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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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의 외교관이던 인물. 주영 북한 공사로 근무 중, 탈북하여 2016년 8월 대한민국에 입국하였다.

탈북 이전까지는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로 현학봉 대사에 이어 주영 북한대사관에서 서열 2위였다. 1996년 탈북한 잠비아 주재 북한 대사관 서기관이었던 현성일과 함께 북한 외무성에서 손꼽히는 유럽 전문가이다. 또 대사관 내 당 책임자인 '세포비서'로, 외교관과 그 가족들의 사상교육 업무까지 관장해왔다고 한다.

초기에는 언론에 '태용호'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었으나, 이는 영문 언론이 북한의 로마자 표기법에 따른 태영호의 영문 이름을 간소화하여 표시하면서 일어난 혼동이었다. 북한은 한국과 달리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을 사용하는데, 이 방법에 따르면 한글 "영"은 "Yŏng"으로 쓴다. 그런데 신문에서 편의를 위하여 반달표를 생략하고 "Yong"으로 표기했고, 이걸 대한민국에서 "용"으로 읽게 된 것이다. 과거에 김정은의 이름이 처음 알려졌을 때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한글 "은"의 북한식 표기인 "ŭn"을 단순하게 un으로 썼기 때문에 대한민국에서는 "운"이라고 읽었던 것이다

2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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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태형철은 현재 김일성종합대학 총장 겸 고등교육상으로 활동하고있다. 망명 초기에는 위 사진 자료에 나온 것처럼 그의 아버지가 항일 빨치산 1세대이자 김일성의 전령병으로 활동한 태병렬 인민군 대장이라고 알려졌었으나, 국정원에 의해 태병렬의 아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다.

출신이 탁월한 가문에서 태어난 덕분에금수저 고등중학교 재학 중 중국으로 건너가 영어와 중국어를 배웠고, 이 때문에 각종 외국어에 능통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에서 돌아온 뒤 5년제 평양 국제관계대학을 졸업하고 외무성 8국에 배치됐다. 얼마 후 그는 곧바로 김정일 총비서의 전담통역 후보인 덴마크어 1호 양성통역으로 선발돼 덴마크 유학길에 올랐다.

1993년부터 주 덴마크 대사관 서기관으로 활동하다가 1990년대 말 덴마크 주재 북한 대사관이 철수하면서 스웨덴으로 자리를 옮겼다. 스웨덴 생활은 길지 않았고 곧 귀국해 EU 담당 과장을 거쳐 2006년 경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으로 파견됐다.

국제 외교무대에 처음 이름을 올린 것은 그가 40세인 2001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북한과 유럽연합(EU)의 인권대화 때 대표단 단장으로 나서면서부터이다. 이 때 그의 직책은 서구라파국(외무성 8국)에서 EU를 담당하는 과장 겸 구주국장 대리였다.

유럽런던 등지에서 북한의 상징체제와 김일성 · 김정일 우상화를 선전하는 등, 북한의 홍보에 적극 앞장섰다. 2015년 5월 김정철이 런던 에릭 클랩튼의 공연장을 찾았을 당시 수행하기도 했다.

3 탈북

2016년, 국제사회 대북재제의 여파와 함께 현 체제 불만에 따른 집단 탈북이 지속화되자 북한은 관련 책임자들을 집단 처형하고 인민들을 무기한 강제노역에 동원시키는등 흉악한 공포정치를 일삼았다.

이러한 북한 김정은 체제에 염증을 느낀 태영호는 가족들을 데리고 지난 7월 망명길에 올랐으며, 제3국 망명신청을 하고 2016년 8월 17일 한국에 입국하게 된다. 10년간의 영국 공사 활동을 마치고 북한으로 귀국할 예정이었으나, 한국으로 탈북한 것,

귀순 소식이 보도되자 정부는 8월 17일 오전까지는 확인해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는데, 이미 입국했으나 안전과 안보를 위해 일부러 공개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외신과 몇몇 기자들의 잘못된 기사로 인해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 급하게 발표를 했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태영호의 탈북을 미리 알고 있어서 광복절 축사 때 주민 말고도 북한 당국 간부도 따로 언급했던 것도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가 왜 탈북했는지에 대해 여러가지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일단 북한 외교적으로도 상당히 중요한 영국 대사관[1]에서 근무한 것으로 보아 황장엽과는 달리 권력투쟁에 밀려서 탈북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언론에서 많이 나오는 추측은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서 탈북했다는 점이다. 또, 대북제재로 북한 외교관들의 활동에 제약이 커지고 생활도 궁핍해진 현실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 또 다른 설에 따르면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때 추방당한 BBC 기자의 입국보증 담당자가 태영호였고, 그에 따른 문책이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 직접적인 동기 중 하나라는 주장도 있다.출처

그리고 대사관에서 관리하던 580만 달러 (약 64억원)의 거액을 갖고 탈북한 것으로 보인다(!). # 하지만 돈 한 푼도 없을 가능성도 있다. # 하단에서 언급하는 비슷한 시기 다른 간부의 탈북 건과 내용이 섞여서 나온 오보로 보인다.

북한 당국의 입장이 안 나왔지만, 북한 관계자는 한국 정보당국이 뇌물을 줬거나 강압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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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후 자세한 내막이 공개되었다. 북한을 떠나겠다는 생각이 든 후 골프장에서 영국 정보기관 관계자들과 처음 접촉한 뒤, 미국 요원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어디든 갈 수 있었지만 남한으로 가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이후 7월 어느날 새벽 영국 공군기지를 떠나 독일의 미군 기지인 람슈타인 공군기지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들어온 것.[3]

탈북 소식을 들은 김정은은 크게 분노하면서[4] 대대적으로 해외에 있는 북한인을 단속하고자 검열단을 급파하였으며, 해외주재 외교관 · 무역일꾼 가족 소환령을 내렸다. 이후 북한 당국은 사건 발표 나흘만에 입장을 발표했다. 태영호를 배신자라며 비난하는 것은 물론 반공화국 선전을 주장하였고, 심지어 미성년자 강간범이라는 누명까지 씌워 인간 쓰레기 취급을 하며 여론몰이를 보여주었다. 다만 예전과 달리 이번 탈북이 납치나 강압이라고 지랄 주장하지는 않는데 이전에 탈북한 식당 종업원과 달리 외교관은 국제법상 보호를 받기 때문에 북한 당국이 납치라고 주장했다간 UN 등에서 정식조사가 들어갈 것이고, 그랬다가는 북한의 구라가 그대로 드러나 손모가지가 날라가버리는 외교적으로 자살골에 가까운 행동이 되기 때문이다.

또, 태영호의 부인 오혜선이 빨치산 가문의 딸이 아니라고 돌기도 했으나, 국정원에서 직접 빨치산 가문 맞다고 했으며, 2남 1녀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두 아들만 두었다고 한다.

이후 미영 정보기관 및 국정원과의 대화에서 자세한 탈북 사유가 공개되었다. 북한이 핵 및 SLBM 개발을 위해 태 공사에게 100만 파운드(한화 14억원)로 영국 해군 장교를 매수할 것을 지시했고 가능하면 북한 망명도 주선하라고 했는데 태 공사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하자 외교관 인생을 끝장낼 수도 있다며 압박했던 것.

심적 부담감을 느낀 태 공사는 거짓보고도 생각했으나 후폭풍이 크다고 여겨 골프를 통해 친해진 영국 정부 관계자에게 "내 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 더 나빠지고 있는 것이 두렵다" 라는 말로 망명 의사를 타진했고, 영국 정부가 태 공사를 망명시켜 준 것이었다. 결국 김정은의 무리한 요구로 인해 심적 압박감을 크게 느낀 것이 탈북의 큰 이유였다.

4 특기사항

  • 영국 공사 근무 시절 골프에 열광하였으나 ‘골프채를 놓지 않으면 평양으로 돌아가겠다’는 부인의 불평에 골프 대신 테니스를 선택했다고 한다.
  • 김정일 사망 때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탈북자들이 난입,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을 축하드리며'라는 고인드립성 유인물과 김정일의 영정사진을 대사관 건물에 붙이고 만세를 부르는 행사를 벌인 적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분명 '대사관 직원'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유인물을 떼어내면서 하필 김정일의 사진을 찢고 구겨 처리하는 장면이 포착되었는데, 이 인물은 문명신 2등 서기관이었다. 이 사건이 문제가 되어 북한 대사관 내에서 연일 심각한 회의가 있었는데, 태 공사의 강력한 선처 주장으로 살아났다는 증언이 있다. #
  • 그의 부인 오혜선은 북한군 총참모부 오금철의 일가이며, 오금철은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이자 노동당 군사부장을 지낸 오백룡의 아들이다. 북한판 성골인 '항일 빨치산 가문'이 탈북해 입국한 것은 이 사건이 처음이다.[5] 오혜선은 대외무역 · 외자유치 · 경제특구 업무를 맡고 있는 대외경제성에서 영어 통역을 담당했으며, 홍콩 근무를 거쳐 런던에 왔다고 한다.
  • 북한 외교관 및 해외 주재원의 탈북 사례는 이전부터 여러차례 있어 왔으며, 1997년에는 장승길 이집트 주재 북한 대사가 부인과 형[7]과 함께 탈북하여 미국에 망명하는 일도 있었다.
  • 탈북 전에는 북한 대사관 인근 아파트에 살았다고 한다. #
  • 오빤 태영호 스타일이란 노래가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
  1. 영국은 서방권 국가 가운데 북한과 상호 대사를 파견한 몇 안되는 국가다. 그럼에도 한국전쟁때 UN군으로 참전할 만큼 남한과 가까운 나라라서 북한 입장에서는 가장 신뢰할만한 외교관을 보내고 있다.
  2. 위 사진에서 나온 BAe 146영국항공의 암만에서 히드로로 가는 항공편이 아니라 브리티시 에어로 스페이스라는 회사의 비행기의 이름이다. 즉 BAe 146편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해당 사건 진행을 봐서는 보안 유지를 위하여 영국 공군이 보유한 VIP 전용기인 BAe146 여객기 4대 중 한 대를 사용하였을 것이다.
  3. 망명 직후 기사들에는 '런던의 테니스클럽에서 한국 측과 접촉하여 직접 귀순 의사를 표시하여 제 3국으로 경유하지 않고 직행으로 들어왔다고 전해졌다.
  4. 분풀이로 권총을 꺼내 여기저기 난사했다는 이야기가 있다.개버릇 남못주는 인간
  5. 과거 탈북했던 황장엽의 경우 모스크바 대학교 석박사 등 학문으로 인정받아 권력을 가진 케이스라 혹부리의 빨치산 활동과는 전혀 무관하다.
  6. 그리고 이 소식을 들은 게이머들은 닉네임과 런던이라는 위치를 가지고 기어이 스팀 프로필을 찾아냈다. 프로필에 실명까지 써있어서 확인사살.
  7. 장승호 프랑스 주재 북한 대표부 참사관
  8. 북한 일년 예산이 우리 돈으로 8조 정도이므로 5%이다. 군사비나 체제 유지비를 생각하면 이 4천억원은 엄청난 액수다. 김정은이 빡쳐서 권총 난사하며 날뛴 게 당연하다 우리나라로 비교했을 때, 약 20조원을 들고 잠적한 것과 마찬가지. 이 정도면 세계 부호 순위 100위권 내에도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