에서 다발적으로 발생한 것이다. 우리가 검과 검술을 '일방적'으로 전수했다 쳐도, 이것을 가지고 검도를 우리것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 화약을 중국이 전해줬으니, 윈체스터 소총도 중국 것인가? 전해준 것은 전해준 것이고, 그걸 바탕으로 스스로 그들이 창조해 냈다면 그건 그들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우리나라에서 중국 것이 아닌 것은 거의 없게 되고, 검도는 결국 중국에 귀속된다. 삼국 시대의 환두대도는 중국 한나라의 환수도에서 유래한 것이고, 일본도는 중국 당나라의 당태도에서 발전한 것이니까. 무리수임을 바로 알 수 있다.

그래서 검도인들 사이에서도 무리수를 과감히 철폐하고 당당히 일본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다만 대한검도회의 정책이 이종림 이사의 판단 하에 달려있으니 바뀌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논쟁은 결국 해동검도에게 부메랑이 되어 날아오게 된다.

우선 해동검도 내의 분쟁으로 벌어진 재판 과정에서 해동검도가 기천문심검도에서 갈라져 나온 유파이며, 해동검도의 실체는 현대에 만들어진 창작 무술일 뿐. 지금까지 해온 고구려 기원 운운은 별다른 근거가 없는 개드립이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말았다.

다음으로는 해동이 자랑으로 삼던 베기술이 만주에서 민간인 잡아 칼로 베면서 베기술 연구하던 일본군 장교 나카무라 타이사부로가 창시한 나카무라류에서 유입된 것이며, 그리고 더욱 거슬러 올라가면 유래가 일본육군의 군도술군도의 조법에서 나온 것임이 밝혀졌던 것이다. 이 사실로 해동은 더욱 치명타를 받게 되었다.

검도를 왜놈검술이라고 욕하던 자기들은 뒷구멍으로 조상들 목베던 악질 왜놈 검술을 배우고 가르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에게 매국노가 따로 없다는 비난을 받게 된다.

2010년 현재에 이르러서도 해동검도의 몇몇 관장들이 모여서 이 논리로 검도를 디스한 바 있다. 그러면서 여전히 전통검도인 해동의 장점을 역설했는데, 이미 창작무술임이 밝혀진 마당에 전통드립 치는 것이 병크로 공인되면서 지금은 개그 취급중. 이 부분은 사람들이 그냥 나한일, 김정호와 그 무리들을 병신취급하며 진절머리를 치는 선에서 끝나서 망정이지 사기혐의로 집단 고소를 당해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고구려 검도라고 거짓말을 한 것이 바로 사기고 실제로 그런줄 알고 해동검도에 와서 수련한 수련자가 그간의 수련비용과 정신적 피해보상 등등을 열거한다면...

하지만 이건 무술계의 허세라 할 수 있다. 실제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이어져 내려온 무술은 씨름과 택견뿐이다.[1] 그래서 예전에 태권도도 지금은 사라진 수박 등에서 발전한 전통무술이라 했고 가끔 한국이 세계 무술의 시작점이란 소리도 했었다. 그리고 예전엔 이런 이야기가 통했다. 보통 수련생들은 그말을 믿었고 따로 확인하기도 힘들었다. 뭐 어차피 일본에서 온 무술들을 근본으로 하는 합기도나 대한검도도 우리나라 고유 무술이라고 칭했으며 현대에 와서 그런 소리가 많이 사라졌고 알사람은 안다지만 아직까지도 우리나라 고유무술이라고 가르치고 또 그걸 믿는 수련생이 있으니 무술계가 거기서 거기란 소리다. 단 해동검도는 더 심한게 우리나라 검술이란 점을 세일즈했고 현대에 와서는 정보를 찾아 보기 쉬워졌고 그래서 그런 소리가 안통하는데, 더구나 법정 싸움까지 가서 다 까발려졌는데 아직도 사무랑 같은 소리나 하니 한심하지 않을 수 없다.

1.2 실전논쟁

역시 해동 측에서 내놓은 3대 빅떡밥 중 하나. 해동 측은 자기들은 진검이랑 무거운 목검으로 수련하고, 격자부위를 한정하지 않았고, 치는 것이 아니라 베기를 하며, 보법이 자유자재고 운운하며 죽도랑 호구만 뒤집어쓰고 한정된 부위만 골라 툭툭 때리는 검도는 스포츠에 불과하며 실전성 면에서 해동검도와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우월성을 내새웠었다.

누가 생각해봐도 격자부위를 한정하지 않고 진검이랑 목검을 쓰는게 보다 실전에 가까운 것이 맞기 때문에 검도 측에서는 당장 할 말이 없었고, 나중에 내세우기 시작한 논리는 다음과 같았다.

  • 현실사회에서 무슨 실전인가.
  • 격자부위를 한정하는 것은 그곳이 가장 가격하기 힘든 부분이며, 그 부분을 자유롭게 가격할 수 있다면 다른 부분은 더 쉽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 죽도가 가볍다니 빠른머리는 해 봤나?
  • 목검 무겁다더니 죽도랑 차이없네.

그외 다양한 논리를 내세웠지만 해동 측에서는 모두 비겁한 변명이라고 하며 자신들이 실전제일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여기에는 자칭 <고구려 실전검술>이라는 허세가 자부심이 작용한 것도 있었다.

검도 측에서는 이런 해동 측의 도발에 대해 기본적으로 무대응, 무시한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었으며, 타유파와 교류할 경우 파문한다는 규칙까지 제정했었다. 이 때문에 일제시대부터 검도를 배웠으며 한국의 대한검도회 창설과 운영에 큰 역할을 한 남승희 선생이 타유파 인원들에게 교습을 했다는 이유로 파면당했었다. 검도인들이 크게 아쉬워한 사건이었으며, 남승희 선생은 이종림 이사의 벨트도복, 준거폐지 등에 반발하며 규칙 몇개 바꾼다고 일본색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남승희 선생의 입장에 동조하는 검도인들이 특히 안타까워했다.

당연히 해동 측은 자신들과 한번 제대로 붙으면 바로 깨질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피한다는 것이라며 해동검도 총재였던 나한일/김정호는 대한검도회에 진검승부를 제안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진검승부라는 게 우리가 상상하는 진검 결투가 아니라, 진검으로 짚단베고 촛불끄고 이런 쇼를 하자는 거였다(...).그럼 진검으로 대련하다 사람 죽이면 법의 처벌을 피할 방도는 있더냐 물론 검도 측은 거절했고 해동은 더욱 의기양양.

그러나 지도부에서 금지한다고 해도 실제로 개인 단위로 해동 측과 대련을 해본 경우가 빈발했고, 비공식으로 이루어진 이런 개인 단위의 시합에서 해동이 참담하게 깨졌다는 이야기가 점점 퍼지기 시작했다. 풍부한 대련 경험뿐만 아니라 발구름, 스텝, 체중이동, 그리고 무엇보다 실전검술에서 유래된 검도이기에 실전과는 1%도 관련 없던 해동검도가 상대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검도 측은 격자부위를 제한시키고, 해동은 전신을 타겟으로 하도록 했으면서도 나왔던 결과. 해동 측 수련자 일부가 검도 도장에 도전장을 냈다가 역관광탄 사례도 제법 있다고.

물론 이정도로는 해동은 꺾이지 않았으며, 90년대 후반부터는 자신들의 패배는 검도의 가벼운 대나무막대기 때리기장난질에 익숙하지 않아서일 뿐, 진짜 진검으로 하면 질 리가 없다는 논리를 내세우기 시작했다. 검도인들의 반응은 "비겁한 변명입니다!" 물론 일반인들의 상식으로도 진정 실전성이 있는 무술이라면 죽도를 쓰든 진검을 쓰든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기에, 점점 해동검도에서도 죽도와 호구를 쓰는 도장이 늘어나더니, 이제는 숫제 검도의 연격을 하는 도장도 꽤 있다. 우리에게는 대나무막대기 때리기 장난질은 필요없다더니 독자적인 대련술과 호구를 고안한다며 이상한 호구를 뒤집어쓰고 누가누가더빨리때리나 식의 대련을 하며 세미나까지 여는 곳도 있는 상황. 망했어요

지금은 폐간된 무술잡지 마르스에서도 해동검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발구름시 몸 전체가 앞으로 나가질 않고 제자리에서 발만 움직인다는 등의 지적을 한 바 있다. 이러한 것들이 합쳐져 해동검도의 실전성 우월감은 많이 퇴색된 상태. 진검술에 대한 이해 문제에서도 많은 검도인들이 진검검리를 가르치는 검도의 본을 따로 연습하거나, 거합도를 따로 수련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에 더이상 진검 좀 만져봤다고 우월감 가질 시대는 끝났다고 할 수 있다. 해동의 검법이라는 것도 심검도기천문 등에서 차용한 것이기도 하지만, 당장 창작이 다수인 해동의 검법이 고류 검술에서 유래된 거합도 등에 상대가 될 수도 없다.

1.3 베기논쟁

실전논쟁과 연동되는 빅떡밥. 해동검도가 대한을 깔 때 내세운 것중 정통성은 왜색떡밥, 검리에서 실전떡밥이라면, 퍼포먼스에서는 베기떡밥이 나왔다고 보면 된다.

해동검도 동영상들을 보면 알겠지만, 퍼포먼스가 대부분 뭘 베는 걸로 구성되어 있고, 보통 신문지, 짚단, 대나무 등을 턱턱 잘라댄다. 자를 때의 포스가 임팩트가 있고, 또 벤 다음에는 칼을 빙빙빙 돌리다 납도한다던가, 신선 뺨치는 가오를 잡으며(...) 다음 베기를 준비하는 등의 오도방정을 떨며 마무리를 하는 탓에 그냥 둘이서 있다가 눈에 보이지도 않게 팍 치고 끝나는 검도에 비해서 훨씬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쉽다.[2] 실제 이런 베기영상에 혹해서 해동에 입문한 경우도 많다고.

해동검도가 자신있게 내세우는 것이 바로 이 베기술이었다. 당연하겠지만 그동안 대한검도회는 죽도 검도와 더불어 제정거합, 그리고 120cm정도의 봉을 쓰는 장도(杖道) 까지 포함되어 있는 일본 전검련과는 다르게 죽도 검도만 계속 해 왔고, 검도에 포함된 진검형인 "검도의 본"도 잘 하지 않았었다. 그러다 보니 진검에 대한 이해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수준이었으니, 해동검도가 베기에 대해 많은 노하우를 가진 것과는 달리 짚단도 대나무도 베어본적이 없어 해동검도가 진검베기를 가지고 태클을 걸어도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다만 과도한 퍼포먼스적인 면을 지적하는 정도가 고작. 당연히 해동측은 진검으로 베는 것이야말로 검술의 본질이라며 의기양양했고 실전성떡밥과 맞물려 넷상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논쟁에서 해동측의 큰 무기가 되었다.

사실은 해동검도의 베기술은 일본 나카무라류의 베기술이 유입된 것이었다. 비천 이영식씨는 진검술을 추구하다 나카무라류의 교본을 보고 연구하여 베기술을 터득했고 나중에는 나카무라 타이사부로에게 직접 사사를 받아 나카무라류를 배워 그 정수를 배웠다고 한다. 이영식씨의 단체가 도법협회였는데, 여기서 베기술을 배운 사람들이 80년대말~90년대 초 한창 해동이 세력을 늘려갈 때 사범으로 영입되거나 들어갔고, 이 사람들이 해동의 뛰어난 베기술을 정착시킨 장본인들이다. 초창기 해동의 베기는 매우 형편없었다고 한다. 현재도 해동검도 도장 중에서는 토야마류의 형을 가르치는 곳이 간혹 있는데, 이런 곳이 바로 도법협회 출신 사범들이 운영하거나, 영향을 받은 곳이다.

이들이 들어와 베기술을 정착시킨 것은 좋았지만, 퍼포먼스적인 면에 너무 집착하다보니 나카무라류의 베기술의 본질에서도 멀어지고, 짚단을 베어도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서 있는 무협지적 퍼포먼스도 추구하다 보니 삼각도라는 괴랄한 도검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즉 실전을 위한 베기가 아닌, 베기를 위한 베기가 되어 버린 것.

이 사실이 밝혀지면서 정통성떡밥, 실전성떡밥과 연결되어 해동은 3대논쟁에서 패전하게 되고, 베기논쟁은 실전성떡밥과 함께 검도 측에서 "너는 하루하루 짚단베는 기계일 뿐이지!" 라는 결론을 내리면서 현재는 3대논쟁 자체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2 삼대논쟁이 남긴 것

장점은 그동안 죽도검도에만 신경쓰느라 정작 중요한 것[3]을 모르던 검도 측이 거합이나 검도의 본, 베기 등을 통해 보다 넓은 시야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며, 과거보다는 진검에 보다 신경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왜색논쟁을 통해 검도의 정체성을 숨기기보다는 차라리 확고히 하는 것이 맞다는 공감대를 가지게 된 것과, 해동의 자폭으로 자신감을 얻게 된 것이다. 특히 해동은 수많은 협회분열에 의한 세력 축소까지 합쳐져 더이상 검도측에 대항할 건덕지가 없게 되었고 가끔씩 해동측이 던지는 전통검도 드립은 이미 웃음거리가 된 지 오래다. 검도에서 해동 등의 유사단체를 보는 시각은 거의 자학개그, 슬랩스틱 코미디를 보는 정도. 그냥 태권도처럼 "우리나라의 검법을 만들기 위해 무예도보통지를 참조하고 기천문, 심검도와 일본육군의 검술을 참조하여 만들었습니다." 라고 했으면 될 일이었는데 자폭 코미디를 했다.[4]

단점은 조선세법이나 준거폐지, 벨트도복이나 검도 한국기원설[5] 등의 무리수로 검도인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많은 것. 왜색논쟁을 너무 신경쓴 나머지 이종림 이사가 내놓은 대책이지만 내외적으로 눈가리고 아웅이며 오히려 검도의 전통을 훼손했다는 비판이 많다. 조선세법의 경우도 검도의 검리에 맞춰 복원하여 무예도보통지의 그것과 달라진 점이 많다고 말해지고 있으며, 검도인들은 검도의 시각에서 공공연하게 "검리와 맞지도 않는다"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검도에 삼대논쟁을 걸어 흥했던 해동은 지금은 삼대논쟁에서도 패배하고 대대적인 협회분열, 게다가 얼마전에는 나한일 총재의 공금유용 건까지 합쳐졌고 무술시장도 불경기인지라 관원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더군다나 인터넷에서의 떠돌아다니는 여러 진실들 때문에 인식도 나빠진 상태. 삼대논쟁으로 흥한 해동 삼대논쟁으로 망한 셈이다.

  1. 흔히 나오는 말 중 " 중국은 창이, 한국은 활이, 일본은 칼이 발달했다"라눈게 있는데 반대로 말하면 무기중에선 활밖에 내세울게 없었던 것...
  2. 실제로 최근까지도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검술은 실전성보다는 멋을 추구한 모습이 대부분이니, 그런 영상에 길들여진 대중들의 인식에 더 잘 맞았던 것도 있다. 물론 이런 검술이 실전성으로는 한참 부족할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이치지만...
  3. 아무리 현대에 진검으로 싸울 일이 사실상 없어졌다고는 해도, 무술시장의 원동력은 대중들의 무술에 대한 환상에서 상당부분 비롯되며, 이를 진검이 쓰일 일은 없다는 논리 하에 무시해버리면 치명타를 입을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이 점을 파고들었던 해동검도는 부실한 내실과 자가당착 때문에 자멸했지만...
  4. 하지만 태권도는 여전히 삼국시대부터 유래된 한민족 고유의 전통무술이라고 역사왜곡을 이어가고 있다. 가라테가 모태가 되는걸, 일부 외국의 무술 기법을 수입해서 받아들였다로 물타기 중이다. 태권도도 국가 주도로 키워주지 않았으면 일본 가라테를 인정하는 파와 전통무술이라고 사기치는 태권도파로 갈라졌을 것이다. 또, 관통합을 거부하고 별도로 나간 수박도나 "당수도" 역시 한국전통 무술 사기를 여전히 치고 있다.
  5. 이건 해동검도의 역사왜곡 사기랑 똑같은 수준이다. 대한검도회 주장대로 고대 한국에서 기원했을지라도 일본에서 천년이 넘게 가다듬어진 검도가 한국 전통 무술로 둔갑할 수는 없다. 차라리 한국무술임을 주장하고 싶으면 일본 전검련 가맹국에서 탈퇴하고 기술 체계를 갈아타서 완전 독자 노선을 걸으면 된다. 그런데 일본 검도의 가맹국으로 등록은 해놓고 한국무술 타령이니 이 얼마나 앞뒤 안맞는 행보인지 웃기지도 않는 작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