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이 그로미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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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어 : Андре́й Андре́евич Громы́ко (안드레이 안드레예비치 그로미코)
벨라루스어 : Андрэ́й Андрэ́евіч Грамы́ка

역대 소련 외무부 장관
드미트리 셰필로프(1956~1957)안드레이 그로미코(1957~1985)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1985~1991)
역대 소련 최고회의 상무회 의장
콘스탄틴 체르넨코(1984~1985)안드레이 그로미코(1985~1988)미하일 고르바초프(1988~1989)

1 소개

1909년 7월 18일 ~ 1989년 7월 2일
소련의 외교관, 정치가.

1957년부터 시작하여 1985년까지 28년간 소련 외교를 이끌었던 주인공.
냉전 외교사의 산 증인[1]

그의 경력 자체가 곧 소련 외교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 총 28년의 소련 외무장관 재임 기간 동안 라이벌인 미국의 대통령 7명, 국무장관 9명을[2] 홀로 상대했던 셈이다.

1.1 전간기

안드레이 그로미코는 러시아 제국의 벨라루스 고멜주에서 1909년에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민스크 농업대학을 거쳐 1931년 소련 공산당에 입당하고, 1936년에 대학원 과정을 마쳤다. 그러나 이 때는 경제학도를 지망하여 1936년~1939년동안 소련 과학아카데미 경제 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였다. 그리고 경제학 박사가 되고 1939년, 드디어 외무성으로 자리를 옮긴다.

1.2 외교관 시절

1.2.1 주미 대사

그로미코는 주미 소련 대사관에서 근무[3]를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다.
그가 대사관에서 일하던 시기 소련은 최대의 위기를 맞고있던 상황이었다. 미국인들과 미국 정계가 소련은 이내 무너질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었을 때 그는 소련이 시련을 이겨낼 것이라며 연합국의 협력을 독려하며 소련의 상황을 미국 사회에 알리는데 주력하였다.
그 외에 시대가 시대인지라 참모로써 테헤란 회담, 얄타 회담, 포츠담 회담 등에도 참석하였다.[4]

1.2.2 UN 대사

1.2.3 외무장관

1.3 말년

1985년, 소련 서기장 콘스탄틴 체르넨코가 사망하자 그로미코는 개혁파의 기수인 젊은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후임 서기장에 취임하는 것을 지지했고, 그 보답으로 고르바초프는 서기장이 겸임하는 것이 관례이던 소련의 명목상 국가원수 직책인 소련 최고회의 상무회의 의장 직위를 그로미코에게 양보했다. 그로미코는 1985년 7월 27일부터 1988년 9월 30일까지 소련 최고회의 상무회의 의장에 재직하면서 고르바초프의 개혁을 지지했다.
1988년 10월 1일부로 고르바초프에게 최고회의 의장직을 넘겨주고 은퇴한 후에는 회고록을 집필한 후 1989년 7월 2일 사망했다.

작성중
  1. 1943년부터 1985년까지 외교무대에서 종횡무진했다.
  2. 존 덜레스(1953-1959), 크리스챤 허터(1959-1961), 딘 러스크(1961-1969), 윌리엄 로저스(1969-1973), 헨리 키신저(1973-1977), 사이런스 반스(1977-1980), 에드먼드 머스키(1980-1981), 알렉산더 헤이그(1981-1982), 조지 슐츠(1982-1989).
  3. 강철의 대원수바텐더가 직접 임명했다. 이 때 스탈린을 처음으로 직접 봤다고.
  4. 물론 참모로써, 이 시기의 주역은 역시 몰로토프와 스탈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