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도르 군단의 분열행진곡

Parademarsch der Legion Condor(독일어)

1 개요

독일군가. 스페인 내전 당시 스페인에 파견된 공군 부대 콘도르 군단을 주제로 한 곡이다. 게르니카폭격하여 피카소에게 충격을 준 부대이기도 하다.

  • 작사 : 필립스 중위(Oberleutnant Philipps), 예리히 중위(Oberleutnant Jährig)
  • 작곡 : 칼 뵈겔자크(Karl Bögelsack)
  • 연도 : 1939년




피아노 연주 버전 테크노 버전은 영 아니다

2 가사

독일어번역(한국어)
1Wir zogen übers weite Meer
ins fremde Spanierland,
zu kämpfen für der Freiheit Ehr'
weil Haß und Krieg entbrannt.
Hier herrschten Marxisten und Roten,
der Pöbel der hatte die Macht.
Da hat, als der Ordnung Boten,
der Deutsche Hilfe gebracht.
우리는 아득한 바다를 건너
외국의 스페인 으로 진군했네.
증오와 전쟁이 발발했기 때문에
자유의 영광을 위해 싸운다네.
이곳은 마르크스주의자와 빨갱이들이 지배했고
오합지졸이 권력을 잡았네.
거기서 질서의 사자로서
독일의 도움을 가져왔네.
후렴Wir jagten sie wie eine Herde
und der Teufel, der lachte dazu,
Ha, ha ha ha ha,
die Roten in spanischer Luft und zur Erde,
wie ließen sie nirgends in Ruh.
우리는 그들을 짐승떼처럼 사냥했고
악마는 그걸 보고 웃었다네.
하, 하 하 하 하,
스페인의 하늘과 땅에 있는 빨갱이들은
어디에서도 휴식을 취하지 못했다네.
2Hat auch der Tod mit harter Hand
die Besten oft gefällt-
wir hielten aus, der Wall stand fest,
die rote Flut zerschellt.
Und ziehen die Legionäre
als Sieger ins deutsche Land,
dann schreiten mit unsere Toten,
wir heben zum Gruße die Hand.
죽음 또한 가혹한 으로
전우들을 자주 쓰러뜨렸고-
우리는 견뎌내었고, 벽은 굳게 서 있었으며,
붉은 물결을 쳐부쉈다네.
그리고 군단병들은
승자로서 독일 땅으로 귀환한 다음,
우린 죽은 전우들과 함께 걸어가고
경례를 하러 손을 들어올리네.

3 개사곡

콘도르 군단의 분열행진곡엔 상당히 많은 개사곡이 존재한다. 독일 군가에서 가장 많은 개사곡을 낳은 곡이 바로 콘도르 군단의 분열행진곡이다. 한편 이 노래는 여러 언어로 번역되기도 했는데, 추축국의 세력이 컸을 때에는 점령지에 창설된 사단에서 이 노래를 비슷한 의미의 가사로 번안하기도 했고, 추축국에 저항했던 세력에서 가사의 의미를 뒤집어서 사용하기도 했다.

퓨리에서 SS 친위대원들이 행군하며 부르는 곡이 이 곡이다.
나치가 이상으로 여겼던 순수 게르만의 나라였기 때문에 1절은 게르만뽕을 격하게 빨고 있다(...) 2절에는 나치 점령 당시 노르웨이 지도자였던 비드쿤 크비슬링도 나온다. 한편 이 노래를 검색해 보면 2차 세계 대전 당시 녹음본과 더불어 상당히 현대적인 노래도 나오는데, 생뚱맞게도 그리스의 NSBM 밴드 Wolfnacht에서 부른 것이다...
  • 제33SS 샤를마뉴 척탄병사단(프랑스인): Le chant du diable 악마의 노래
나치 독일과 싸웠던 프랑스의 외인부대 군가인 만큼 원래 가사를 대대적으로 뜯어 고쳤다. 단 Mais le diable marche avec nous Ha, ha, ha, ha, ha, ha. (하지만, 악마가 우리와 함께 걸어간다 하 하 하 하 하 하)라는 가사만은 원곡과 크게 다르진 않다.
  • 에스토니아 SS: Laul surnupealuu sõdurist (에스토니아 사단의 노래)
제 20사단은 에스토니아인으로 구성된 SS 사단이었다. 당초 에스토니아인 의용군 제 3여단으로 출발했으나, 1944년 전세가 소련 쪽으로 기울면서 에스토니아에 징집령이 발효되며 에스토니아에 남아 있었던 SS 세력과 징집병을 합쳐서 사단으로 규모가 확대되었다. 가사에 독일에 대한 언급이 없다.
제 15사단(라트비아 1사단), 제 19사단(라트비아 2사단)은 라트비아인으로 구성된 SS 사단이었다.
라트비아 사단은 에스토니아 사단보다 더 일찍 창설되었고, 비슷하게 자원병 및 징집병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라트비아 국내 방어 뿐만 아니라 유럽 동부 전선에서도 활동했다. 라트비아에서 활동하던 파시스트도 사단에 섞여 들어갔기 때문에, 소련 치하에서는 사단 전체가 파시스트 취급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가사에 독일에 대한 언급이 없다.

4 관련 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