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세스 알루

moises_alou_2004_studio_plus_photofile.jpg

풀네임모이세스 로하스 알루[1] (Moisés Rojas Alou)
생년월일1966년 7월 3일
국적미국[2]
포지션외야수[3]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86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2순위(피츠버그 파이리츠)
소속 팀피츠버그 파이리츠(1990)
몬트리올 엑스포스(1990, 1992~1996)
플로리다 말린스(1997)
휴스턴 애스트로스(1998, 2000~2001)
시카고 컵스(2002~2004)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2005~2006)
뉴욕 메츠(2007~2008)

1 개요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한 전직 야구 선수. 도합 17 시즌 동안 통산 올스타 6회 선정, 타율 .303, 332홈런 2134안타, 1287타점을 기록한 것[4]에서 보이듯이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을 풍미한 외야수였다.

2 커리어

메이저리그에서 통산 200홈런을 기록한 펠리페 알루의 아들로 태어났다. 피는 못 속이는지, 고등학교 때부터 만능 스포츠맨의 자질을 보여주었다. 알루 본인이 좀 더 열중했던 것은 야구가 아니라 사실 농구였지만 스카우터들은 야구 쪽 재능을 더 높이 평가했고 대학교 1학년 재학중이던 1986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2순위로 피츠버그 파이러츠에 입단한다. 높은 지명 순위와 달리 마이너리그 초창기 시절 상당히 해매다가 6년만인 1990년에야 콜업된다.[5]

피츠버그 소속으로 딱 2경기만을 뛰고는 아버지 펠리페 알루가 감독으로 재직중이던 몬트리올 엑스포스로 트레이드된다. 낙하산? 2년차로 기대를 모았던 1991년 시즌에는 부상으로 인해 고스란히 날려먹는다.부상에서 복귀한 1992 시즌에 115경기에서 타율 .282, 9홈런 56타점을 기록하면서 본격적으로 커리어에 시동을 걸기 시작했고, 신인왕 투표에서도 2위를 기록한다. 1993시즌에도 타율 .286, 18홈런 85타점을 기록한 데 이어 다음해인 1994 시즌에는 포텐셜이 대폭발한다. 1994 시즌에 알루는 부상으로 딱 107 경기를 출장하고서도[6] 타율 .339, 22홈런 78타점으로 첫 올스타 선발, 실버슬러거, 정규리그 MVP 투표 3위라는 영예를 누린다. 다음해인 1995 시즌에는 발목에 이은 어깨 부상으로 시즌의 절반 가까이를 날렸지만 그 이듬해인 1996 시즌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라는 말을 증명하듯 타율 .281, 21홈런 96타점으로 건재를 증명한다.

1996 시즌 후 알루는 자유계약 자격을 얻었고, 알루에게 러브콜을 보낸 팀은 분노의 지름을 행하고 있던 플로리다 말린스. 말린스에서 알루는 타율 .292, 22홈런 115타점을 기록했고 거기에 생애 첫 월드 시리즈 우승 반지를 손에 넣는 기쁨까지 누리게 된다. 알루 본인 역시 월드 시리즈 내내 타율 .321 3홈런 9타점으로 인디언스 투수진을 폭격하면서 우승의 일등 공신이 된다.[7] 다만 1997년 월드 시리즈 우승과 동시에 말린스는 페이롤 감축을 위해 폭풍 세일에 들어섰고, 스토브리그 시즌 도중에 알루는 휴스턴 애스트로스로 트레이드된다. 돔구장 덕인지 알루는 1998 시즌에 타율 .312, 38홈런 124타점으로 자신의 커리어 하이를 경신하면서 1994시즌에 이어 다시 한번 올스타 선발, 실버슬러거 수상, 정규리그 MVP 투표 3위의 영광을 누린다. 그렇게 거침없이 자신의 시대를 열어가나 했는데 이번에도 부상이 알루의 발목을 잡는다. 1998 시즌 종료 후 개인 운동을 하던 알루는 런닝머신에서 넘어지면서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중상을 당했고, 그래도 1999 시즌을 날린다. 애스트로스 팬과 프런트가 뒷목을 잡은 건 덤. 그래도 클래스는 또 어디 안가서 2000 시즌과 2001 시즌 각각 타율 .355 / .331이라는 리그 성장급 지표를 찍어준다. 하지만 이 시기에도 유리몸 기질은 여전해서 알루는 매해 30경기 가량을 결장했고, 결국 그의 인저리 프론을 염려한 애스트로스 프런트는 2001 시즌 종료 후 그에게 계약 연장을 제시하지 않는다.

알루를 데려간 새로운 팀은 시카고 컵스. 그리고 알루는 컵스와 함께한 첫 시즌의 시작을 부상자 명단 등재와 함께 한다(...) 뭐 해마다 30경기씩 날리는 거는 거의 연례행사였다고 치더라도 스탯 역시 상당한 비율로 떨어져서(타율 .275, 15홈런 61타점) 먹튀가 되는 우려를 샀었다. 하지만 다음해인 2002 시즌 불과 열 경기만 결장하는 한층 건강해진 모습으로 타율 .280, 22홈런 91타점을 기록했고 팀 역시 간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 애틀란타 브레이브스를 무난히 물리치고 만난 상대는 옛 친정팀 플로리다 말린스. 5차전까지 컵스는 3승 2패로 시리즈를 앞서나갔고 6차전에서 8회까지 3-0으로 앞서나가면서 60년만에 월드 시리즈 진출이 눈에 보이는 듯 했다. 그런데 그 유명한 스티븐 바트의 파울볼 강탈 사건이 일어났고, 이후 갑자기 컵스가 흔들리면서 마치 거짓말처럼 컵스는 6,7차전을 말린스에게 내주고 다시 한번 분루를 삼켜야만 했다. 사실 관중 스티븐 바트가 알루를 방해하지 않았더라도 공의 궤적은 알루가 잡을 수 없었다는 것이 오늘날 일반적인 결론이다. 문제는 알루가 공을 놓치고는 바트에게 미친듯이 성질을 냈고, 그 덕분에 애꿎은 바트에게 모든 비난의 화살과 살해 협박이 쏠렸다는 것.

문제의 영상


각설하고, 다음해인 2004 시즌에는 다시 한번 대각성해서 타율 .293, 39홈런 106타점의 성적을 찍는다. 하지만 컵스는 플레이오프 진출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리그 마지막 9경기에서 7패를 당하는 어메이징한 모습어메이징은 이 팀 종특인데을 보여주면서 탈락했고, 그것으로 컵스와의 인연도 끝이 난다. 컵스를 나온 알루에게 손을 내민 것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그리고 몬트리올 때와 마찬가지로 이 때의 자이언츠도 아버지 펠리페 알루가 감독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사실 알루 본인의 증언에 따르면 자기가 먼저 아버지에게 같이 뛰고 싶다고 얘기했다고 한다. 자이언츠에서 알루는 배리 본즈와 공포의 외야라인을 형성할 것으로 기대받았지만, 정작 본즈가 부상으로 나가떨어지면서 이는 설레발에 그치고 만다. 자이언츠에서 보낸 두 시즌 동안 알루는 각각 타율 .321 21홈런 63타점 / 타율 .301, 25홈런 74타점을 기록하면서 팬들의 기대에 부응한다. 그리고 부상 역시 기대에 걸맞게 꾸준히 당해서 시즌의 삼분의 일 가까이를 결장한다. 시즌 삼분의 일 가까이 결장하고 30대 후반의 나이에 저 성적 찍은게 더 무섭다 2006 시즌 종료 후에는 코너 외야수를 애타게 구하던 뉴욕 메츠[8]가 알루를 데려간다. 뭐 40줄에 들어섰지만 알루는 메츠에서도, 늘 그랬듯이 건강하면 아주 훌륭한 모습을 보였다. 불과 87경기에 출장했지만 타율 .341, 19홈런, 49타점을 기록했고, 심지어 시즌 말미에는 30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하기까지 했다. 이에 고무된 돌미나 메츠 단장 오마르 미나야는 옵션을 발동해 계약을 1년 더 연장했고, 결과는 망했어요. 시즌 내내 햄스트링 부상에 시달린 끝에 꼴랑 15경기 출장에 그쳤고 결국 이 시즌을 끝으로 알루는 은퇴를 선언한다. 그 와중에도 2009 WBC에 도미니카 공화국 대표로 참가했다.

은퇴후에는 프런트로 일하고 있다. 모국 도미니칸 공화국의 윈터리그 팀 오네스 델 에스코기의 단장으로 일하다가 2013 WBC 때는 도미니카 공화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단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현재는 샌디에이고 파드레스 선수 육성 부문 특별 자문을 맡고 있으며 2016 시즌 도중 올스타 퓨처스 게임에서 세계팀 감독을 맡기도 했다.[9]

3 여담

  • 다혈질이다. 2003 NLCS 6차전 당시 그 문제의 파울볼 강탈 사건 때 수비를 방해한 팬[10]에게 미친듯이 화를 낸 것이 가장 유명한 예. 게다가 스트라이트 판정을 놓고도 심판과 허구헌 날 입씨름을 했다. 컵스 프런트에서 '너가 유리몸인건 참을 수 있어도 심판이랑 치고 박는건 이제 못 참겠다능'이라면서 계약 연장을 거부할 정도.
  • 야구 가문 출신이다. 단순히 '가족들이 다 야구를 했다' 정도가 아니라 모두 메이저리그에서 가늘지만 선수로 10년 이상 롱런했다. 아버지 펠리페 알루야 메이저리그에서 감독까지 지낼 정도의 짬밥이었고, 삼촌이었던 매티 로하스와 헤수스 로하스 역시 1960~70년대 메이저리그에서 선수로 활동했다. 다만 삼촌들의 경우에는 벤치워머로 대부분의 커리어를 보냈고 물론 벤치워머로라도 메이저리그에서 15년 이상 살아남았으면 능력자이다. 주목할 만한 성적을 기록한 인물은 아버지 펠리페 알루와 본인.
  • 부자가 모두 메이저리그에서 20홈런을 기록했다. 이는 필더 부자(프린스 필더, 세실 필더), 그리피 부자(켄 그리피 주니어, 켄 그리피 시니어)등을 포함해서 메이저리그 150년 역사에서 단 네 번 있는 사례.
  • 누적 성적이 아쉬웠기 때문에 명예의 전당을 도전하기에는 힘들 것이라는 예상이 일반적이었고, 실제로 은퇴 후 처음 명예의 전당 자격을 부여받은 2014년 선거에서 6표로 1.1%의 득표를 받고 광탈했다.
  • 게선생과 더불어 배팅 장갑을 안끼고 타격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1. 이건 스페인어 발음이고 영어 발음으로 들어보면 모이지스 알로우 정도로 들린다. 음성 기호로는 mɔɪzᵻs əˈlu.
  2. 이름만으로 중남미 선수인줄 아는데 미국 국적 보유자다. 다만 부모님은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
  3. 좌익수와 우익수를 주로 봤다. 본인이 더 선호했던 포지션은 코너 수비 자리 중에서도 더 수비부담이 적은 우익수였는데, 이런 저런 팀의 사정상 좌익수 수비를 보는 경우도 많았다.
  4. 다만 HOF로 가기에는 누적 성적이 아쉬웠다.
  5. 당시 기록을 보면 마이너리그 첫 4년동안 싱글 A에서조차 타율이 2할5푼이 넘은 적이 없었다(...) 관련 링크
  6. 1993 시즌부터 발목 부상으로 고생했다. 그리고 이 때의 발복무상으로 결국 포지션을 코너 외야수로 변경해야만 했다.
  7. 월드 시리즈 MVP는 1차전과 5차전에서 선발로 나와 승리를 가져간 같은 팀의 에이스 리반 에르난데스에게 수여됐다.
  8. 이 당시 뉴욕 메츠의 코너 외야수는 앤디 차베스, 숀 그린, 클리프 플로이드 등이 로테이션으로 돌았는데 다 결점이 뚜렸했다. 앤디 차베스의 경우 타격이 아쉬웠고, 그린은 전성기의 장타력은 사라진채 노쇠화가 왔으며, 클리프 플로이드는 공갈포였다. 결국 메츠의 코너 외야수 구하기는 2010 시즌에 들어서야 제이슨 베이의 영입으로 해결된다. 그리고 베이는 역대급 먹튀 쇼
  9. 미국팀 감독을 맡은 사람은 샌디에이고의 전설 트레버 호프먼.
  10. 2003 NLCS 항목에도 나와있지만 사실 그 팬이 아니었어도 알루가 잡기에는 너무 먼 타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