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무영

李無影
1908년 ~ 1960년 4월 21일

아명은 이용구(李龍九), 본명은 이갑용(李甲龍)이다. 1908년 충청북도 음성에서 태어나 충주에서 성장했다.

1926년 의지할 곳 없는 청춘이라는 소설을 발표하여 등단하였다. 이후 교사,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하다가 기자 생활을 그만두고 1939년 경기도 시흥에 정착한 후에는 농민, 흙의 노예 등과 같은 농민 소설을 집필하였다. 대표작으로는 귀농을 주제로 한 "제1과 제1장"이 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말기 일간신문에 친일 논설을 발표하는 등, 친일파로 활동하였다. 1942년 조선총독부의 관변 단체인 조선문인협회의 소설·희곡회 상임 간사를 맡았으며, 같은 해 9월부터 1943년 2월까지 일본어 소설 '청기와집'을 연재했다. 해방 후에는 친일파 청산을 폄훼하거나, 친일파를 시대의 희생양으로 묘사한 다수의 글을 남기기도 했다.누군가가 생각난다 이로 인해 고향인 음성군에서 꽤 까이고 있다.

6.25 전쟁 때에는 염상섭, 윤백남과 함께 대한민국 해군정훈장교로 복무, 1955년에 대령으로 예편했다.

1960년 4월 21일 뇌일혈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