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둔

1 개요

"낮이 되면, 귀기가 가라앉고 햇빛에 녹아 흐트러지며 명부(冥府)로 귀환한다. 세상에 귀신을 보는 자도, 귀기에 휘둘리는 자도 쉽게 보이지 않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신기(神氣)는 천부(天府)로, 귀기는 명부로 가는 거야. 신선이나 망령이 인간세의 일에 간섭하는 것은 그래서 어렵다."[1]

귀문(鬼門)의 술수, 귀둔(鬼遁)의 흔적은 풍종호 작가의 소설 전반에서 찾아볼수 있지만, 정작 제대로 나오는건 아쉽게도 『투검지(鬪劍誌)』 말고는 상세한 내용이 없다.

일단 핵심이 되는 귀기(鬼氣) 자체는 흔한 혼백론(魂魄論)의 연장선에 있는 것처럼 묘사된다. 혼백이 흩어진 다음 백(魄)이 귀(鬼)로 전이하는데, 이렇게 남겨진 귀는 오롯한 음기(陰氣)로 햇살과 시류에 휩쓸려 이 세상에서 사라져 간다. 귀문에 속한자는 그 사라져가는 와중에 인연을 이어 귀를 자신의 힘으로 삼는 것이다, 이러한 귀기가 음기를 타고 나타난다고 해도 이 세상의 음기가 아닌 이승과 저승 사이에 걸친 기운이라서 소위 정종의 내가기공을 익힌 사람, 혹은 그 기권(氣圈)을 만나면 말 그대로 으깨지는 수가 있다고 한다. 묘사를 보면 무슨 햇볕이 살균 소독하듯이 한낮의 해의 양광(陽光)에 귀기가 지워지며, 정종내공도 비슷한 효과를 보인다. 이 때문에 귀문에 속한 사람들은 해를 피해 낮 대신 밤을 질주하고 무림인을 질겁하며 피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축지법(縮地法)부터 시작해서 자잘한 술수에서 선견(先見)이나 환술(幻術)로 며칠 뒤의 사람과 대화한다는 등의 터무니없는 짓까지 가능하다. 『카오스 사이클』에 나온 미래에서 과거로 보내는 전언이라는 겁화의 징표보다 어떤 면에선 더 대단하다는 점에 놀랍기도 하다. 아무튼, 귀문의 제약에서 벗어나는 게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원명정기(元命精氣)[2]를 다스리게 되면 가능하다면서 한낮의 햇빛 아래서도 그 어둠을 고스란히 뽑아내는 멀쩡한 귀기를 원후파(元侯派)의 장로인 오귀검 중 여뇌지가 보여준다.[3]

2 기타

'절대천마(絶代天魔)가 고집스럽게 외치고 있는 암흑대천마공(暗黑大天魔功). 이건 불완전하고 미완성인데다가 실제 써먹을 수 있는 수법이 전혀 아니었다. 그런데도 절대천마는 이 요란한 상고(上古)의 심법을 자신의 독문마공을 이용해 재현해 내려고 바득바득 남겨 놓은 것이다. 재현할 수 있게 되면, 육대천마전생술(六大天魔轉生術)이라는 전설적인 마도의 대마력(大魔力)을 자유롭게 사용하게 해주는 위력을 보인다고 하는데, 문제는 그러기 위해 필요한 마주법(魔呪法)이 없다'

『투검지』에서 귀후(鬼侯)가 무공과 무술(巫術)양쪽에 재능이 있었고, 그 제자는 주법(呪法)에는 재주가 없었다고 나온다. 이 주법 및 주술이 귀둔 자체는 아닐수도 있으나, 적어도 연관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투검지』 뿐만 아니라 『지존록(至尊錄)』과 연관 지어서 아직 확인할 수 없는 떡밥들이 많다.

음부고루문(陰府骷髏門)의 절기를 사용했을 때 '아무도 듣지 못할 기괴한 주문' 같은 소리도 나오고, 애당초 귀문신투(鬼門神偸)가 무공 입문을 한 파본의 무공비급인 음마비천록(陰魔飛天錄)부터가 연관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음마비천록으로부터 비롯된 귀문신투의 무공절기도 귀기가 꽤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일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이 귀문신투로부터 유래됐다는 귀문육환도(鬼門六幻刀)는 구룡(九龍)의 하나인 오룡마정수(烏龍魔正秀)가 연마해 역량을 증명했다고 하는데, 귀문신투부터 귀문과 연관이 있었던 건지 아니면 오룡마정수부터 귀문과 관련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육환도가 풍현이 귀문보전, 잡언, 요람 등을 읽을 때 등장하진 않았음에도 만겁윤회로(萬劫輪廻路)에서 묵철신망을 상대로 그전까진 이름도 나오지 않았던 귀문창룡후(鬼門蒼龍吼)를 사용한 걸 보면 아직 이름도 등장하지 않은 절기도 상당히 많은 것 같아서 단정 짓기가 힘들기 짝이 없다.
  1. 태형 도인(太衡 道人)이 금모하에게 해주는 가르침 중에서 발췌.
  2. 원정(元精)으로부터 발현(發現)하여 흐르는 생사를 결정짓는 진기(眞氣)
  3. 정파로써 그 경지까지 이르려면 꽤 고련 해야겠지만, 마도(魔道)로서 아주 쉽게 그런 짓을 해치우는 작자들도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