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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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
파일:Attachment/unesco-worldheritage.png
이름한글경주역사유적지구[1]
영어Gyeongju Historic Areas
프랑스어Zones historiques de Gyeongju
국가·위치대한민국 경상북도 경주시

등재유형문화유산
등재연도2000년
등재기준(ii)[2], (iii)[3]
지정번호976

五陵
사적 제172호

1 개요

경상북도 경주시 금성로 38-9에 있는 다섯 기의 능.

2 상세

신라 초대 국왕 혁거세 거서간알영부인, 2대 국왕 남해 차차웅, 3대 유리 이사금, 5대 파사 이사금 다섯 명의 능으로 알려져 있다. 네 명 왕들의 공통점은 모두 박씨 왕이다. 가운데 하나를 두고 나머지 네 무덤이 한 쪽 면에 위치한 식으로 되어있다. 무덤은 돌무지덧널무덤으로 추측되는데, 신라 초기의 무덤은 돌무지덧널무덤이 아니라 널무덤이나 덧널무덤으로 조사되고 있어 이 오릉이 신라 초기의 왕릉이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4]

인근에 박혁거세 탄생설화의 배경인 나정이 있으며 마찬가지로 인근의 신궁 역시 박혁거세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삼국유사에 오릉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한다.

박혁거세가 나라를 다스린지 61년. 어느 날 하늘로 올라갔는데, 8일 후에 몸뚱이가 땅에 흩어져 떨어졌다. 그리고 왕후 역시 왕을 따라 세상을 하직한다. 나라 사람들이 이들을 합장하여 장사지내려 했으나, 큰 이 나타나 방해하므로 머리와 사지를 제각기 장사지내 오릉을 만들고 능의 이름을 사릉巳陵이라고 하였다. 혹은 뱀이 무덤을 지키기에 사릉이라고 한다.

이 오릉과 후대의 모든 박씨 왕의 왕릉은 거의 천 년 뒤에 즉위한 신덕왕 등이 묻힌 배동 삼릉, 경애왕릉 등을 포함해 전부 경주 시가지 서남쪽, 남산 서쪽에 줄지어 있어서 이 지역이 서라벌 내에서도 박씨 세력과 특히 밀착된 지역이 아닐까 추측된다.

왕릉 외에 지금 남아있는 건물들은 조선시대 초 1429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다시 짓기도 했다. 지금은 매년 춘분에 신라 역대 박씨왕을 기리는 숭덕전 춘분대제가 열리는데, 박씨는 본관에 관계없이 모두 박혁거세 계열이므로 범박씨가 모두 참여하고 있다. 고령 박씨 후손인 박근혜 대통령도 대통령 당선 전에는 여기에 매년 참석했다.

오릉 주위로 숲이 울창하게 조성되어 있는데, 이게 별로 넓은 숲도 아닌데도 능역에 고라니가 산다.
  1. 석굴암, 불국사, 양동마을 제외
  2.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
  3.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
  4. 故 이근직 《신라왕릉연구》 학연문화사, 201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