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연

이름강수연
출생1966년 8월 18일
신체162cm, 45kg, AB형
학력동명여자고등학교[1]-고려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
직업배우
가족2남 2녀 중 장녀[2]
데뷔1969년 영화 핏줄
60 연기대상 대상
고두심
(2000)
전인화,강수연
(2001)
안재모
(2002)


한국 최초 3대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여배우

10~20대는 그녀를 주로 정난정으로 기억하지만, 한 때 영화계를 풍미했던 배우이기도 하다. 자세한 설명은 이 곳을 클릭해 보자.

1 소개

1966년 8월 18일에 출생하여 1969년부터 동양방송 전속 아역 배우로서 활동하였다. 1980년 언론통폐합 이후 KBS로 활동무대를 옮겨 1983년 TV 드라마 《고교생 일기》로 큰 인기를 얻으며 당시 손창민과 함께 최고의 아역 스타로 활동하였다. 당시 영상.[1] 박근형의 젊은 모습도 보인다.

본격적으로 성인 배우로 활동한 작품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1985년 개봉한 고래사냥2 부터이다.

1987년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를 시작으로 대종상영화제에서 여우 주연상을 3회나 수상하였으며, 영화평론가상 여우주연상도 무려 3차례나 수상했다. 《씨받이》로 제44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1989년 《아제아제 바라아제》[3]로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아제아제 바라아제를 촬영할 당시 강수연은 비구니 역을 위해서 머리 전체를 삭발하고 촬영지인 선암사 인근에서 몇달동안 숙식하는 투혼을 발휘했다는 점으로 유명했다.

특히 최초로 메이저 국제 영화제에서 본상 수상을 하였기 때문에 다른 배우와 영화인들에게 "우리도 할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해 준 것은 대단한 일이다. 한국인의 LPGA 우승이 일상적인 일이 되도록 만든 골프의 박세리와 같은 존재. 아역 출신이 성공하기 힘들다는 편견을 여배우 중에서 최초로 깬 장본인이기도 하다. [4]

1980년대 후반 ~ 1990년대 초반까지 가히 원탑 여배우였다. 사실 이 무렵에는 배우 연령층이 다양하지 못한 탓도 있다. 이 시기에 최진실심혜진이 영화계에 데뷔했으나, 연기력과 흥행이라는 2마리의 토끼를 잡는 유일한 여배우가 강수연. 여배우 최초로 억대 개런티를 받기도 하였으며[5], 1990년대 초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광고 출연료가 편당 4억원을 호가하기도 했다. 흥행이 잘 되지 않을거라 예측했던 작품들도 그녀의 이름값 하나만으로 2~30만명[6]의 관객들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그러나 1994년 개봉된 스릴러 영화 장미의 나날[7]이 평단의 혹평과 흥행참패를 기록하면서 조금씩 하락세를 타기 시작했고[8] 이 당시 조금씩 치고 올라오는 후배 여배우들[9]과 브라운관에서 활약하던 여배우들이 대거 영화판으로 이동하면서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이는 연기력 문제가 아니라 고액 출연료, 노출 연기를 지나치게 꺼리며, 코미디나 망가지는 역할을 거부하고 주인공이 아니면 안 하려는 등의 행태로 제작자나 감독의 눈 밖에 난 이유가 크다. 어떤 평론가는 과거의 수상 경력에 매달리는 소아병적 집착이라고까지 깠으니... 그래도 작품은 안 하고 광고만 찍는다든지, 행사에만 나오는 등 셀러브리티로 돌아서지는 않았으며, 개인사로도 스캔들이나 잡음을 일으킨 적이 없다. 일단 수십 년 동안 연기와 영화에 대한 애정이 한결같고, 무엇보다 연기자로서는 만렙 찍었다 보니 전술한 지나치다 싶은 자존심 외에는 깔 데가 없는 배우이기도 하다. (현재 외모에 대해서는 오호가 갈리나, 시대에 따른 선호하는 타입의 변화이고 아주 어릴 때부터 나온 아역 출신이라 성형 논란이 있을 수가 없다.)

2001년 오랜만에 브라운관으로 복귀, 여인천하에 주인공 '정난정' 역할로 출연하여 회당 출연료 500만원 시대를 열었고[10], 드라마는 성공했고, 그 해 전인화와 함께 SBS 연기대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간간히 영화에 출연하고 있으며, 연기 외 영화 관련 행사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그러다가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의 공동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영화계에 남긴 발자취로만 보면 자격이야 차고 넘치지만, 보통 이 정도 자리는 고도의 행정력이 필요하기에 행정 전문가나 영화감독 등이 맡는지라 의외일 수 있다. 거기에 본래 집행위원장 자리는 부산광역시장이 맡아 왔던 자리다. 하지만 들려오는 말에 의하면 행정 경험이 없는 것에 비해서는 일을 열정적으로 꽤 잘하는 듯.

알다시피 프랑스파리 테러 때문에 골치가 아픈지라, 2016 영화제 때 검색받는 모습이 찍혔다.

그리고 이 분도 동안이시다! 2016년 기준 대한민국 나이 51세! 20대부터 지금까지 거의 변한 게 없다. 이 분도 가꾸고 다니시는 분.[11]

배우 이성민은 강수연을 우상처럼 여겨 왔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강수연을 한 번도 만나 보지 못했다고.....

2 출연작

2.1 영화

1975년 《핏줄》
1976년 《나는 고백한다》
1977년 《별 3형제》
1978년 《비둘기의 합창》
1978년 《슬픔은 이제 그만》
1978년 《어딘가에 엄마가》
1979년 《하늘나라에서 온 편지》
1982년 《깨소금과 옥떨메》
1985년 《W의 비극》
1985년 《고래 사냥2》
1987년 《씨받이》... 옥녀 역
1987년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 미미 역
1987년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 순나 역
1987년 《감자》... 복녀 역
1987년 《됴화》
1987년 《연산군》... 장녹수 역
1988년 《업》
1988년 《미리 마리 우리 두리》... 우리 역
1989년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윤주 역
1989년 《아제 아제 바라아제》... 순녀 역[12]
1989년 《그 후로도 오랫동안》... 선우수미 역
1991년 《베를린 리포트》... 마리엘렌/영희 역
1991년 《낙산풍》
1991년 《경마장 가는 길》... J 역
1992년 《그대 안의 블루》... 유림 역
1993년 《웨스턴 애비뉴》... 지수 역
1993년 《그 여자, 그 남자》... 은 역
1994년 《장미의 나날》... 재희 역
1995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혜완 역
1996년 《지독한 사랑》... 영희 역
1997년 《블랙잭》... 장은영 역
1997년 《깊은 슬픔》... 오은서 역
1998년 《처녀들의 저녁식사》... 호정 역
1999년 《송어》... 정화 역
2003년 《써클》... 오현주 역
2006년 《한반도》... 명성황후 역
2007년 《검은 땅의 소녀와》... (특별출연)
2010년 《달빛 길어올리기》... 지원 역

2.2 드라마

1971년 동양방송 《똘똘이의 모험》
1978년 MBC 《X 수색대》
1980년 TBC 《바람돌이 장영실》
1982년 KBS 《풍운》... 명성황후 아역[13][14]
1982년 KBS 《달무리》
1983년 KBS 《고교생 일기》
1984년 KBS 《사랑하는 사람들》
1985년 MBC 《엄마의 방》
1986년 KBS 《이화에 월백하고》
1986년 KBS 《TV문학관》- 들뻐꾸기
2001년 SBS 《여인천하》... 정난정
2007년 MBC 《문희》... 하문희 역

3 수상내역

연도수상
2010년자랑스러운 영화인상
2009년부산국제영화제 플래시포워드상 심사위원회 위원상
2001년SBS 연기대상 대상
2001년SBS 연기대상 10대 스타상
2001년그리메상 최우수여자연기상
2000년제36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여자 최우수 연기상
1995년제33회 대종상영화제 여자 인기상
1994년제30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여자 인기상
1993년제14회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
1993년제31회 대종상영화제 여자 인기상
1993년제17회 황금촬영상 최우수 인기여우상
1992년제13회 청룡영화상 여우 주연상
1992년제3회 춘사영화상 여우 주연상
1992년제28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여자 최우수 연기상
1990년제28회 대종상영화제 여우 주연상
1990년제10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여우 주연상
1990년제26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여자 인기상
1989년제16회 모스크바영화제 여우 주연상
1989년제25회 대종상영화제 여우 주연상
1989년제9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여우 주연상
1988년낭트영화제 여우 주연상
1987년옥관문화훈장
1987년제24회 대종상영화제 여우 주연상
1987년제24회 대종상영화제 여자 인기상
1987년베니스영화제 여우 주연상
1984년제20회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여자 신인 연기상
  1. 조용원과 동기동창이며 (조용원은 주간 이쪽은 야간이다) KBS-MBC에서 활동해 온 탤런트 김현주(64년생)가 본인의 2년 선배다.
  2. 오빠 2명, 여동생 1명.
  3. 한승원의 소설이 원작 - 반야심경 끝부분에 반복되는 구절 일부다.
  4. 남자 배우로는 안성기가 있다. 강수연보다도 한 세대 전 일이고 어릴 때만 하였기 때문에 아역 출신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이가 적어서 그렇지...
  5. 1992년 영화 '그대안의 블루'로 개런티 2억을 받았다.
  6. 지금 관객수로 환산하면 80~100만명 정도로 잡으면 된다. 이 당시에는 단관 상영이 대세였다는점을 기억하자.
  7. 곽지균 감독이 연출하고, 강제규 감독이 시나리오를 썼다
  8. 출연만으로도 각종 영화제의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그녀가 이 작품으로 인해 어느 영화제에서도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
  9. 대표적으로 故최진실, 심혜진 등.
  10. 이 배우를 계기로 고가 개런티를 요구하는 탑 배우들이 증가하게 된다. 그리고 덤으로 클로징을 오로지 자신에게만 맞추라고 요구하기도 했는데, 이유는 오래간만에 브라운관으로 복귀한 자신의 자존심에 상처 입기 싫다는 것이었다고..
  11. 강수연이 동안으로 유명했던 것은 맞으나, 연예계 시술과 피부관리가 보편화되면서 동안으로서의 상대적 메리트도 현재는 많이 하락한 상태. 물론 절대적으로 봤을때 동안인건 확실하다.
  12. 임권택 감독의 불교 영화로, 이 때 강수연은 비구니 연기를 위해 실제로 삭발을 했다.
  13. 훗날 영화 한반도에서 성인 명성황후 역으로 출연
  14. 이 드라마에서는 성인 명성황후김영애가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