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사키 타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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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야마사키 타케시(山崎武司)
출신지일본 아이치치타
생년월일1968년 11월 7일
학력아이치 공업대학 부속 메이덴 고등학교
포지션1루수, 포수, 외야수, 지명타자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86년 드래프트 2위
소속팀주니치 드래곤즈 (1987~2002, 2012~2013[1])
오릭스 블루웨이브 (2003~2004)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2005~2011)

NPB 야구선수. 현재는 야구해설가/평론가, 때때로 카레이서나 배우로 일하고 있다.
무려 27년이나 현역으로 뛰면서 강타자로 이름을 날린 사나이. 별명은 쟈맨, 쟈이안, 근육맨, 야마 등이 있다.

1 프로 입단 이전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해 초6, 중3때 주장을 맡을 정도로 활약했으며, 고등학교 때에도 통산 56홈런을 때려내는 등 어릴 때부터 강타자의 면모를 보였다. 다만, 이러한 활약에도 코시엔 그라운드를 고등학교 시절 밟아본 적은 1번도 없다(...)

이후 1986년, 드래프트 2위 지명으로 호시노 센이치가 막 감독으로 취임한 주니치 드래곤즈에 입단한다.

2 주니치 드래곤즈 1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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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단 후 2년 간은 2군에서 지냈지만, 1989년부터 1군에 올라오면서 조금씩 기회를 잡아갔다. 이후 1992, 1993년 처음으로 100타석 이상 출장하면서 서서히 활약하게 되었고 1994년은 히코노 토시카츠의 복귀 등으로 출장 기회를 많이 잡지 못했지만, 1995년 66시합 233타석 59안타 16홈런 39타점 타율 .291 로 존재감을 드러내더니, 1996년 호시노 센이치가 2기 감독으로 돌아온 해 본격적으로 포텐이 폭발하면서 127시합 502타석 146안타 39홈런 107타점 타율 .322 을 기록. 생애 처음으로 홈런왕 타이틀과 베스트나인을 획득하면서 본격적으로 주전으로 활약하기 시작한다.

이후 2001년까지 계속 주전으로 활약하며 1998년 최다승리타점 타이틀을 얻기도 했고, 1999년 주니치 드래곤즈의 5번째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하지만 2001년 시즌오프, 그를 프로의 길에 들게 하고 전성기를 열어준 감독이었던 호시노 센이치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물러나고, 2002년 새로 부임한 야마다 히사시 감독과 갈등을 겪으면서 26시합밖에 출장을 못하는 등 제대로 활약을 펼치지 못했고, 불만을 품은 야마자키는 그 해 시즌오프 때 구단에 스스로 트레이드를 요청. 오릭스 블루웨이브로 이적하게 된다.

3 오릭스 블루웨이브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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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드로 이적한 첫 해인 2003년, 야마사키는 110시합 401타석 83안타 22홈런[2] 68타점 .232 로 나름 활약하면서 그 해 통산 200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3]

그러나 2년차인 2004년, 주니치 말기와 마찬가지로 새로 부임한 이하라 하루키 감독과 갈등을 겪으면서 62시합밖에 출장하지 못하는 부진을 겪었고, 결국 시즌오프 때 전력외 통보를 받게 되었다.[4]

그러나 오릭스-긴테츠와의 합병문제로 인한 프로야구 재편 과정에서 신설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초대 감독으로 부임하게 된 타오 야스시 감독의 구애를 받고, 그해 12월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 입단하게 된다.

4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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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쿠텐으로 이적한 야마사키는 첫 해인 2005년 118시합 439타석 102안타 25홈런 65타점 타율 .266 을 기록하며 다시 맹활약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2007년엔 39세의 나이로 141시합 594타석 132안타 43홈런 108타점 타율. 261 을 기록해 홈런왕, 타점왕, 베스트나인을 수상하면서 역대 3번째 양대리그 홈런왕이 됨과 동시에 프로인생 최고의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이후로도 야마사키는 계속 두 자릿 수 홈런을 찍으면서 신생 약체팀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주전선수, 정신적 지주로써 맹활약했다. 또 2009년 3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베스트나인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1년엔 102시합 402타점 83안타 11홈런 48타점 .229 의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고, 그 해 취임한 은사 호시노 센이치의 젊은 선수진을 주축으로 하는 팀 방침에 의해[5] 전력외 통보를 받게 된다.

이후 주니치 드래곤즈로 다시 복귀를 결정. 10년만에 고향팀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5 주니치 드래곤즈 2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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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치로 다시 돌아온 야마사키는 2012년 90시합에 출장하는 등의 노익장을 과시했지만, 이 해 홈런은 단 1개 치는 등 노쇠화를 가리기는 힘들었고, 결국 2013년 51시합 13안타 0홈런 7타점 타율 .210의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면서 그 해를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하게 된다. 이후 2014년 3월 공식적으로 은퇴하며 기나긴 현역생활을 마무리하게 된다.

통산성적은 2249시합 8102타석 1834안타 403홈런 1205타점 14도루 타율 .257 이다.

6 기타

불같은 성질로 유명해서 현역 시절 6차례나 퇴장을 당하는 등의 일을 겪었다. 그것도 현역으로 재직한 3구단에서 전부 시합 도중 퇴장당한 경험으로(...) 이 기록은 야마사키와 마찬가지로 노익장으로 유명한 터피 로즈와 같이 가지고 있다.

은퇴 후 한때 팀메이트였던 가네무라 요시아키와 게스트로 출연했던 야구 토크쇼에서 본인이 노력파보다는 천재형 타자에 가깝다는 발언을 한 적 있다. 일화로는 2000년 시즌 전 스프링캠프 연습때 야구화를 깜빡하고 두고 와서 스파이크가 없는 연습화를 신고 타격하던 도중 호시노 센이치 감독에게 적발되었는데, 당시 선수들의 조그마한 실수에도 벌금을 엄격하게 물리기로 유명한 감독이 무서워서 '올 시즌은 스파이크 없이 치는 타법으로 정했습니다(...)' 라고 임기응변으로 어찌저찌 넘어가고 결국 시즌 내내 스파이크 없이 연습화로 경기를 했는데[6] 놀랍게도 타율이 직전 시즌보다 7푼 가까이 오르는 현상이 벌어졌다. 디딤발이 잘 미끄러져서 힘없는 우익수 앞 안타가 많이 나왔다고. 그 대신 강타자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지난 시즌보다 홈런이 10개 줄어드는 댓가를 치르고 다음 시즌부터는 야구화를 신었다고 한다. 또 장비에 민감하지 않은 타입이라, 홈런왕을 기록했던 96년 시즌 전 스프링캠프에서는 이전 시즌까지 쓰던 배트보다 조금 긴 배트를 썼던 것을 스프링캠프 종료 직전에야 알아차리고 원래대로 바꾸기 귀찮아서(...) 별 생각 없이 시즌 내내 사용했는데, 시즌 후 결과는 홈런왕과 베스트 나인이었다.

그리고 이 선수가 한국에선 그렇게 유명하진 않아서 그런지 원래 이 항목은 야마자키 타케시의 리다이렉트 항목이었다(...)
  1. 공식은퇴는 2014년 3월.
  2. 그 해 일본인 타자 최다 홈런.
  3. 그러나 규정타석 만족엔 실패했다.
  4. 다만 이하라와는 퇴단 후 화해했다고 한다.
  5. 사실 호시노는 자신의 과거를 아는 선수들을 상당히 껄끄럽게 생각했나 본지, 또는 아무래도 자신의 과거를 아는 선수들이 섞여 있으면 선수들 사이에서 카리스마를 유지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나 본지 감독 취임 때 그 팀의 기존의 고참급 선수들을 중심으로 방출 내지는 트레이드의 소용돌이가 한번 지나가던 경향이 있었다.
  6. 야쿠르트 스왈로즈와의 경기 도중 상대 포수 후루타 아츠야가 야마사키가 스파이크를 신지 않은 것을 알아차리고 '스파이크 없이 어떻게 타격을 하느냐' 라고 걱정한 나머지 시합이 잠시 중단될 뻔 해서 곤란했다고 한다. 남의 속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