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천일기

1 개요

朝天日記. 조선시대에 공식직함을 달고 중국지역을 사행하며 지은 일기이자 여행기.

2 조헌(趙憲)의 조천일기

책의 원제목은 연도일기(沿途日記)이지만 다들 조천일기라 부른다.

조선 선조 7년, 1574년에 성절사의 질정관(質正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온 조헌(趙憲)이 그 과정에서 매일의 일상을 기록한 일기. 총 2책. 현재 국사편찬위원회 등에 소장되어 있다.

저자가 1574년 5월 10일부터 동년 9월 14일까지 약 4개월간 명나라를 다녀오며 지은 일기이자 기행문으로, 우리나라에서 베이징까지 왕복한 노정기와 그 과정에서 겪은 중국 명나라의 문화, 풍물, 사건, 제도, 기타 노정길에서 본 것들을 세심히 모두 기록한 것이다.

1500년대 우리나라와 중국의 사행길의 모습과 사행과정, 사행간의 절차, 양국의 문물교류에 대해 연구해 볼 수 있는 자료이다.

저자가 직접 친필로 쓴 조천일기 자필 원본은 조헌 관련 유품이란 명칭으로 다른 조헌의 유품들과 함께 보물 제1007호로 지정되어 칠백의총관리소에 보관되어 있다. 그 외에 필사본이 국사편찬위원회에 소장되어 있으며, 조헌의 문집인 20권 10책의 중봉문집(重峯文集)에도 그 내용이 그대로 수록되어 있다. 조헌의 문집에는 저자가 1574년에 쓴 조천일기 외에도 1589년에 함경도 길주에 유배되어 있을 때 쓴 유배일기인 북적일기 등이 존재한다.

3 김성일(金誠一)의 조천일기

책의 원제목은 연행록(燕行錄)이지만 다들 조천일기라 부른다.

임진왜란 때 활약했던 선조시기의 문신인 학봉 김성일이 1577년에 서장관(書狀官)으로 연경(燕京)에 다녀오며 그 과정에서의 매일의 일상을 기록한 기행일기(紀行日記).

1577년 2월 20일에 압록강을 건너 4월 3일에 북경에 도착, 이후 종계변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념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1577년 당시 조선과 명나라 양국간의 사행 과정에서의 문견한 바에 대해 연구할 수 있으며, 종계변무 문제에 대해서도 알아볼 수 있는 자료이다.

자필 원본의 경우 김성일 종가 전적이란 명칭으로 대한민국 보물 제905호로 일괄 지정되어 있다. 김성일 종가 전적은 총 56종 261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중 조천일기는 905-34호이다. 김성일 전적에는 조천일기 외에도 1579년에 저술한 기묘일기북정일기, 1570년에서 1573년까지 4년여간 쓴 학봉일기(鶴峰日記), 1590년에 일본 사신으로 갔을 때 쓴 학봉선생해사록(鶴峰先生海槎錄), 그외 석문정사중수일기 등의 여러 일기류 저서들이 있다.

그 외에 김성일의 작품을 모아놓은 문집인 16권 10책의 학봉집(鶴峰集)에도 권3에 기묘일기, 북정일기와 함께 그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학봉집은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4 최기(崔沂)의 조천일기

조선 중기의 문신인 최기(崔沂)가 선조 40년, 1607년에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오며 그 과정에서 매일의 일상을 기록한 일기. 현재 국사편찬위원회에 소장되어 있다.

1607년 6월 15일부터 11월 26일까지의 중국 사행 일정간에 겪었던 일을 모두 기록한 것으로, 1600년대 초 조명 양국간의 관계와 사행루트, 의주와 북경 사이의 도시들과 각 지역의 문화 등에 대해 연구할 수 있는 자료이다.

5 장자충(張子忠)의 조천일기

조선 초 태조 이성계 시기의 문신이었던 장자충(張子忠)이 명나라를 사행하며 그 일상을 기록으로 남긴 일기. 우리나라에서 중국 북경(北京)을 우호적인 목적에서 다녀와 그 교류과정을 남긴 기록물 중 현재까지 남아있는 최초의 사행(使行) 기록으로 유명하다.

위화도 회군 당시 큰 공을 세웠던 회군공신(回軍功臣) 장자충이 사은사(謝恩使)로 명나라의 수도인 북경을 오가며 겪은 매일의 일상을 기록한 것이다. 태조 이성계 4년인 1395년과 세종 원년인 1419년에 다녀왔다.

장자충의 조천일기에는 매일의 일상을 기록한 일기 외에도 중국의 문물과 문화, 풍경 등을 감상하며 지은 시(詩) 131편이 수록되어 있다. 장자충이 사행을 떠났을 때는 명나라 또한 남경에서의 천도가 완전히 이뤄지지 않았던 시기로, 아직 수도로서의 면모를 갖추지 못했던 북경의 상황과 점차 수도로서 발전되어가는 과정 등을 볼 수 있으며, 얼룩말이나 사자, 기린 등 지금껏 보지 못한 아프리카 동물들을 보며 한국인이 처음 느꼈던 충격 등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6 김육(金堉)의 조천일기

조선 인조대의 문신인 김육(金堉)이 인조 14년인 1636년 6월에 동지사(冬至使)로서 중국 북경을 다녀온 과정을 일기로 남긴 것이다.

1636년 6월에 배를 타고 해로를 통해 북경으로 출발하여, 1637년 5월에 서울로 도착하기까지 약 1년여간의 사행 과정을 매일의 일기에 담았다. 김육의 문집인 11권 6책의 잠곡집(潛谷集)에도 그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명나라가 멸망하기 전 조선에서 마지막으로 보낸 사절단의 참가 인원이 매일의 일상을 직접 기록한 일기책으로, 멸망을 바로 눈앞에 둔 명나라의 분위기를 그대로 전해준다는데 그 의미가 크다.

7 황여일(黃汝一)의 조천일기

선조와 광해군 대의 문신이던 황여일(黃汝一)이 중국을 사행하며 기록한 일기. 원본은 조천일기유고(朝天日記遺藁)라 되어 있다.

황여일이 지은 여러 일기 중 하나로 그 중 해월선조일기필적(海月先祖日記筆跡), 해월헌계미일기(海月軒癸未日記), 조천일기유고(朝天日記遺藁), 은사일록(銀槎日錄), 일기초(日記草) 등 이전 황여일의 문집에 따로 수록하지 않았던 일기들은 현대에 들어와서 평해황씨 해월종택 소장 고서란 이름으로 묶어놓았다.

평해황씨 해월종택 소장 고서에는 황여일의 여러 일기들 외에도, 아들 황중윤이 주문사(奏聞使)에 임명되어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쓴 서정록(西征錄)과 해남 유배시에 쓴 유배일기인 남천록(南遷錄) 등이 함께 추가되어 있다. 그 외에도 평해황씨 해월종택에서 수백여년에 걸쳐 소장하고 있던 여러 종가의 서적들이 묶여 있다.

8 이상길(李尙吉)의 조천일기

조선 중기의 문신이던 이상길(李尙吉)이 광해군 9년인 1617년 4월부터 1618년 4월까지 1년여간 동지상사로 명나라에 다녀온 일을 일기로 남긴 것이다.

이상길의 문집인 4권 2책의 동천집(東川集)에 그 내용이 수록되어 있으며, 동천집은 현재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일기에는 저자가 평안도관찰사로 있을 때 받은 교서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문집에는 조천일기 외에도 1621년에 의주(義州)에 있는 명나라 장수 모문룡에게 군량을 운반, 공급하는 문제에 대해 논의한 내용 등이 수록되어 있어 명말청초의 국제 정세에 대해 연구할 수 있는 자료로 인정받고 있다.

9 김감(金鑑)의 조천일기

조선 중기의 문신이던 김감(金鑑)이 1617년에 위의 이상길을 따라 1년여간 명나라를 다녀오며 기록한 일기.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이상길(李尙吉)의 밑에서 동지사서장관(冬至使書狀官)으로 같이 명나라를 내왕했던 김감이 지은 일기로, 이상길의 조천일기와 함께 대조하여 1617~1618년간 명나라와의 외교 상황에 대해 자세히 연구할 수 있는 자료이다.

김감의 문집인 4권 3책의 입택집(笠澤集)에 수록되어 있으며, 문집에는 조천일기 외에도 같은 일기류인 서행일록(西行日錄) 등이 있다.

10 홍호(洪鎬)의 조천일기

광해군, 인조대의 문신인 홍호(洪鎬)가 인조 10년인 1632년 7월부터 1633년 5월까지 약 10개월간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오면서 그 과정에서의 매일의 일상을 기록한 일기.

홍호의 문집인 6권 2책의 무주일고(無住逸稿)에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