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성씨)

1 한국의 성씨

한국의 성씨
· · · · · 강전 · · · · · · · · · · · · · · · · · · · ·
· · · 남궁 · · · · ·
· · · · · 독고 · · · 동방 ·
·
· · 망절 · · · · · · · · · ·
· · · · · · · · · · · ·
· 사공 · · · · 서문 · · · 선우 · · · · · 소봉 · · · · · · · · ·
· · · · · · 어금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장곡#s-2 · · · · · · 제갈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황목 · 황보 · ·


한국의 왕씨 중에서 개성을 본관으로 하는 파는 고려 왕조의 왕족이다. 고려가 원간섭기에 부마국이었던 역사로 몽골 제국 칭기즈 칸의 가문이자 황실가였던 보르지긴 가문의 피도 흐른다.

전 왕조의 왕족이라는 점 때문에 조선 초기에 왕씨 학살을 당해 수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대동야승에서는 왕씨들을 외딴 섬에 보내는 대신 살려주겠다는 거짓말로 배에 태운 후에 물질에 능한 장사들로 하여금 배 밑에 구멍을 뚫어 배를 침몰시켜 몰살시켰다다는 이야기가 실려있다. 야사에 따르면 이 때문에 왕씨들은 탄압을 피해서 왕씨 성에 획을 더하는 식으로 다른 성씨로 바꾸었다고 하며, 옥(玉)이나 전(全)씨, 혹은 전(田)씨 성을 가진 사람들의 일부는 이렇게 성씨를 바꾼 왕씨들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왕씨들은 모친의 성을 따르도록 했고, 공을 세워 왕씨성을 하사받은 경우에는 원래 성으로 돌아가도록 했다. 도망친 왕씨들은 끝까지 추적해서 없애버렸는데, 조선초 기록을 보면 도망친 왕모의 서자 왕모모를 목매달았느니 하는 얘기가 종종 나온다.

태조실록에 보면 누가 왕모가 황모로 이름을 바꾸고 이사를 갔는데 관리들도 이를 알고도 조사하지 않았다며 신고한 기록이 있다. 의금부에서 잡아다 조사를 해보니 종이었는데 신분세탁을 한다고 왕씨로 바꿨다가, 왕씨들을 잡아들이자 황씨로 다시 바꾼것으로 확인되었다. 이사 후 거주지의 관리는 무죄방면 되었지만, 이사 전 거주지의 관리는 왕씨 주민의 내력을 조사하지 않은 죄로 귀양을 갔다. 신고자도 무고죄로 다스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는데, 신고 내용 자체는 사실이므로 무고로 처벌할 수 없다며 방면했다.

후에 왕씨 성을 쓰는 자들을 찾아서 고려왕조에 제사를 지내는 벼슬을 내려주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아서 탄압 자체는 조선 초기에 그친 것 같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적은 인구수를 차지하고 있다.

왕씨보다 적은 왕족으론 발해왕족인 밀양 씨, 협계&영순&남원 씨와 고구려 왕족인 횡성 씨, 백제 왕족인 부여 씨가 있다.[1][2][3]

중국에서는 성씨순위 2위의 매우 흔한 성씨이지만(왕서방) 한국에서는 28,000명 정도 되는 희성이다.

유명인으로는 왕건과 더불어 뽀뽀뽀에서 뽀미언니를 지낸 바 있는 왕영은, 배우 전지현(왕지현), 아나운서 왕종근, 배우 왕지혜, 왕석현 유도선수 왕기춘 등이 있다.

은근히 인터넷 소설에서 등장인물의 성씨로 자주 쓰이는 성씨다. 일단 아무래도 이랑 동음이의어이다 보니.

왕서방의 임팩트 때문인지 해괴하게도 중국(화교) 성씨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왕씨가 중국 성씨라면 고려 왕조는 얄짤없는 중국 왕조가 되버린다.그런데 고려 왕조가 중국 당 황실에서 나왔다는 프로파간다가(...) 편견의 희생 성씨라 할 수 있다.

1.1 왕씨 성을 가진 캐릭터

2 중국과 베트남의 성씨

이씨와 함께 중국에서 가장 많은 성씨 중 하나이다. 그 숫자는 이씨와 박빙으로, 2006년도 조사에서 이씨가 왕씨를 제친 적이 있는데, 열받은 왕씨들의 ㅍㅍㅅㅅ 덕분에 다음 조사 때 도로 환원되었다. 통계에 따라 수치가 다르게 나올 수는 있으나 2016년 기준 지금은 이씨가 우세한 듯하다.

그러나 중국은 오래 전부터 왕씨가 대세를 이루었기에, 중국인을 상징하는 왕서방이라는 캐릭터가 있다. 자세한 건 해당 문서 참조.

베트남에서도 브엉(Vương)씨라 하여 일부 존재한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div></div>

  1. 다만 횡성 고씨는 중국의 요양 고씨와 다르게 제주(도) 고씨의 방계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있고, 부여 서씨같은 경우 당나라에서 백제 왕손인 부여융이 서씨 성을 받았다는 것에 근거를 두는데 정작 중국에는 그런 기록이 없다.
  2. 횡성 고씨의 경우는 과거 제주도 계통 고씨들 중 횡성 고씨 분파가 실제 별도로 존재했었고 이 두 횡성 고씨들의 족보가 별도로 있었기에(그리고 제주도 계통 횡성 고씨의 인구가 훨씬 더 많았기에), 제주도 계통 고씨들이 모두 제주 고씨로 합본을 한 이후에도 과거 제주도 계통 횡성 고씨의 존재를 기억하고 있던 일부에서 혼동을 하는 케이스이다. 물론 그것이 현존하는 횡성 고씨가 고구려 왕족 후손임을 확증한다는 얘기는 아니겠지만, 이러한 오해에 따른 의심은 이들에게 많이 억울할것이다.
  3. 부여의 여(餘)를 살짝 바꾼 서(徐)로 바꿔서 살아 설도 있다. 개성 왕씨도 왕(王)을 살짝 바꾼 전(田)씨등으로 바꿔 살았다. 그러나, 부여 서씨같은 경우 집성촌이 충남 부여가 아니라, 평안남도 개천군(개천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