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3세

1 영국 왕

역대 잉글랜드 국왕
요크 왕조요크 왕조튜더 왕조
에드워드 5세리처드 3세헨리 7세

난 친구같은 거 없어[1]
왕호리처드 3세
(Richard III of England)
생몰년1452년 10월 2일 ~ 1485년 8월 22일(32세)
재위기간
(영국 국왕)
1483년 6월 26일 ~ 1485년 8월 22일(2년)
대관식1483년 7월 6일
장례식2015년 3월 26일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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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3세의 문장

1.1 소개

장미전쟁 당시 영국의 국왕으로 재위기간은 겨우 2년에 불과했다. 에드워드 4세의 동생으로 조카들이었던 에드워드 5세와 요크 공 리처드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찬탈을 노리던 귀족들을 제거하고 호국경에 올랐다. 그러나 얼마 후 돌변해서 조카를 폐위시키고 스스로 왕이 됐는데 쉽게 말하면 영국판 수양대군이다.

실은 엄격히 교회법을 적용하면 에드워드 4세와 조카들의 어머니인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결혼은 합법적인 결혼이 아니었다.[2] 따라서 조카들은 사생아로 취급되어 적손만이 왕위를 계승할 수 있다는 원칙에 따라서 리처드가 왕위를 넘겨받은 것에 불과하다.[3]

리처드 3세는 왕위에 오른 뒤 에드워드 5세와 리처드 형제를 런던탑에 가뒀는데[4] 그 후 행적은 불분명하지만 아마 죽임을 당한 것 같다. 실제로 나중에 찰스 2세때 런던탑 계단를 보수하다가 상자를 발견했는데 안에는 유골들이 들어있었다. 이미 당시부터 두 왕자들을 런던탑에서 죽인 게 리처드 3세였다 라는 얘기가 파다해서 평이 안좋았다고 한다.[5] 이상한 점은 뒤를 이은 헨리 7세가 리처드 3세를 폄하하기 위해 온갖 악행들을 까발렸으나, 왕자들을 죽인 것은 언급하지 않았다. 거기다가 헨리 7세의 행적에 의문이 있어 오늘날에는 헨리 7세가 왕자들을 죽였거나 적어도 리처드 3세의 짓은 아니라는 주장이 많다.

그렇게 악독한 악인은 아니었으나, 장미 전쟁 이후 등장한 튜더 왕가가 등극하면서 정통성을 위해 깎아내려 흑역사로 남았고 천하의 개쌍놈이 되었다. 2의 작품에서 검은 머리의 꼽추이자 강한 카리스마를 가진 악인으로 묘사되면서 재조명된 20세기까지 폭군의 이미지로 남아있었다.

1.2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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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5년 헨리 7세는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상륙했고 둘은 보스워스에서 맞붙었다. 처음에는 리처드 3세가 유리했으나, 그를 싫어하던 휘하 귀족들이 헨리 7세에게 가담하여 결국 불리해졌고 리처드 3세는 몸소 앞에서 지휘하며 끝까지 싸우다가 전사했다. 헨리 7세의 어머니 마가렛은 에드워드 3세의 사남 곤트의 존의 증손녀로 사실 헨리 7세는 왕가에서 매우 멀었다. 그래서 에드워드 4세의 딸 요크의 엘리자베스와 결혼해서 정통성을 얻었다. 1499년 헨리 7세는 요크 왕가의 유일한 남계 후손이자 에드워드 4세의 동생 클라렌스 공작의 아들이었던 워릭 백작 에드워드를 처형하면서 요크 왕가는 단절되었다.[6] 그의 외아들 미들헴의 에드워드는 1484년 11세의 나이로 요절했는데 더 살았다고 해도 헨리 7세에 의해 제거될 확률이 매우 높았다.

1.3 유골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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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영국의 레스터의 시의회 주차장 지하의 옛 교회터에서 리처드 3세로 추정되는 유골이 발견되었다. 오랜 연구와 검사를 거쳐 2013년 2월 DNA 검사[7]를 통해 그의 유골임을 발표했다. 왼쪽 어깨 부분이 불룩 튀어나온 초상화[8]와 당대부터 지금까지 알려진 꼽추왕이라는 별명을 증명하듯이 리처드 3세의 유골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심각한 척추측만증을 앓았던 것임이 확인되었다.

유골의 상태는 리처드 3세가 맞은 참혹한 죽음을 잘 설명해주고 있는데 이는 리처드 3세의 최후에 대한 사료의 기술과 거의 일치한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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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DNA 분석 결과 리처드 3세는 부계쪽으로 요크가 핏줄을 이어받지 않았다고 한다. 누이들과는 DNA가 99.9% 일치했다고 하니 누이들도 마찬가지라고 봐야 하며 형 에드워드 4세도 당대부터 요크 공작 리처드의 친자가 아니라는 소문이 떠돌았던 바 있다. 기사 리처드 3세의 유골을 매장할 장소로 발견된 장소인 레스터와 가문의 출신지인 요크 사이에 법적 분쟁이 있었으나 레스터가 승리했다.

2015년 3월 26일, 영국 왕실의 주도하에 국장으로 성대한 장례식이 치러졌다. 기사 사후 530년 만에 거행되는 장례식이다. 장례식 비용은 40억원 가량 소요될 것으로 대부분은 레스터시가 부담한다. 레스터가 리처드 3세로 벌어들이기 시작한 관광수익이 천문학적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국왕의 예우를 갖춘 장례식을 통해 리처드 3세의 유해는 레스터 대성당에 안장되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며느리인 웨식스 백작부인 소피와 여왕의 사촌동생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가 여왕을 대신해 장례식에 참석했고, 리처드 3세의 후손인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영국 계관시인 캐롤 앤 더피의 시 '리처드'를 낭독했으며, 리처드 3세의 관은 후손 중 한 명인 캐나다의 가구제작자 마이클 입센이 오크 나무로 제작했다.

그리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장례식이 끝나기 무섭게 이 지역의 축구팀은 왕의 은총을 받았는지, 유래없는 대기록을 세우기 시작하는데...

1.4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 《진리는 시간의 딸》이라는 추리소설에서 중요한 소재로 다뤄진다. 이 소설은 추리소설은 추리소설인데, 런던탑에 갇혀있던 에드워드 4세의 아들들(에드워드 5세등)을 살해한 것이 그때까지 알려져 있던대로 리처드 3세인지 추리하는 소설이다.
  • 2013년부터 영국 BBC에서 셰익스피어 희곡들을 원작으로 방영하는 연작 시대극 <할로우 크라운>[10] 의 후속작 장미전쟁 편에서 셜록(드라마)에서 셜록 홈즈로 출연했던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이 리처드 3세 역을 맡았다. 리처드 3세의 유골이 발견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방영되는 것이라 어떻게 묘사될지 주목되는 부분이다. 덧붙여 셜록에서 짐 모리어티로 출연한 앤드류 스콧이 프랑스 국왕 루이 11세 역으로 출연한다.

2 셰익스피어의 희곡

셰익스피어 연극 중 가장 많이 상영되는 작품.

리처드 3세의 재위부터 그의 형인 에드워드 4세에 대한 질투, 조카 에드워드 5세를 죽이고 냉혹하게 권력을 추구했지만 결국 몰락하고 죽게 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다른 작품과 비교하면 주인공이 악인에 가깝다는 점과 권력을 추구한 끝에 몰락하는 것 등을 보아 맥베스와 비슷하다.

리처드 3세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문장은 다음과 같다.

"나는 기형이고, 미완성이고, 반도 만들어지지 않은채

너무 일찍이 이 생동하는 세계로 보내져
쩔뚝거리고 추한 나의 모습에
곁에만 지나가면 개들도 짖는다…
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나날을 즐기는
사랑하는 자가 될 수 없기에
나는 악인이 되기로 굳게 마음먹는다." -1막 1장.
And therefore, since I cannot prove a lover
To entertain these fair well-spoken days,
I am determined to prove a villain
And hate the idle pleasures of these days.

사실 원문 자체는 굉장히 길지만 중요한 것은 끝의 네 문장이므로 그 부분만 적는다.
"악인이 되기로 굳게 마음먹는다(I am determined to prove a villain)" 이란 문장 자체가 알게 모르게 굉장히 많이 쓰인다.

그리고 또 자주 쓰이는 표현은 다음이다.

"A horse, A horse, My Kingdom for a horse."(말을 다오, 말을 다오. 말을 가져오면 내 왕국을 주리라)

리처드 3세의 군대가 와해될 때 급한데 정작 탈 말이 없자 말을 가져오는 이에게 온 나라라도 주겠다고 하는 대목이다. 앞뒤 잘라먹고 말하면 도망치려는 것으로 보이지만 작품내 분위기로 봐서는 타고 싸울 말을 요구한다고 봐야할 듯. 저 대사의 다음에 퇴각을 권고하는 겟츠비에게 'I have set my life upon a cast, And I will stand the hazard of the die'라 말하며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내보인다. 영국에서는 '배보다 배꼽이 크다'나 이른바 멘붕과 유사한 의미로 쓰이는 듯하다. 문명5에서 horse riding기술을 개발하면 이 문장이 나온다. 미디블2: 토탈 워에서도 전투 대기시 로딩 화면에 자주 뜬다.

영화로도 여러번 만들어졌는데, 그 중에서 이안 맥켈런 경 주연의 작품은 아래쪽 항목을 참조 바람. 그 외에 알 파치노가 연극을 준비하는 배우들과 연극 내용을 교차하는 구성으로 감독/주연한 '리처드를 찾아서'(국내 개봉 제목은 '뉴욕 광시곡'. 이게 웬 해괴한 제목이냐...)라는 영화도 숨겨진 걸작이다.

굽시니스트본격 제2차 세계대전 만화에서 "I must be held a rancorous enemy"라는 대사가 처칠체임벌린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을 때의 시가전 깡패 깽판장에서 나온다. 대략 "내가 벌집을 건드렸어" 정도로 의역될 수 있을듯.

3 1995년도 영화


2의 항목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서, 간달프매그니토로 유명해진 이안 맥켈런 경이 리차드 3세를 맡은 영화다.

이 항목을 따로 작성하는 이유는 영화가 희곡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닌 1930년대로 배경을 바꿔 파시즘과 결합시킨 영화기 때문. 그래서 영화에는 20세기의 문화와 무기(T-34, T-55 전차, 프로펠러 전투기, MP40 기관단총 등)들이 등장한다. 사실 이건 의도적인 설정에 가깝다. 원작을 재해석한 사례 중엔 리처드 3세를 파시즘의 등장과 몰락으로 해석하는 예가 있고, 이를 주제로 한 것이 이 영화이기 때문. 어떻게 보면 이후에 나온 같은 원작자의 희곡을 바탕으로 한 타이투스코리올라누스[11]의 선지자격인 영화라 할 수 있다.

국내에는 우일을 통해 비디오로만 출시되었기 때문에 지금은 보기가 힘들고, 그나마 출시된 영화도 자막이 원래 희곡의 맛을 제대로 잡아내지 못해서 아쉬운 편이다.

3.1 자잘한 얘기들

  • 이 기획의 최초 창안자는 이안 맥켈런 본인. 원래 TV용으로 기획했으나 시나리오를 써가면서 이야기가 꽤 커졌고, 직접 투자를 유치하게 되었다
  • 이안 맥켈런은 공연 투어를 다니는 중간에 이 작품의 시나리오를 직접 썼다. 말만 들으면 쉬울 거 같지만 무대에서 에너지를 쏟아내면서 그 중간에 뭔가 다른 일을 한다는 건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다. 인간이 아니신 건가…. 게다가 저 2개의 일을 하는 그 와중에 여러 배우들에게 이 영화에 출연해 달라고 요청까지 하고 있었다. 인간의 한계를 넘은 분….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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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영화에서 리처드3세와 그 일파들이 입고 나오는 군복은 진짜 슈츠슈타펠의 군복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리처드의 군기도 나치 깃발의 하켄크로이츠 자리에 멧돼지 머리 문장[12]이 들어간 것.
  • 이안 맥켈런은 자신이 조연으로 출연했던 영화 레스터레이션[13]의 주연이었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에게 거절당할 걸 각오하고서 작은 역할(에드워드 4세의 왕비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오빠 역)을 하나 해줄 수 있냐고 제안했고[14], 놀랍게도 그는 역할을 받아들이고 출연했다.[15]
  • 에드워드 4세와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결혼이 법적으로 무효인 이유를 이 영화에서는 우드빌이 미국인이기 때문으로 설정했다. 에드워드 8세가 퇴위한 사례를 참조한 것.
  • 비슷한 기획의 영화로 맥베스의 2010년판이 있다. 주연배우도 엑스맨에서 이안 맥켈런의 상대역으로 나왔던 패트릭 스튜어트 경이다. 여기서는 맥베스의 배경이 중세의 스코틀랜드에서 20세기 초의 소련으로 바뀌었다.
  1.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리처드 3세의 후손이다.
  2. 비밀리에 결혼을 해서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의 교회법에 따르면 위법이었다.
  3. 그런데 이것은 리처드 3세를 제거하고 다음 왕이 된 헨리 7세의 꼼수라는 설도 있다. 에드워드 4세의 자식들이 모두 사생아였다면 에드워드 4세의 딸이자 에드워드 5세와 리처드의 친누이였던 요크의 엘리자베스를 왕비로 삼은 헨리 7세는 정통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4. 참고로 그들의 아버지 에드워드 4세도 헨리 6세를 런던탑에 가두고 죽였다.
  5. 1900년에 영국에 유학온 일본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가 자신의 런던탑 관광기를 단편소설화한 런던탑에서 두 왕자 형제가 갇혀있는 모습을 상상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참고로 소세키는 두 왕자 형제가 그 때 런던탑에서 처형당했다고 알고 있었던 듯, 그런 내용으로 소설을 썼다.
  6. 에드워드 4세에게 사생아 6명은 있었다.
  7. 캐나다에 사는 가구 제작자 마이클 입센의 DNA로 그는 리처드 3세의 누이인 앤의 후손이다.
  8. 몸이 왼쪽으로 기울면서 생긴 현상으로 보인다. 하지만 연회에서 돋보이는 존재였다는 기술과 전쟁에 나선 것을 본다면 일상생활에서는 큰 문제가 없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9. 머리 쪽은 단검에 강하게 찔리고 핼버드(미늘창)에 머리 뒷부분이 잘려 나가 죽었다. 등에서 발견된 화살촉은 검사 결과 화살촉이 아닌 로마 시대의 못으로, 리처드 3세와는 관계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10. 리처드 2세, 헨리 4세, 헨리 5세를 주인공으로 한 편들이 방영된 상태다. 덧붙여 헨리 4세로 제레미 아이언스가 출연했다.
  11. 배우인 레이프 파인스가 직접 감독 및 주연을 맡은 영화로 2011년작. 고대 로마 공화정의 장군인 코리올라누스에 대한 영화로 배경을 21세기 현대로 바꾸어 놓았다. 그래서 현대 미군의 장비를 갖춘 로마군이 AK 소총으로 무장한 볼스키 족(족장이 제라드 버틀러다. 흠좀무)과 교전을 벌이는 장면까지 나온다.
  12. 1의 항목의 리처드 3세의 문장
  13. 맥 라이언, 샘 닐, 휴 그랜트 등이 출연하는 미국/영국 합작 시대극. 개봉 당시의 평가는 좀 미지근 했고, 흥행도 그리 좋지는 않았다. 국내에는 2001년이 되어서야 비디오로만 들어왔다.
  14. 생각을 해보자. 아무리 당시에 사고를 치고 다녔어도 그는 꽤 유명한 스타였고, 바로 앞에 찍은 영화에선 주연을 맡았다. 그런 스타에게 대사는 3줄에 3분 출연하는 역할(그나마 2분은 배경에 있거나 주인공 옆에 서 있기만 한다…. -_-;;;)을 해달라고 한 거다.
  15. 그러므로 위에 올린 포스터는 사기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