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야권

初夜權.
Droit du seigneur (프랑스어, "영주의 권리")
jus primae noctis (라틴어, "초야의 법")
초야의 권리가 아니다! 초야라는 사람이 만든 권법도 아니다

1 개요

결혼하는 신부의 첫날밤을 남편이 아니라 그 지방의 영주가 먼저 치르도록 했다는 것. 유럽 중세의 대표적인 떡밥 중 하나다. 유럽에서는 명목상으로 존재하는 영주의 권한으로 알려졌으나, 이것이 정말 시행된 적은 없었으며, 실제로는 결혼세를 냄으로서 해소되는 것이었다. 또한 세간의 편견과는 달리 유럽 외 지역에도 초야권과 같은 제도가 있었으며, 이쪽은 실제로 시행된 사례가 많다.

2 유럽에서의 초야권

중세 초야권의 기원을 많은 사람들이 중세 그리스도교십일조와 연관지어서 생각하지만, 사실 초야권은 그리스도교와는 전혀 관계 없는 게르만족의 전통에서 유래된 것이다.[1] 게르만족은 일반적으로 첫 수확물을 자신을 먹여주고 재워주는 부족장에게 바치는 관습이 있었다. 부족장들에 대한 하나의 의무였다. 이러한 전통은 중세에 제도화와 변질화를 거치게 되었는데, 농노들은 영주들에게 첫 수확물 중 일부를 세금이라는 명목으로 바쳐야 했다.[2] 이것이 여러 종류로 파생 변질된 과정에서 나온 것이 초야권이다.

초야권 건으로 사건이 터저서 아랫도리가 문란한 영주가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일은 없다. 초야권의 남용으로 민란이나 다른 소요가 발생했다는 기록도 전혀 없다. 사실 한 지역에서 거의 왕이나 다름 없는 영주 입장에서 위생과 교육 수준이 한참 떨어지는 여자와 굳이 맨살을 맞댈 이유도 없고, 어쩌다 자기 눈에 띄는 하층민 여자가 있으면 부모나 본인을 잘 꼬셔서 첩으로 삼거나 하룻밤 치르고 후한 대가를 지불하면 되는 일이었다. 오히려 첩으로 삼는것이 당시의 관념으로는 하층민 여자의 부모입장에서 딸이 눈에 띄여서 출세하게 되어 좋은 일이라 여기기도. 아무리 곤궁한 영주라도 그깟 몇 푼 아껴보겠다고 복잡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초야권 같은 걸 발동시킬 필요는 없다.

초야권은 실질적으론 노동력 상실을 메꾸기 위한 세금 징수 목적으로 쓰였다. 즉, 결혼을 영주에게 허락받기 위해 일정 금액의 세금을 내는 형태로 시행되었다. 다른 영지에 있는 농노끼리 결혼하는 경우 여자 쪽 소속 영지에선 노동력이 상실되므로 초야권이란 이름의 결혼세를 청구했고, 대개는 남자 쪽 영지의 주인이 결혼세의 일부를 부담하고 나머지를 남자 농노가 부담하는 형태였다. 그런데 남자 농노측이 그것마저 부담할 경제력이 안될 때 여자 쪽 영지의 주인이 여자 농노와 초야를 가지고[3] 대신 결혼세를 안 받은 것. 영지 안의 농노끼리 결혼하는 경우엔 노동력 상실이 발생하지 않으므로 내지 않아도 되었다.

이상이 20세기 말까지 초야권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말이긴 한데 최근 역사학계의 견해는 초야권이 거의 실행되지 않은게 아니라 아예 초야권이란게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이유는 간단한데 초야권이 실제로 행사되었다는 사료가 전 유럽에 걸쳐 단 한건도 없기 때문이다.

초야권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되는 문서는 로마 제국 시절인 서기 300년 정도의 문학 작품에서이며 이후 본격적으로 초야권에 대해 등장하는 사료는 1300년대 문학 작품인데 이때는 중세 말기로 당연히 초야권이 실제로 행사될리 없었다. 1300년대 이후 유럽의 각종 문학작품에서 갑자기 초야권에 대해 기술된 사료가 폭증하는데 이때 어째선지 초야권에 대한 농담, 혹은 잘못된 믿음이 전유럽에 걸쳐 퍼진 듯 했다고 본다. 일종의 중세의 도시전설이었던 셈.

다만 이 속설이 유명해지자 1400년대부터 이걸 이유로 해서 세금을 뜯어내려하던 영주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정확히는 원래 중세에 결혼세가 있긴 했는데 초야권이 유명해지자 몇몇 영주들이 '오호라 이런게 있었구나~'하면서 이를 근거로 세금 안 내려는 농민들을 협박해서 세금을 받아내려 했다는 말. 즉 1400년대 전까지는 중세에 결혼세는 있어도 그게 초야권 때문이라는 사료는 없다. 마지막으로 1500년대 말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에서 한 띨띨한 영주가 초야권을 근거로 신부에게 성희롱을 하다가 농부들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사료가 남아있다. 이것이 유럽에서 초야권이 실제 성적 접촉과 연결된 유일한 사료이다. 이상 출처[4]

여기에 근대의 학자들이 중세는 이렇게 무지한 시대였다고 까면서 후대에도 유명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초야권은 계몽주의 시대에 접어들어, 볼테르를 비롯한 계몽주의자들에게 사실처럼 뻥튀기되어 역사서에 기술되기 시작했다.[5] 볼테르는 "우리가 중세를 배우는 이유는 중세를 까기 위해서다"라고 발언했을 정도였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중세 항목도 같이 참고할 것.

3 중국에서의 초야권

몽골족원나라한족송나라를 멸망시키고 중국을 실질적으로 통치할 때, 한족의 반란이 두려워 가한 제재 중 하나이다.

그 당시 원나라가 가한 제재로는 여러 사람이 모이는 것을 금지하거나, 야간통금시간을 지정하기도 하고, 신분제를 만들어 한족을 노예 등급으로 강등시키는 것 등이 있었다. 또 다른 제재가 바로 초야권이다.

10가구의 한인(漢人) 당 1명이 몽골 병사의 시중을 들어야 했는데, 여기서 새로 결혼하는 한족 여성의 초야권은 시중 드는 몽골 병사의 몫이 되었다. 실질적으로 한족의 신분이 노예와 다름없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처사였다.

다만 실제로는 사실상 한족에 의한 자치가 행해졌기 때문에 그리 흔한 편은 아니었다고 하며, 오히려 초야권이 일반적으로 행해진 곳은 라마교가 퍼져있던 몽골 지역이었다.

4 초야권이 실제로 발휘된 예

초야권이 실제로 시행된 사례는 유럽보다는 오히려 유럽 외부에서 많이 발견된다.

에티오피아에서 왕에게 받을 선물로 초야권을 얻어내서 그거 행사하려다가 신랑에게 맞아 죽었던 위인이라든가,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이야기라든가. 종종 아프리카중동에서 일어나는 종교적인 초야권은 여성의 처녀혈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길가메시 서사시길가메시도 초야권을 행사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들에게 SOS를 쳐서 등장한 엔키두가 결국 없앴다. 수천 년 전 메소포타미아에서도 초야권은 막장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티베트몽골에서 신부의 첫날밤은 오직 라마교승려만이 행사할 수 있었다. 아마 이 지역이 전 세계에서 초야권이 가장 오랫동안, 가장 일반적으로, 가장 광범위하게 행사된 지역일 것이다. 수행한다는 작자들이...

5 픽션에서의 초야권

게임에서 이 초야권을 직접/간접적으로 주장/행사한 캐릭터로는 란스가 있다.

신일숙의 만화 리니지에서 반왕 켄 라우헬은 초야권으로 인해 탄생한 캐릭터.

지혜안의 만화 에스할름 이야기에서 여주인공인 이본느는 자신을 짝사랑한 젊은 영주 루트에게 초야권을 빌미로 강간당한다.

얼음과 불의 노래에서 웨스테로스에도 초야권이 존재했지만 자에하에리스 1세가 공식적으로 폐지시켰다. 용의 씨들은 과거 타르가르옌 가문의 초야권 행사로 태어난 사람들의 후손인 경우가 많았다.

김세영&허영만의 만화 타짜에서 주인공 장태영이 린다정의 결혼식 직전에 화장실로 끌고 가 초야권을 행사한다.

우리나라에선 영화 브레이브 하트가 대박을 거두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영화에 나온 초야권은 엉터리이다... 하긴 영화 자체가 윌레스와 프랑스 공주의 사랑과 임신이라는 터무니없는 전개였으니...

Leslie Stevens의 'The Lovers'에서도 초야권이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결혼을 앞둔 마을 처녀를 미치도록 좋아하게 된 기사도의 화신이자 전쟁 영웅인 영주가 등장한다. 영주는 기독교도이고 영지민들은 노르망디 부근의 이교도로 나온다.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지 않는 그에게 동생이 초야권에 대해 알려주며, 영지의 기독교 사제에게 이런게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받는다. 여기서 사제는 '이교도들에게는 이러한 법이 있지만, 이는 그리스도인의 법에는 없고, 심지어 죄악일 수 있다'고 답한다. 초야권을 행사하러 마을에 가자 촌주는 '그들의 법에는 이런 것이 없지만, 우리의 법에는 존재하므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며 허락한다. 뒷이야기가 궁금한 사람들은 구하기 어려운 이 책보다는 이를 영화화한 찰턴 헤스턴 주연의 'The War Lord(1965년작)"를 보는 것이 낫다.
  1. 애초에 원칙상으로는 그리스도교 문화권의 도덕관념과 굉장히 모순되는 개념이다. 실제 사람들의 실행 여부와는 별개로 그리스도교는 다른 문화권에 비해 엄격한 일부일처제를 지향하고, 혼인 관계를 벗어난 성교는 모두 도덕적 지탄을 받는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신경 안쓰는 사람이야 차고 넘치지만, 초야권급 막장을 대놓고 공적인 법에다가 박아 놓기는 힘들다. 이 사실을 염두해가면서 이 문서를 읽어보자.
  2. 물론 농노들은 영주들의 토지 또한 경작해야 했다.
  3. 물론 이 경우도 형식적으로 같이 밤을 보냈으니 초야를 가졌다는 식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4. 이 글은 일개 블로거가 쓴 게 아니라 독일 괴팅던 대학 연구기관인 괴팅턴 과학원 소속 Jörg Wettlaufer 박사의 글이므로 참고할 것.
  5. 덕분에 제아무리 당대의 지식인들의 발언이라도 왜곡된 말을 후세에 전할 수 있고, 우리들 또한 불확실한 추측을 사실인 것처럼 기록에 남길 경우 후세인들이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을 위험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