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정갑

파일:9ZbpP.jpg
頭釘甲
조선 전기부터 중후기에 걸쳐 널리 사용된 갑옷의 일종. 사진은 도쿄 국립 박물관이 소장 중인 고종 황제의 것으로 추정되는 두정갑과 투구.
돌려줘

1 역사

두석린갑[1]과 함께 조선시대에 가장 널리 사용된 갑옷이었지만 전래된 것은 좀더 이른 시기로, 몽골 제국의 부마국이였던 고려 말 시기에 전래되었다. 즉, 두정갑의 원류는 몽골 갑옷이라고 할수 있다. 명광개(明光鎧)로 대표되는 중국 갑옷과는 확연히 다른 양식인 것은 이런 배경 때문.

몽골이 중국을 포함한 동북아 전체를 지배했기 때문에 이후부터는 이러한 두정갑 형태의 갑옷이 일반화되었다. 중국에서는 이것을 두정갑이 아닌 '면갑'이라고 지칭한다. 명나라에서도 이 형태의 갑옷은 널리 쓰였으며 청나라 시기에 들어와서는 청의 모든 갑옷이 두정갑의 형태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현재 남아있는 청군을 묘사한 그림에서도 모두 이러한 형태의 갑옷을 입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에서 발간된 갑옷에 대한 서적에서는 당나라에서 기원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오호십육국시대송나라 시기에는 이러한 형태의 갑옷이 일반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2] 당나라에서 기원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것을 몽골이 받아들여 적극적으로 퍼뜨렸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 구조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두정갑 그림. 이 시기에는 두정갑이 일반화되어 단순히 갑(甲)이라 칭하였다.복원한 두정갑을 입은 모습


[3]

두정갑 구조 제작과정, 방어력

외형은 조선시대 배경의 사극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형형색색의 가죽외피에 못머리와 비슷한 작은 철구가 여러개 박혀있는 형태이다. 이 형태때문에 두정(대갈못)갑이라고 불린다.

얼핏보면 그저 천옷에 징만 적당히 붙인것 같은 외형이라 두정갑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겉만 보고 천이나 가죽으로 만들어진 갑옷이라 착각하기 쉽지만 그 옷 같은 외형은 페이크일 뿐이고(...) 실제로는 금속 방어재가 주가되는 엄연한 철제 갑옷이다.[4]

두정갑은 크게 가죽과 천으로 만들어진 외피와, 방호를 위해 안쪽에 덧대는 방어재로 구성되어 있다. 이 방어재는 두꺼운 섬유소재나 가공한 가죽 소재를 사용하기도 하나 보통은 철판조각(두정갑편)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찰갑에 쓰이는것과 동일하거나 조금 더 큰 크기의 이 철편/가죽편들을 외피에서부터 박는 '정'이라는 일종의 못과 찢어짐을 방지하는 똬리쇠를 무수히 박아서 고정시킨다. 찰갑이 가죽끈을 이용해 철편/가죽편들을 고정시켰다면 두정갑은 이 정으로 철편/가죽편들을 고정시키는 것이다. 현대 개념으로 말하자면 리벳 접합 방식과 유사한 방식으로, 이는 전장에서의 숱한 피격 경험과 갑옷의 유지보수 및 성능에 관한 노하우가 베어나온 결과이다.

이러한 구조로 인해 두정갑의 유지보수가 종래의 찰갑 류에 비해 극단적으로 향상되었다. 찰갑은 한번 베이면 가죽끈이 끊어져서 철편들이 떨어져나가기도 하며, 전투가 끝나면 가죽끈을 풀고 다시 철편들을 이어붙여야 하는 등 유지보수가 매우 시간이 들기때문에 번거롭다. 반면 두정갑의 철편/가죽편들은 철제 정으로 단단히 고정되므로 아무리 찔리거나 베여도 철편들의 결속이 끊어질일이 없다. 경번갑이 사슬을 이용해 찰갑의 단점을 해결했다면 두정갑은 정을 이용해 찰갑의 단점을 해결한 것이다. 이 철편들은 외피와는 정으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정을 뽑는다면 외피로부터 때어놓을수 있는데, 이는 유지보수를 편리하게 해준다.

또한 철편/가죽편 위에 외피를 착용하는 구조도 방어력 향상에 한몫 한다. 이 구조는 외부로부터의 공격을 외피가 일차적으로 막게되어 철판에 전해지는 충격이 덜해지는 원리인데, 특히 화살을 막는데에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두정갑은 천이나 가죽으로 만들어진 두꺼운 외피가 일차적으로 화살을 막아줘서 화살의 운동에너지로 인한 타격조차 어느정도 상쇄해주는것이다. 그런데 조선시대 갑사들은 이 점을 악용해 훈련 나갈 때 무거운 철편은 떼내서 짱박아두고 외피만 입고 가는 꼼수를 부리기도 했다.실전에서 외피만 입고 싸운다면... 또한 의장용으로 애초부터 철편이나 가죽편 없이 정만 박혀있는 식양갑이라는 가짜 갑옷도 있었다.[5]

이런 구조로 인해 두정갑의 방어력은 트랜지셔널 아머와 비슷한 위치에 있을 정도로 갑옷 중에서도 우수한 성능을 지녔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찰갑과 비교해 유지보수가 상당히 쉽다. 다만 이러한 실제적 우수성과는 별개로, 갑옷은 금속 질감이 구체적일수록(또는 둥글어서 평평한 옷같은 형태의 갑옷과는 차별화되는 외형이라던지) 멋이 사는데 두정갑의 경우엔 철편이 노출된 모양이 아니기 때문에 자수를 넣거나 색깔 놀이로 때울 수 밖에 없다. 아니면 장식을 많이 한다든지 그래서 조선이나 만주, 청나라 군대를 사실적으로 묘사해야 할 때 외에는 잘 등장하지 않는 편이다. [6] 심지어 영화 명량에서는 이순신을 포함한 주역급 장수들에게 찰갑을 입히고 병졸들에게 두정갑을 입히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스러운 구도가 연출되기도 했다.

다만, 이런 현상에는 매체 제작자들의 편견과 재현 능력 부족이 크게 한 몫을 하고 있다는 반박도 존재한다. 인물들을 자세히 그린 그림은 아니라서 세세한 디테일은 그리지 않았지만 상당히 다양한 종류의 색조합을 쓰는 것을 알 수 있다.

파일:북관유적도첩2(야연사준도).jpg파일:북관유적도첩1(척경입비도) (1).jpg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이런 유물도 있다 "비사문귀갑문갑주"로 창덕궁 서행전 유물로 왕세자가 입었던 갑옷으로 추정된다 한다. 출처
청나라 양식이긴 하지만 두정갑은 천편일률적이라는 의견에 대한 좋은 반박자료다.

파일:비사문귀갑문갑주 -창덕궁 서행전.jpg

이러한 편견이 생기는 이유는 갑옷고증에 대한 대다수의 국민들의 무관심과 미디어의 수준낮은 재현품들 때문이기도 하다. 당장 두정갑이라고 치면 나오는 재현품들을 보면 99%는 속에 철판이 없다. 하다못해 그와 같은 형태의 다른 재료조차도 안 넣고 그냥 천에다 징만 박아놓은 사진들 뿐이다. 물론 식양갑이라하여 철판을 뺀 갑옷도 있긴 하다.[7] 어차피 겉으로 안보이니 뭔 상관이냐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식양갑이 아닌 진짜 철제갑옷으로 고증을 한다고 하면 천 안에 철판이 있고 없고는 겉모습부터 상당히 큰 차이가 난다. 천 안에 철판을 빼곡히 단단히 박아넣는다면 당연한 소리지만 옷주름도 안 생길 정도로 뻣뻣해진다.[8] 또한 조선시대 장수들은 갑옷안에 두꺼운 솜옷을 받쳐입었기 때문에 완전무장한 모습을 보면 전체적으로 두툼한 모습이다. 애초에 활이나 도검을 막으려면 이렇게 두꺼워야 한다. 대부분 드라마나 행사때 입는 갑옷을 보면 모두 천에 그냥 징만 박힌 모습이다, 왠지 일본갑옷보다 방어력이 낮을 것 같고 흐물흐물하게 보이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방어력이 낮아보이는 이유를 첨언하자면 대표적으로 투구의 투구드림을 묶지 않아서 목을 그대로 노출한다. 투구드림이 없다면 목을 보호하는 갑옷을 따로 장비하여야 한다. 또한 겨드랑이를 보호하는 호액(갑옷안에 장비한다)이나 사타구니를 보호하는 갑옷도 존재하며 편견과 달리 상.하의 일체형 갑옷 뿐아니라 분리된 것 또한 조선시대 이전 부터 존재하였고 기본적으로 무릎아래에서 목 위까지, 어깨에서 팔뚝아래까지 철저하게 보호하는 형태의 갑옷들이다. 이러한 중요한 요소들을 생략하니 방어력이 낮아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세세한 장식들 같은 경우에는 고위장수의 갑옷은 고급비단에다 곤룡포처럼 세세한 자수를 넣는다던지 금실을 이용하여 용이나 호랑이 기린 같은 것들을 수놓기도 한다 만약 창작품에서 표현하고자 한다면 충분히 멋지게 다양하게 꾸밀 수 있는 요소들이 넘쳐난다.그러니까 자수 넣거나 색놀이 하거나 장식을 많이 넣거나라고 위에 썼잖ㅇ...[9]

3 유물들


조선시대의 황동두정갑.(사진출처) 민승기씨의 저서 '조선의 무기와 갑옷'의 영향으로 방호용 찰이 없는 의례용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안에 연기를 쐬어 가공한 사슴가죽(연록피煙鹿皮) 찰을 붙인 것이다. 연록피는 찰갑제조시 찰 연결용으로 쓸 정도로 질기고 튼튼한 가죽이다.

구한말까지 만들어지고 유지보수되었던 갑옷이다보니 당시 해외 열강들이 선물받거나 노흭하는 식으로 가져가서 보존한 두정갑 유물이 제법 되는 편이다.
러시아 동양박물관에 있는 두정갑은 좋은 보존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며,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에도 두정갑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미국에도 있는데, 구한말 당시 어느 미국인이 들여와 본토에 꽁쳐두었던것으로 보이는(...) 두정갑 유물이 발견된바 있다. 최근에는 독일 라이프치히 그라시 민속박물관에서도 아주 상태가 좋은 두정갑과 투구 일습이 소장되어 있는 것이 알려졌다. #

국내에는 용산의 전쟁기념관과 육군박물관에 두석린갑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파일:Attachment/두정갑/gpb.png
과거 KBS의 프로 스펀지에 소개되었던 갑의지로 된 찰을 단 두정갑 사진.*

4 타국의 유사 갑옷

영화 <아이언클래드> 中, 서양의 브리간딘

서양에도 두정갑과 구조가 비슷한 브리간딘(Brigandine)이라는 갑옷이 있다. 이 때문에 서양에선 두정갑을 Chinese brigandine이라 칭하기도 한다.


외국에 잘 알려진 몽골의 두정갑의 모습.* 중국에서는 이런 갑옷을 정갑(钉甲), 면갑(綿甲)이라고 부른다.

300px
300px
러시아의 쿠야크(kuyak)의 모습.*,** 두정갑의 안팎을 뒤집어 놓은 모습이다.딱 우리나라 사극갑옷인데? [10]


파일:20100215191529 1.jpg
청대 만주족의 포면갑. 몽골과 영향을 주고 받은듯 하다.



중동 갑옷인 챨타 하자르 마샤(Chihal'Ta Hazar Masha)# 18~19세기에 사용된 갑주로, 천 안쪽에 경화 가죽과 안감을 대고 바느질로 고정한 것으로, 여기에 추가로 겉에 철판을 붙이기도 한다. 사진의 것은 인도에서 사용된 것이다.

400px
400px
일본의 귀갑(亀甲,킷코)*. 옷의 겉이나 안에 쇠사슬과 육각형의 철판을 댄 것으로, 본래 갑옷 안쪽에 입는 보조 방호구였으나 나중에는 완전한 갑옷 형태의 킷코타타미동도 등장한다.

이외에 육군사관학교 박물관에 한국의 두정갑과 유사한 구조의 일본 갑주 1점이 보관되어 있다.@
  1. 조선후기에 의장용 갑옷으로(재질이 철이 아닌 놋쇠), 충무공 이순신은 본적도없었을 것 이다. 불멸의 이순신, 오스프리 고증화에서 임진왜란을 설명할때 나오는 등 초기에는 고증이 미흡한 점이 있었다.
  2. 오스프리 고증화에서 중국 송나라 갑주를 고증하면서 일반 찰갑 겉에 천을 씌운 형태로 고증한 바는 있다.
  3. 영상에선 설명하지 않았지만 투구의 드림또한 묶어 목을 보호하며, 목보호구가 따로 있기도 하다. 대부분의 투구 유물의 드림아래에 끈이 달려있는 것이 그 이유다.
  4. 영상에서 설명한 두정갑은 상하의가 분리된 형태이며, 조선시대 후기에 주로 기병의 갑옷인줄 알았으나 조선시대 초기 각종 사료에 나오는 두두미갑,황동두정갑 등 이전부터 존재해온듯 하다.
  5. 1742년(영조 18년)에 식양갑을 입은 장수를 보고 영조가 크게 격노하였다. 그후로 식양갑을 금하였으나 결국 보편화되었다. (그러나, 장식이 많다고 해서 무조건 식양갑은 아니다. 장식이 많은 두정갑 유물중에도 철편이 박혀있는 것이 많다.)
  6. 장수들이 허리에 두르고있는 두툼한 천은 "전대"라고하여 개인 전투식량가방이다 절대 뱃살이 아니다!!, 식사시간이 아닌 평상시에 전투식량을 꺼내먹는다면 군량을 훔치는것과 동급으로 취급하여 처벌하였다
  7. 조총이 보편적으로 보급된 조선후기의 일이다
  8. 맨위의 두정갑 제작 동영상 후반에 두정갑을 입은 모습이 잘 고증된 외형이다. 보면 알겠지만 주름없이 두껍고 뻣뻣하다.
  9. 사실 이것은 "두정갑 본연의 모습을 다른 양식의 갑옷만큼 받아들일 수 있는가", 쉽게 말해 사람들이 이거 보고 흔히 갑옷하면 딱 떠올리는 철판 덩어리와 동급의 간지를 느낄수 있느냐의 문제다. 한복이 양복보다 미학적으로 딸리는 의복이 아니듯이 갑옷 역시 사람들이 더 잘 알게되고 더 관심을 가지며 받아들이기 나름인 것.
  10. 어원은 몽골어로 갑옷을 뜻하는 호야크(Khoyak)*란 말이 들어온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