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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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상무 No.30
황순민 (黄順旻 / Hwang Soon-Min)
생년월일1990년 9월 14일
국적대한민국
출신지경기도
포지션윙 포워드, 공격형 미드필더
등 번호10
신체 조건177cm / 65kg
출신학교동명초등학교[1] - 동북중학교 - 카마무라 고등학교[2]
소속팀목포시청 축구단(2010)
쇼난 벨마레(2011)
대구 FC(2012~)
상주 상무(임대)(2016~)

1 소개

[[상주 상무]의 공격수.

형이 축구부에 들어간 모습을 보고 축구부에 들어간 것이 축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라고 한다. 당시 부모님이 황순민의 형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반대를 했지만, 결국 졸라서 축구부에 들어가게 되었다.

동명초등학교, 동북중학교, 장훈고등학교 1학년 시절 일본 유학길에 올라 일본의 카미무라 고교를 졸업하였다. 어릴 적에 일본의 패스 위주 축구에 대한 환상이 있었고, 에이전트를 통해 유학을 갔다. 일본 카미무라 가쿠엔 고등학교 소속으로 일본고교축구선수권 대회에서 팀이 8강에 진출하는 이변을 일으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대한민국과 일본 두 나라의 프로팀에게 관심을 받기 시작하였다.

전국대회가 끝나고 동료들과 볼링을 치러 갔는데 사람들이 알아보고 사인을 해달라고 하는 것이 신기했다고 한다. 축구를 좋아하는 도시의 특성이 한 몫 한 듯 하다.

2010년 이례적으로 목포시청 축구단에 입단하게 된다. 인터뷰에 따르면 프로에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할 것 같아서 몸을 만들고 가려고 생각했는데, 당시 목포시청 축구단 코치 백기홍 코치의 조언에 따라서 목포시청에 입단하게 되었다. 이후 23경기 출전하였고, 1골 3도움을 기록했다. 이 때의 활약을 바탕으로 U-20 대표팀에도 선발된다. 하지만 곧 부상으로 하차.

2011년 쇼난 벨마레로 이적하였으나 5경기 출장에 그치고 만다. 일본 올림픽 대표팀과의 연습 경기가 있었는데, 쇄골이 부러진 부상을 당해 2~3개월을 쉬었다. 재활 후 복귀해서 5경기를 뛰고 나니 시즌이 끝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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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시즌을 앞둔 K리그 드래프트에 지원하여 대구 FC에게 2순위로 지명을 받고 대구에 입단하였다. 데뷔 시즌에는 조커로 주로 출장하였으며, 11경기 출전해 다음 시즌에 대한 기대를 하게 만들었다. 골과 도움은 기록하지 못했다. 교체 출전이잖아.

2013년을 앞두고 대구 FC의 감독으로 부임한 당성증 감독은 대구에서 발전 가능성이 제일 높은 선수로 황순민을 지목했다. 백종철 감독의 부임 후 제로톱의 선봉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7월 4일 대구FC 100승 경기인 경남전에서 골을 넣었다 [3] 10월 9일 전남전에서는 2골을 집어넣었다. 다른 팀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아, 앙되!30경기 6골 1도움을 기록했다. 시즌 후 다행히 노리는 팀이 없어서 잔류한다고 한다. 활약할 때마다 기쁘면서도 다른 팀이 채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대구팬의 똥줄타는 소리가 들린다.

2014 시즌을 앞두고 목표는 10골 10도움이라고 밝혔다. 등번호도 이근호 이후 국내 선수 최초로 10번을 달게 되었다. 그리고 시즌 개막 후 K리그 챌린지에서 본격 대구FC의 에이스 놀이를 하고 있다. 6라운드 FC 안양와의 경기에서 후반 추가 시간 장백규의 패스를 받아 동점골을 기록해 경기를 1:1로 마무리 짓게 했다.

6월 21일 대전과의 경기에서 후반 28분 교체 출장했다.

6월 25일 콘사도레 삿포로와의 친선 경기에서 노병준, 조나탄과 함께 스리톱으로 선발출장했다. 전반 5분 수비수 2명을 제치고 경기의 첫 골을 기록했다. 후반 22분 교체되었고 경기는 2:0으로 대구FC가 승리했다.

10월 4일 30R 부천 FC 1995와의 경기에 출장했으나, 골은 기록하지 못했다. 하지만 활약상은 인정받아 위클리 베스트 11에 선정되었다.

10월 26일 일요일 고양과의 원정 경기에서 선제골을 기록해 팀의 4-2 승리에 기여했다. 11월 2일 일요일 강원 FC와의 34R 경기에서 선발 출장했다.

11월 8일 토요일 충주 험멜과의 35R K리그 챌린지 경기에 선발 출정했다. 장백규에게 찔러주는 간담이 서늘한 패스를 넣어주는 등 활약했으나, 골은 기록하지 못하고 팀도 결국 1-2로 패배하고 만다.

결국 33경기 출장해 5골 5도움으로 2014시즌을 마쳤다. 교체 투입된 경기가 14경기나 있지만, 한 시즌을 주전으로 뜀에는 무리가 없어보인다.

2016년 상주 상무에 입대하였다.

2 플레이 스타일

빠른발과 뛰어난 테크닉이 장점. 게다가 골결정력도 갖췄다. 스타성도 있어보인다.[4] 하지만 이 포지션의 젊은 선수들이 다 그렇듯이 시야등이 조금 떨어진다. 하지만 젊은 선수들중 가장 두각을 보이는 선수이기에 경험만 더 쌓으면 좋을듯

경기장을 가운데에서 측면으로 돌며 운영하는 스타일이며, 볼을 주고 받는 원투패스가 자연스레 어시스트 또는 득점으로 연결되는 플레이가 일품이다.

판타지스타로서의 자질도 제법 엿보인다는 평가도 있다. 대구팬들의 설레발일지도 모른다.

3 기타

유학 시절 음식갈이를 좀 했다고 한다. 그리고 부모님도 없고, 여자친구도 없는데다가 주말마다 갈 곳도 없어서 숙소에서 지냈다고.

일본어를 할 줄 몰라서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오기로 일본어를 파고든 결과, 7~8개월 만에 회화가 가능하게 되었다.

쇼난 벨미레 당시 입단 테스트를 마치고 입단을 하려고 하니 선수 등록기간이 끝나버려서 전반기 때는 선수등록을 못하고 쉬었다.

이 당시 한국영과 같이 훈련했는데, 처음에는 굉장히 무서웠다고 한다[5]. 하지만 나중에는 결국 붙어다녔다고. 밥도 같이 먹고 가족처럼 속 깊은 이야기도 하면서 정이 많이 들었다고 한다. 지금도 통화도 자주 하며너 힘든 땐 서로 이야기 한다고.

데뷔전이 서울과의 경기였는데 경기 전 동료들이 긴장하기 말라고 했다고 한다. 인터뷰에 따르면 긴장같은 건 하지 않고 덤덤하게 경기를 치루었다고. 경기는 1:1로 비겼다.

상술되어있던 대구FC 100승 경기에서 골을 넣었다. 이날 조영훈의 실책으로 한 골 먹힌 상황이었는데, 이기게 해줘서 고맙다며 밥을 사준다고 했으나, 아직까지 못 먹었다고 한다.

롤 모델로 이니에스타다비드 실바를 꼽았다. 다비드 실바의 팀조율과 연계플레이, 그리고 결정적 한 방의 모습에서 롤 모델로 정했다. 그런 점에서 이니에스타도 롤 모델이라고 밝혔다.
  1. 당시엔 대동초등학교
  2. 장훈고에 재학했으나 1학년 시절 유학길에 오름.
  3. 골 세레머니를 생각했었는데, 아무런 생각이 안나서 그냥 막 뛰어다녔단다.
  4. 적극적인 골을 넣어서 관심을 꽤나조금 받았다.
  5. 한국영의 인상이 좀 험해서 처음에는 선배인줄 알았다고. 지나가는데 인사도 안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