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하라 유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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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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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 시절.

石原裕次郎 1934.12.28~1987.07.17

일본 쇼와시대를 대표하는 영화배우이자 가수다. 형은 유명한 도쿄 도지사 이시하라 신타로이다.

일본 태양족의 아이콘이었고 청춘영화 주인공을 도맡아 했다. 일본영화계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사인 닛카츠가 도호나 도에이에 비해서 세가 약할 때 닛카츠를 먹여 살린 배우이다. 가수로도 유명했다.

태양의 계절 세트장에서 스텝과 배우들이 이시하라 유지로의 모습을 보았고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영화 미친과실에 데뷔시킨다.
여기에서 주연을 맡아서 훗날의 부인이 되는 기타라하 미에가 열연하게 되며 둘은 우리나라 신성일 엄앵란의 원조로서 청춘영화의 단골이 된다.

실제로 이시하라 유지로는 신성일의 롤모델이나 마찬가지다. 신성일이 당시 이시하라 유지로의 헤어스타일과 복장, 연기스타일을 많이 따라했다고 전해진다.

이시하라 유지로가 지금까지 일본인이 가장 사랑한 남자 라는 애칭으로 불리면서 사후까지도 추모제를 하고 박물관까지 있는 것은 이시하라 유지로가 유쾌하고 스스럼없는 태도와 친대중적인 성향뿐만이 아니라 어느세대에나 기억에 남을만한 캐릭터로 연예인으로서 성실한 부분이 크다. 참 늙어서 추태의 신경지를 개척한 신성일하고 너무 비교된다. 근데 이시하라 유지로도 신성일처럼 오래살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닛카츠영화사는 원래 일본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영화사인데 토호 도에이 등에 밀려서 이러다할 힘을 못쓰다가 50년대 중반 이시하라 유지로를 필두로 액션영화와 청춘영화를 개척하면서 다시 일어서게 된다. 이시하라 유지로는 닛카츠의 간판이었고 이시하라 유지로는 물론이고 고바야시 아키라, 요시나가 사유리, 아카기 케이치로, 시시도 조, 아사오카 루리코, 그리고 현재 마지막 닛카츠의 액션스타인 와타리 테츠야다.

닛카츠영화사가 당시 시대극과 문예물이 대세를 이룰 때 무국적액션영화라든지 청춘영화로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컬러TV가 나오면서 영화관람객의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어 일본영화계에 불황이 찾아오는데 이 때 이시하라 유지로도 닛카츠를 나와서 이시하라 프로덕션을 운영하게 된다. 일본에서 스타가 개인프로덕션을 세운 거의 최초의 사례이고 몇몇 대형영화들은 성공했지만 그래도 경영이 매우 부진해서 고생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주로 TV 형사 드라마 출연에 주력하게 된다.

이시하라 유지로는 당시 일본 남자 치고는 키도 크고(178cm) 다리도 길고 덩치도 크고 잘 생긴데다, 각종 스포츠와 해외여행을 즐기며 유명인사들과 어울려 파티로 시간을 보내는 멋진 삶을 보여줬기 때문에 당시 일본인들에게는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을 달고 살고 줄담배를 피우던 습관 때문에 40대 중반부터 급격하게 건강에 이상이 온다. 이시하라 유지로는 식도락을 즐기고 음식만들기를 좋아하는 사람인데 고기를 좋아하는 식습관도 그의 건강에 좋지않았고 부상과 각종 질병에 늘 시달리는 운명을 타고난 사람처럼 일생동안 수없이 병치레를 많이했다.

80년대 내내 병마와 싸우기 전부터, 즉 아주 어릴 때부터 간이 나빴다. 문제는 술과 담배를 가까이 했고, 툭하면 부딪치고 골절상을 입었다.터프가이로 불린 애칭과는 달리 몸 안쪽은 엄청 망가진 셈이다

이시하라 군단이라고 해서 와타리 테츠야, 칸다 마사키를 비롯한 이시하라 프로덕션으로 유명한데 이시하라 유지로가 워낙 스캔들이 없고 남자들끼리만 어울려서 오해를 샀는데, 반면에 말년에 마츠다 세이코랑 염문설도 있었다. 그러나 이시하라 유지로는 60년대 말에 큰 병으로 한 번 병원에 실려간 70년대 말부터 건강이 망가졌다, 그리고 80년대에 드문드문 방송을 하기도 하지만 항암치료때문에 성생활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마츠다 세이코와의 관계는 정상적인 연애관계가 될 수가 없다.

이시하라 유지로의 화보집을 보면 하와이에서 이시하라 유지로 부부와 이시하라 군단, 마츠다 세이코가 어울려서 노는 장면이 제법있다. 이시하라 유지로는 오래 살지 못하고 향년 52세로 숨을 거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