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상위 항목 : [[배우/한국]] ||<table align=center><-2><:> http://cdnweb01.wikitree.co.kr/webdata/editor/201508/26/img_20150826094756_7efdeed1.jpg?width=100%|| ||<:> '''이름''' ||강수연|| ||<:> '''출생''' ||[[1966년]] [[8월 18일]]|| ||<:> '''신체''' ||162cm, 45kg, [[AB형]]|| ||<:> '''학력''' ||[[동명여자고등학교]][* [[조용원]]과 동기동창이며 (조용원은 주간 이쪽은 야간이다) KBS-MBC에서 활동해 온 탤런트 김현주(64년생)가 본인의 2년 선배다.]-[[고려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 ||<:> '''직업''' ||[[배우]]|| ||<:> '''가족''' ||2남 2녀 중 장녀[* 오빠 2명, 여동생 1명.]|| ||<:> '''데뷔''' ||1969년 영화 핏줄|| ||<table align=center><table width=100%><-5><#FFFFFF><:> {{{+1 [[SBS|[[파일:SBS로고.png|width=60]]]] ''' [[SBS 연기대상|{{{#B2A529 연기대상}}}]] ''' {{{#B2A529 ''' 대상 ''' }}} }}} || ||<width=25%><:> [[고두심]] [br] (2000) ||<:> {{{+1 → }}} ||<width=25%><#FFFFA1><:> ''' [[전인화]],강수연 [br] (2001) ''' ||<:> {{{+1 → }}} ||<width=25%><:> [[안재모]] [br] (2002) || '''한국 최초 3대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여배우 ''' 10~20대는 그녀를 주로 [[정난정]]으로 기억하지만, 한 때 영화계를 풍미했던 배우이기도 하다. 자세한 설명은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9&contents_id=1381|이 곳을 클릭]]해 보자. [목차] == 소개 == [[1966년]] [[8월 18일]]에 출생하여 1969년부터 [[동양방송]] 전속 아역 배우로서 활동하였다. [[1980년]] [[언론통폐합]] 이후 [[KBS]]로 활동무대를 옮겨 [[1983년]] TV 드라마 《고교생 일기》로 큰 인기를 얻으며 당시 [[손창민]]과 함께 최고의 아역 스타로 활동하였다. 당시 영상.[[https://www.youtube.com/watch?v=qRVLCk7WH7U]] [[박근형]]의 젊은 모습도 보인다. 본격적으로 성인 배우로 활동한 작품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1985년 개봉한 [[고래사냥(영화)|고래사냥]]2 부터이다. 1987년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를 시작으로 [[대종상]]영화제에서 여우 주연상을 3회나 수상하였으며, 영화평론가상 여우주연상도 무려 3차례나 수상했다. 《씨받이》로 제44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1989년 《아제아제 바라아제》[* [[한승원]]의 소설이 원작 - [[반야심경]] 끝부분에 반복되는 구절 일부다.]로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아제아제 바라아제를 촬영할 당시 강수연은 비구니 역을 위해서 머리 전체를 삭발하고 촬영지인 [[선암사]] 인근에서 몇달동안 숙식하는 투혼을 발휘했다는 점으로 유명했다. 특히 최초로 메이저 국제 영화제에서 본상 수상을 하였기 때문에 다른 배우와 영화인들에게 "우리도 할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해 준 것은 대단한 일이다. 한국인의 LPGA 우승이 일상적인 일이 되도록 만든 골프의 [[박세리]]와 같은 존재. 아역 출신이 성공하기 힘들다는 편견을 여배우 중에서 최초로 깬 장본인이기도 하다. [* 남자 배우로는 [[안성기]]가 있다. 강수연보다도 한 세대 전 일이고 어릴 때만 하였기 때문에 아역 출신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이가 적어서 그렇지...] 1980년대 후반 ~ 1990년대 초반까지 가히 원탑 여배우였다. 사실 이 무렵에는 배우 연령층이 다양하지 못한 탓도 있다. 이 시기에 [[최진실]]과 [[심혜진]]이 영화계에 데뷔했으나, 연기력과 흥행이라는 2마리의 토끼를 잡는 유일한 여배우가 강수연. 여배우 최초로 억대 개런티를 받기도 하였으며[* 1992년 영화 '그대안의 블루'로 개런티 2억을 받았다.], 1990년대 초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광고 출연료가 편당 4억원을 호가하기도 했다. 흥행이 잘 되지 않을거라 예측했던 작품들도 그녀의 이름값 하나만으로 2~30만명[* 지금 관객수로 환산하면 80~100만명 정도로 잡으면 된다. 이 당시에는 단관 상영이 대세였다는점을 기억하자.]의 관객들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그러나 1994년 개봉된 스릴러 영화 장미의 나날[* 故 [[곽지균]] 감독이 연출하고, [[강제규]] 감독이 시나리오를 썼다]이 평단의 혹평과 흥행참패를 기록하면서 조금씩 하락세를 타기 시작했고[* 출연만으로도 각종 영화제의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그녀가 이 작품으로 인해 어느 영화제에서도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 이 당시 조금씩 치고 올라오는 후배 여배우들[* 대표적으로 故[[최진실]], [[심혜진]] 등.]과 브라운관에서 활약하던 여배우들이 대거 영화판으로 이동하면서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이는 연기력 문제가 아니라 고액 출연료, 노출 연기를 지나치게 꺼리며, 코미디나 망가지는 역할을 거부하고 주인공이 아니면 안 하려는 등의 행태로 제작자나 감독의 눈 밖에 난 이유가 크다. 어떤 평론가는 과거의 수상 경력에 매달리는 소아병적 집착이라고까지 깠으니... 그래도 작품은 안 하고 광고만 찍는다든지, 행사에만 나오는 등 셀러브리티로 돌아서지는 않았으며, 개인사로도 스캔들이나 잡음을 일으킨 적이 없다. 일단 수십 년 동안 연기와 영화에 대한 애정이 한결같고, 무엇보다 연기자로서는 만렙 찍었다 보니 전술한 지나치다 싶은 자존심 외에는 깔 데가 없는 배우이기도 하다. (현재 외모에 대해서는 오호가 갈리나, 시대에 따른 선호하는 타입의 변화이고 아주 어릴 때부터 나온 아역 출신이라 성형 논란이 있을 수가 없다.) 2001년 오랜만에 브라운관으로 복귀, [[여인천하]]에 주인공 '정난정' 역할로 출연하여 회당 출연료 500만원 시대를 열었고[* 이 배우를 계기로 고가 개런티를 요구하는 탑 배우들이 증가하게 된다. 그리고 덤으로 클로징을 오로지 자신에게만 맞추라고 요구하기도 했는데, 이유는 오래간만에 브라운관으로 복귀한 자신의 자존심에 상처 입기 싫다는 것이었다고..], 드라마는 성공했고, 그 해 [[전인화]]와 함께 [[SBS 연기대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간간히 영화에 출연하고 있으며, 연기 외 영화 관련 행사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그러다가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의 공동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영화계에 남긴 발자취로만 보면 자격이야 차고 넘치지만, 보통 이 정도 자리는 고도의 행정력이 필요하기에 행정 전문가나 영화감독 등이 맡는지라 의외일 수 있다. 거기에 본래 집행위원장 자리는 부산광역시장이 맡아 왔던 자리다. 하지만 들려오는 말에 의하면 행정 경험이 없는 것에 비해서는 일을 열정적으로 꽤 잘하는 듯. 알다시피 [[프랑스]]가 [[파리(도시)|파리]] 테러 때문에 골치가 아픈지라, 2016 [[칸]] 영화제 때 검색받는 모습이 찍혔다. 그리고 이 분도 [[동안]]이시다! 2016년 기준 '''[[대한민국]] 나이 51세!''' 20대부터 지금까지 거의 변한 게 없다. 이 분도 가꾸고 다니시는 분.[* 강수연이 동안으로 유명했던 것은 맞으나, 연예계 시술과 피부관리가 보편화되면서 동안으로서의 상대적 메리트도 현재는 많이 하락한 상태. 물론 절대적으로 봤을때 동안인건 확실하다. ] 배우 [[이성민(배우)|이성민]]은 강수연을 우상처럼 여겨 왔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강수연을 한 번도 만나 보지 못했다고..... == 출연작 == === [[영화]] === 1975년 《핏줄》 1976년 《나는 고백한다》 1977년 《별 3형제》 1978년 《비둘기의 합창》 1978년 《슬픔은 이제 그만》 1978년 《어딘가에 엄마가》 1979년 《하늘나라에서 온 편지》 1982년 《깨소금과 옥떨메》 1985년 《W의 비극》 1985년 《고래 사냥2》 1987년 《씨받이》... 옥녀 역 1987년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 미미 역 1987년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 순나 역 1987년 《감자》... 복녀 역 1987년 《됴화》 1987년 《연산군》... 장녹수 역 1988년 《업》 1988년 《미리 마리 우리 두리》... 우리 역 1989년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윤주 역 1989년 《아제 아제 바라아제》... 순녀 역[* 임권택 감독의 불교 영화로, 이 때 강수연은 비구니 연기를 위해 실제로 삭발을 했다.] 1989년 《그 후로도 오랫동안》... 선우수미 역 1991년 《베를린 리포트》... 마리엘렌/영희 역 1991년 《낙산풍》 1991년 《경마장 가는 길》... J 역 1992년 《그대 안의 블루》... 유림 역 1993년 《웨스턴 애비뉴》... 지수 역 1993년 《그 여자, 그 남자》... 은 역 1994년 《장미의 나날》... 재희 역 1995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혜완 역 1996년 《지독한 사랑》... 영희 역 1997년 《블랙잭》... 장은영 역 1997년 《깊은 슬픔》... 오은서 역 1998년 《처녀들의 저녁식사》... 호정 역 1999년 《송어》... 정화 역 2003년 《써클》... 오현주 역 2006년 《[[한반도(영화)|한반도]]》... 명성황후 역 2007년 《검은 땅의 소녀와》... (특별출연) 2010년 《달빛 길어올리기》... 지원 역 === [[드라마]] === 1971년 동양방송 《똘똘이의 모험》 1978년 MBC 《X 수색대》 1980년 TBC 《바람돌이 장영실》 1982년 KBS 《풍운》... [[명성황후]] 아역[* 훗날 영화 [[한반도]]에서 성인 [[명성황후]] 역으로 출연][* 이 드라마에서는 성인 [[명성황후]]를 [[김영애]]가 맡았다.] 1982년 KBS 《달무리》 1983년 KBS 《고교생 일기》 1984년 KBS 《사랑하는 사람들》 1985년 MBC 《엄마의 방》 1986년 KBS 《이화에 월백하고》 1986년 KBS 《TV문학관》- 들뻐꾸기 2001년 SBS 《여인천하》... [[정난정]] 역 2007년 MBC 《문희》... 하문희 역 == 수상내역 == ||<:>연도||<:>수상|| ||2010년|| 자랑스러운 영화인상 || ||2009년|| 부산국제영화제 플래시포워드상 심사위원회 위원상 || ||2001년|| SBS 연기대상 대상 || ||2001년|| SBS 연기대상 10대 스타상 || ||2001년|| 그리메상 최우수여자연기상 || ||2000년|| 제36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여자 최우수 연기상 || ||1995년|| 제33회 대종상영화제 여자 인기상 || ||1994년|| 제30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여자 인기상 || ||1993년|| 제14회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 || ||1993년|| 제31회 대종상영화제 여자 인기상 || ||1993년|| 제17회 황금촬영상 최우수 인기여우상 || ||1992년|| 제13회 청룡영화상 여우 주연상 || ||1992년|| 제3회 춘사영화상 여우 주연상 || ||1992년|| 제28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여자 최우수 연기상 || ||1990년|| 제28회 대종상영화제 여우 주연상 || ||1990년|| 제10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여우 주연상 || ||1990년|| 제26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여자 인기상 || ||1989년|| 제16회 모스크바영화제 여우 주연상 || ||1989년|| 제25회 대종상영화제 여우 주연상 || ||1989년|| 제9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여우 주연상 || ||1988년|| 낭트영화제 여우 주연상 || ||1987년|| 옥관문화훈장 || ||1987년|| 제24회 대종상영화제 여우 주연상 || ||1987년|| 제24회 대종상영화제 여자 인기상 || ||1987년|| 베니스영화제 여우 주연상 || ||1984년|| 제20회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여자 신인 연기상 || [[분류:한국 여배우]] 강수연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