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 | Nasir bin Olu Dara Jones (나지르 빈 올루 다라 존스) |
이름 | Nas (나스) |
국적 | 미국 |
출생 | 1973년 9월 13일 뉴욕 브루클린 |
부모 | 아버지 : Olu Dara Jones (올루 다라 존스) 어머니 : Fannie Ann Jones (파니 앤 존스) |
형제 | Jabari Fret Jones (자바리 프렛 존스) A.K.A Jungle (정글) [1] |
아내 | 켈리스 (2005년 ~ 2010년) |
자녀 | 장녀 : Destiny Jones (데스티니 존스) 차남 : Knight Jones (나이트 존스)[2][3] |
직업 | 래퍼, 싱어송라이터,프로듀서, 배우 |
데뷔 | 1994년 Illmatic |
소속 | 데프잼 |
링크 | > > > > |
I never sleep, cuz sleep is cousin of death난 잠을 자지 않아, 잠은 죽음의 사촌이니까.
- Illmatic의 수록곡 N.Y. State of Mind 中
1 개요
Thug Poet
이스트 코스트의 전설적인 래퍼들 중 한명
거리의 시인
뉴욕 롱아일랜드 출신의 래퍼. 1973년 9월 14일생. 본명은 나시르 벤 올루 다라 존스.
이전 예명은 내스티 나스(Nasty Nas)였으나 후에 자신의 본명 바로 앞에 있는 Nasir에서 Nas를 떼내서 랩 네임이 나스가 되었고 이게 지금까지 유지되어 왔다.
이스트 코스트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거리의 삶을 묘사하는 것에 매우 뛰어나다. Thug poet[4]으로 불린다.
2 Illmatic 이전
그는 인종 차별이 극심하기로 유명한 미시시피 주 나체스 출신 뮤지션 올루 다라 존스[5]가 32세에 본 첫 자식으로, 올루 다라의 아버지 역시 뮤지션으로 올루 다라의 대부와 함께 Mellowderes라는 그룹을 결성하고 미국 전역에서 연주를 하였다. 나스는 이런 음악가 집안의 혈통을 이어받는다. 4년간의 해군 복무를 마친 올루 다라는 뉴욕 시에 정착하고 나스의 어머니 앤 존스를 만나 나시르 존스와 자바리 존스 두 아들을 보게 된다. 가난한 뮤지션이었던 올루 다라는 유럽을 오가며 돈을 벌었고 남은 가족들은 나스가 성장한 퀸스브릿지로 이사하게 된다.[6]
나스는 자신이 사는 그 동네가 불우한 환경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조숙한 아이로 자라났다. 하지만 그러한 환경과 넉넉지 못한 수입에도 존스 부부는 아이들을 올바르게 키우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올루 다라는 음악을 연주하며 세계를 떠돌아다닌 이야기들을 들려주었고 책장을 만들어 그곳에 다양한 인문 서적을 꽂아넣었으며, 앤은 좋은 카펫을 깔고 불우한 환경에서 뭔가를 얻기 위해 훔치는 행위보다는 차라리 사주는 쪽을 선택했다. 나스와 자바리는 뮤지션 집안 혈통답게 어린시절 해외공연을 떠난 아버지의 빈 자리를 그가 남겨놓은 악기로 대신하였다. 어린 나이에 트럼펫을 부는 것이 입술을 망가뜨린다고 못 불게 하였고 7세가 되자 다시 불어보라고 했는데 나스는 다른 곳에 흥미를 느꼈다.
부모의 노력 아래서, 나쁜 길로 빠지는 대신 예술가 집안 혈통답게 어린 시절부터 가사를 만들어왔고 자바리 존스와 나시르의 친구, Ill Will이라 부르는 윌리엄 그레이엄[7]과 함께 음악으로 성장하게 되지만, 마약의 광기가 퀸스를 덮치고 단지 불우하던 환경은 목숨이 위태로운 험악한 환경으로 변모하게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린 나스의 가정은 더욱 힘들어지고 나쁜 길로 인한 건 아니었지만 올루 다라는 더이상 가족들과 함께 살아가지 못하게 되며 앤은 자신의 아이들을 더욱 굳건하고 강하게 키워나간다. 비록 함께 살진 못했지만 올루 다라는 그의 자식들을 내버려두지 않았는데, 하루는 자식들이 다니던 학교를 보고 미국의 공교육 현실 속에서, 그것도 할렘가 흑인 아이들이 이러한 교육 시스템에서 자라난다면 안 가느니만 못하다고 생각하고 두 아이 모두 학교를 그만 다니는 대신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한다. 그리고 나스가 선택한 것은 음악이었다.
어느날 Def Flesh Crew의 멤버였던 록샌 샨테[8]는 퀸스의 아파트에서 랩을 하고 있는 나스를 발견하고 그 비범한 꼬마를 퀸스 파크에서 열리는 공연에 함께 할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그 재능에도 아직 햇병아리였던 나스는 아직 수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감당할 수 없었고 크게 위축되어 랩 다운 랩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좌절에도 불구하고 뉴욕을 기반으로 하는 MC Shan, South Bronx, Boogie Down Productions 사이에서 일어난 퀸스브릿지 디스전 등을 들으며 한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난 내 분노를 억누르던가, 아니면 그 분노를 다른 무언가로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 그리고 뭔가를 만들어내는 쪽이 훨씬 가치 있었고." - Nas, 전기 영화 Time Is Illmatic 中
절친이었던 Ill Will의 죽음이 그를 냉소적으로 바꿔놓았고, 나스는 더이상 햇병아리가 아니었다. 그가 참여한 Main Source의 곡 Live At the Barbeque에서의 피처링[9]과 MC Serch의 데뷔앨범 수록곡 Back To the Grill에서의 피처링[10]을 통해 내제된 사회적 분노를 음악으로 만들어내며 이제까지 없던 엄청난 핵펀치라인을 선보이며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고, 컬럼비아 레코드의 페이스 뉴먼은 나스와 계약을 하게 된다.
3 Illmatic, 그리고 그 이후
1994년 4월 발매한 정규 1집앨범 Illmatic은 대중적인 인기를 얻지는 못하였으나, 동부힙합계의 거장(DJ 프리미어, Q-팁, 라지 프로페서, 피트 록)들의 대거참여+나스 본인의 실력이 합쳐지면서 우탱 클랜의 'Enter the Wu-tang : 36chambers'와 함께 동부힙합의 바이블로 취급되는 등, 음악적인 면에서는 아직도 굉장히 높은 평가를 받고있다. 소스지에서 마이크 5개를 받으며, 판매성적과는 상관없이 음악적인 면에서만은 동부 최고의 음반이라 할 수있다. 특히 네번째 싱글 곡인 'The World Is Yours'는 Jay-Z의 불후의 명곡 'Dead Presidents'에 샘플링되었다.[11]
다만 1집 앨범 Illmatic의 완성도가 너무나 뛰어난 탓에, 앨범을 내는 족족 1집과 비교당하며, 그것을 뛰어넘지 못한다는 평을 듣는다. 눈물나는 소포모어 징크스다. 일매틱을 마지막에 내지 왜 처음에 냈어요
(하지만5집 Stillmatic은 Illmatic 이후로 상업적으로 변했다는 나스를 다시 한 번 정점에 올려놓는 앨범이되었다.)
랩을 하는 실력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흑인 빈민들의 삶을 능수능란하게 가사로 풀어내는 한편, 기본에 충실한 스킬로 듣는 이의 뇌를 자극한다. 반면에 비트를 고르는 안목은 별로이지만서도..... 6집앨범 수록곡이자 나스의 가장 대중적인 음악인 에서도 이러한 그의 성향이 강하게 나타난다.[12]
같은 동부 뮤지션인 Jay-Z와는 몇년동안 서로 디스하며 지내던 사이. 총격전이나 린치같은 무력적 충돌없이 음악적 충돌만 있었기에, 성공한 디스라고도 한다.[13] 둘이서 서로 앨범 팔아먹기 위해 짜고 친 고스톱이라는 음모론까지 있을 정도. 결국 2005년 11월. 손을 맞잡으며 화해를 하였다.
또한 2010년 5월 데미안 말리와 콜라보레이션 앨범인 'Distant Relatives'를 발표. 이 앨범은 현재 레게와 힙합의 조화. 나아가 새로운 장르의 형성이라고까지 호평받고 있다.
2005년 R&B 가수인 켈리스와 결혼하였으나, 2010년 이혼하였다. 이혼은 2012년 7월 발매한 'Life Is Good' 앨범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앨범 자켓에 무릎 위에 얹은 드레스도 실제 결혼식 때 켈리스가 입었던 웨딩드레스. 첫 트랙 'No Introduction', 후반 트랙인 'Bye Baby'에 켈리스와의 이혼과 관련된 나스의 감정이 잘 묻어나 있다. 앨범 평은 Illmatic이후로 최고의 앨범이라고 할 정도로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Illmatic'의 아성까지 뛰어넘기는 힘들다는 평이다. 첫 앨범이 역대 최고의 명작이라 어떤 앨범을 내도 강제 소포모어 징크스
2013년 7월, 하버드 대학교의 힙합 기록 및 연구소에서 나스의 업적에 대한 경의를 담아 '나시르 존스 힙합 펠로우십'을 만들었다고 한다. 힙합과 관련된 예술 분야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한다고.
2008년에 내한 공연을 가질 계획이었지만 무산된 바 있으며, 2013년 8월 지산 월드락페스티벌에서 처음으로내한 공연을 가졌다. 관람객들이 자기 노래를 모두 알아줘서 깜짝 놀랐다고 한다.
2014년 나스의 데뷔작 Illmatic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필름인 'Time Is Illmatic'이 개봉되었다. 외국에서조차 당일치기 개봉 후 온라인으로 구입하여 볼 수 있는 형식을 취했기에 국내 상영 여부가 불투명했으나 국내에서도 2015년 2월 7일부터 9일까지 일시적으로 개봉했다. 이후에도 몇몇 소규모 영화제에서 상영하기도 한다.
4 디스코그래피
연도 | 제목 |
1994 | Illmatic[14] |
1996 | It Was Written[15][16] |
1999 | I Am[17] |
1999 | Nastradamus[18][19] |
2001 | Stillmatic[20] |
2002 | God's Son[21][22] |
2004 | Street's Disciple[23] |
2006 | Hiphop Is Dead[24] |
2008 | Untitled[25][26] |
2012 | Life Is Good |
2014 | Illmatic XX[27] |
4.1 비정규앨범
- The Lost Tape (2002) [28]
- Greatest Hits (2007)
4.2 콜라보레이션앨범
- Nas & Damian Marley - Distant Relatives (2010)[29]
5 트리비아
dctribe와 DC 힙갤 등 블랙뮤직 커뮤니티에선 착착 달라붙는 어감으로 인해 '나스 이 개새끼'가 하나의 유행어로 자리잡고 있다.[30]
내한한적이 있는데, 2013년 지산 월드 록 페스티벌 서브 스테이지 헤드라이너였다. 당시 상황은 해당 항목 참조. 많은 해외 뮤지션들이 첫 내한공연을 할 때 반응처럼 큰 기대 없이 처음 온 곳에서 의외의 한국인 종특열광적 반응에 놀랐는지 상당히 만족한 모양.이제 단독공연을 기다려보자 공연 후기는 힙합LE 게시물 참조. 후기 1 후기 2
피타입이 쇼미더머니4 2차 예선에서 nas is like 비트에 랩을 했지만 가사를 절며 탈락했다.
신기하게도 4집을 제외하면 모두 힙합씬에서 추앙받는 명반으로 꼽힌다. 명반제조기 이건 틀린 얘기다. 음악의 개인적 취향은 존재할 수 있으나 실제로 나스 앨범 중에 추앙을 받는다고 표현할 만한 앨범은 1집 Illmatic밖에 없고 훌륭한 앨범으로 뽑히는 것도 5집 Stillmatic이나 부틀렉인 Lost Tape, 최근작인 Life Is Good, 그리고 후에 평가가 더 나아진 2집 It Was Written 정도다. 나머진 사실 평작 혹은 명곡이 있으나 부족한 비트 셀렉션으로 채워진 몇몇 곡들 덕에 평이 낮아진 앨범들 아니면 애초에 잘못된 4집이 있을 뿐이다.
국내에서의 인지도는 상당히 낮은 편으로, 최고의 라이벌이자 양대산맥으로 군림했던 JAY Z는 국내에서도 유명하지만 나스는 마니아층에게만 사랑받고있다.
상당히 동안이다. 40대 중년임에도 얼굴이 리즈시절이랑 차이가 나질 않는다.
비트를 더럽게 못고른다. 농담이 아니라 팬들 사이에서도 까이는 부분이다.
- ↑ 힙합그룹인 Bravehearts의 멤버이다.
- ↑ 엄마가 다른 이복남매다.
- ↑ 서로 나이차가 15살차이
- ↑ The Lost Tape의 Purple을 들어보자. 그가 왜 Thug Poet인지 알 수 있다.
- ↑ Olu Dara. 1941년 생으로 그의 이름은 신은 좋은 분입니다라는 뜻이고 기타와 코넷을 연주했으며 보컬리스트이기도 했다.
- ↑ 퀸스브릿지는 사실상 백인 중산층을 위해 흑인을 수용, 격리하기 위한 주택정책이었다.
- ↑ Illmatic에 수도 없이 언급되는 그 Ill Will.
- ↑ 14살때부터 프리스타일 랩 배틀을 나가기 시작했고 우승도 했던 여성래퍼. 그의 디스곡인 "Roxanne's Revenge"는 아직까지 회자되는 명곡이다.
- ↑ "난 12살때 예수를 패버리러 지옥으로 향했지. 네스티 나스는 미국의 반역자, 경관 살해자, 난 폭동을 일으키지", "대통령의 부인을 계획 없이 납치하고 KKK단처럼 깜둥이 목을 매달아 버릴거야"
- ↑ "난 수녀들에게 자동소총을 흔들어댔고 교회에 있는 선교사 놈들을 털어먹었지. 난 존나 범죄자니까"
- ↑ 사실 Dead Presidents에 샘플링된 곡은 원곡이 아니라 Q-Tip이 리믹스한 버전이다. 이 곡은 2014년에 나온 Illmatic XX의 2번째 디스크에 수록되어 있다.
- ↑ 'I Can'은 어머니가 아이들을 위한 노래를 만들라는 유언을 남겨서 계몽적이고 희망차게 만들었다.
- ↑ 다만 제이지가 나스의 동료인 맙 딥의 프로디지의 발레리나 시절 사진을 공개하고 Supa Ugly라는 프리스타일 곡으로 나스의 전 부인 카르멘 브라이언이 앨런 아이버슨 그리고 자신과 성관계를 가진 걸 까발리고 사진까지 보여주는 등 찌질한 면도 있었다. 결국 제이지는 이 사실을 안 어머니한테 죽도록 혼나고 나스에게 사과해야 했다.(...)
- ↑ 나스를 대표하는 아니, 본토힙합을 상징하는 명작중의 명작.
- ↑ 상업용 냄새가 풀풀 풍기는 앨범. 다만 흥행이 조금 아쉬웠던 1집의 음악을 기반으로 좀 더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한 조율이 제대로 먹혔기 때문에 평가는 나쁘지 않다.
- ↑ 이쯤부터 닉네임을 Nasty Nas에서 Nas Escobar 로 바꾼다. 멕시코의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에서 따옴
- ↑ 나스의 가장 유명한 대표곡중 하나인 'Nas is like' 가 수록돼 있다.
- ↑ 나스의 영원한 흑역사이자 가장 혹평받는 앨범. 잘 보면 3집과 같은 해에 앨범이 발매된걸 볼 수있는데 이건 당시 제작사가 흥행을 이어가기 위해 빠르게 앨범을 만들었다고 한다. 알다시피 결과는 패망.
- ↑ 얼마나 실패를 했으면 "원래 I Am은 더블앨범으로 발매할려고 했는데 모종의 이유로 2개의 앨범으로 따로 발매했다", "원래 이 앨범은 믹스테입이었는데 실수로 정규앨범으로 냈다" 등등의 설도 나돌았다.
- ↑ 4집의 실패를 딛고, 이 앨범으로 다시 정점을 찍어버렸다. 같은해의 JAY Z의 블루프린트가 나왔고 각자 서로를 디스하는곡이 담겨져있으며,(Nas - Ether, JAY Z - Takeover) 둘 다 상당한 명반으로 꼽힌다.
- ↑ 전작의 기세를 살렸으나 아쉬움이 더 크다는 평이 많다. 다만 Made you Look이나 I Can 같은 트랙들은 발군.
- ↑ 나스는 원래 이 앨범을 주변 뮤지션들을 디스하는 디스앨범으로 낼려고 했는데, 어느 날 생각을 바꾸고 곡을 모조리 다 버려서 지금 우리가 아는 God's Son이 탄생했다.
- ↑ 나스의 처음이자 아직까진 유일한 더블 앨범. 여러곡들이 꽤 훌륭했지만 더블앨범 특성상 너무많은 트랙들과 그 트랙들간에 유기적임이 부족해 명반으로 꼽히진 않는다. 애초에 더블앨범이 클래식급에 들어가기가 힘든 편이다. 많은 트랙수 때문에 좋은 곡도 많은 만큼 떨어지는 곡도 생기기 때문.
그래서 투팍과 비기가 더 대단한것 - ↑ 나스가 hip hop is dead' 라는 타이틀을 걸고 앨범을 발매하자, 당시 힙합씬을 접수하고 있었던 사우스쪽 뮤지션들의 반발이 장난이 아니었는데, 그 중 영지지가 라디오에 출연해서 "나스가 힙합이 죽었다고 하는대 안죽었다, 또 까놓고 말해서 나스가 거리를 위해 한 일이 뭐냐 한것도 없으면서..." 라는 요지의 발언을 하게 된다. 당시 영지지는 2집을 발매하고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으니, 갱스터 랩퍼의 특유의 다 X까 식의 발언을 했던 것이고, 그에 따라 fabolous가 당시 데프잼 투어를 나스와 영지지와 같이 하고 있었는데 자신이 중재를 해보겠다고 얘기한다. 그렇지만 나스는 퀸스브릿지의 관대함으로 영지지와 대화를 하게되고, 영지지와 나스는 힙합이 '아직은' 죽지않았다는 걸로 결론을 내고 화해를 하게 된다. 결국 나스가 영지지의 3집에 피쳐링 하면서 이 디스 아닌 디스전은, 서로 교류까지 하게된 훈훈한 에피소드로 마무리 되었음!!
- ↑ 기존 제목은 Ni**er 였지만 미국 내에 제목에 대한 강한 부정적 여론에 Nas로 고쳤다가 결국 현재의 이름으로 발매되었다.
- ↑ 참고로 Untitled의 뜻은 '타이틀(제목)이 없는', 즉 '제목없음'
- ↑ Illmatic 20주년을 맞아 기념비와도 같은 상징적인 앨범. 기존 Illmatic에서 몇 곡이 더 추가되었다.
- ↑ 3,4집 발매시기에 녹음된 작품들을 수록했다. 해당 곡들이 수록되지 못한 이유는 상업적 어필이 안되기 때문에 라는 이유로 음반사에서 빼길 원했다고 한다. 실제로 수록된 곡들은 3,4집의 여타 트랙보다 훨씬 상태가 좋고 역대급 명곡인 Doo Rags나 Purple 같은 곡들도 포함되어있다.
- ↑ 밥 말리의 아들 데미안 말리와 함께한 콜라보레이션 앨범.
- ↑ 블로고스피어에서도 이글루스의 모 동인 블로거가 '나스 개새끼'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으나 그 게시물의 나스는 나스 키노코이다. 힙합음악 마니아들이 많은 티스토리에서는 본래의 의미로 쓰이는 편으로, 두 커뮤니티 사이트 간의 문화 차이를 알 수 있는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