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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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은 구청 소재지.
응봉동
鷹峰洞 / Eungbong-dong

국가대한민국
광역자치단체서울특별시
기초자치단체성동구
관할 행정동응봉동
면적0.57km²
인구 17,233명
(남: 8,253명, 여: 8,980명)
(2013.3.31.)
세대수6,386세대
(2013. 3. 31.)
주민센터응봉동 주민센터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ko/thumb/7/7b/서울시지식공유095.JPG/240px-서울시지식공유095.JPG
응봉동 서남부의 응봉산

鷹峰洞 / Eungbong-dong

1 개요

서울특별시 성동구의 법정동.

2 동명 유래 및 역사

동명은 동의 서남부에 있는 응봉산에서 따왔다. 응봉동 일대와 뚝섬은 조선시대 왕들의 매 사냥터였는데, 그 사냥터 옆의 산에 매들이 많이 살았으므로 매봉, 또는 매 응(鷹)자를 붙여서 응봉이라 불렀다. 옛 응봉산은 지금의 응봉산보다 훨씬 컸다고 한다. 응봉이라는 지명이 응봉동 말고도 성동구 곳곳의 근린공원 이름으로 남아있는 것도 그 이유.
성동구 서부는 거의 응봉(매봉)산이었으며, 남산까지 이어지는 매우 거대한 산이었다. 지금은 개발로 인해 산이 깎여 응봉산이 조각조각 나뉘었는데, 독서당로를 기준으로 남북으로 나뉘어 처음에는 북쪽을 큰 매봉, 남쪽을 작은 매봉이라고 불렀으나 이제는 큰 매봉을 대현산, 작은 매봉을 응봉산이라고 부른다. 또 행당로를 기준으로 잘려나간 대현산 북쪽 봉우리는 무학봉이 되었고, 난계로를 기준으로 잘려나간 금북초 뒷산이 지금의 응봉공원, 금호로 서쪽으로 잘려나간 산이 금호산, 또, 금호산에서 독서당로 이남으로 잘려나간 산이 달맞이봉, 금호산에서 동호로 서쪽으로 잘려나간 산이 매봉산(응봉근린공원)이 되었다. 원래는 매봉산은 응봉산의 다른 이름이었으나, 이제는 아예 다른 산으로서 이름을 쓰게 된 것. 단 매봉역과는 관계없다.

조선시대에는 한성부 남부 두모방 신촌리계라는 이름으로 응봉동과 행당동 지역을 관할하였고, 1914년 경기도 고양군 한지면으로 편입되면서 지금의 행당동 지역은 행당리로 분리되고 응봉동 지역만 신촌리로 남게되었다.

1936년에는 경성부에 다시 편입되어 경성부 응봉정이 되었으며 광복 이후 행당동과 현 응봉동 지역을 관할하는 행당동이 설치되었다.

1955년 고산자로를 기준으로 동쪽(지금의 행당1동과 응봉동 동부)가 행당동이 되었고 서쪽(지금의 행당2동과 응봉동 대부분 지역)이 행응동이 되었다. 1970년에 행응동에서 대현산 남쪽은 응봉동으로 분리되면서 대현산 북쪽은 다시 행당동의 관할로 편입된다.

3 지리

잘 보면 풍수지리에서 명당이라 하는 배산임수의 형태를 지녔다. 북으로 대현산, 서쪽으로 응봉산, 남쪽으로 중랑천이 있어 병풍처럼 동네를 둘러싼다.

산이 아닌 곳에서는 응봉삼거리를 최고점으로하여 경사가 급하게 낮아진다.

4 교통

성수대교와 바로 이어지는 응봉교가 위치해 있어 성수동, 강남 방면에서 왕십리, 시내 방면로 가는 차들은 모두 여기를 거치게 되어 있다.

경의중앙선 응봉역이 동의 남쪽 강변에 자리잡고 있다.[1] 봄이 되면 응봉산에 만개한 개나리를 보려고 갑자기 사람이 많아지기도 한다. 옥수역~응봉역 구간의 경치가 매우 좋다.
  1. 사람 많은 길가도 아니고 동네 구석에 자리잡고 있어 초행길인 사람들은 응봉역이 응봉동 어느 구석에 있는지 찾아헤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