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姜禹一 Peter Kang U-il[* Peter라는 영문 이름은 [[세례명]]인 [[베드로]]에서 딴 것이다.] || [[파일:/image/038/2011/07/22/bbuheng201107212150397.jpg|width=50%&align=center]] || http://www.cbck.or.kr/upload/saint/강우일주교님문장(0).jpg?width=100% || ||||오른쪽 문장의 사목표어인 ''''네 생명 주께 맡기고 그를 바라라''''는 [[시편]] 37장 5절 말씀으로, 모든 일에 있어 [[야훼|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온전히 맡겨 드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 ||||||||||||<table align=center> [[천주교 제주교구|역대 천주교 제주교구장]] || || 2대 [[김창렬(주교)|김창렬]] 바오로 주교 ||←|| '''3대 강우일 베드로 주교''' ||→|| 현직 || [[1945년]] 생이며, [[한국 가톨릭]]의 제3대 [[천주교 제주교구]] 교구장. 세례명은 [[베드로]]이다. [목차] == 생애 == [[서울특별시]] 출신. 외할아버지 [[오위영]]은 정치가, 막내이모 오현주 베르나데트는 1959년 [[미스코리아]] 진이다.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4년]]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인해 집안 전체가 [[일본]]으로 [[이민]]을 떠나게 되었다. 일본에서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중에 [[신부(종교)|신부]]가 될 결심을 하고 [[일본]] [[도쿄]]의 [[조치 대학]] 신학부에 입학했으며 [[교황청]] 우르바노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1974년 [[천주교 서울대교구]] 소속 사제가 되었다. 1975년부터 1977년까지 [[http://www.yakhyeon.or.kr|중림동 약현성당]]과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지냈고 1977년부터 1985년까지 [[서울대교구]] 교육국장과 홍보국장을 지냈으며 1985년 [[http://church.catholic.or.kr/nangok|난곡동 성당]] 주임신부로 발령받았다. 난곡동성당 주임신부로 소임을 하던 중에 1985년 12월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서울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되었고 [[1986년]] [[2월 4일]]에 주교서품을 받았다. 당시 강 주교의 나이 만 40세로 [[한국 천주교]] 내에서 굉장한 파란으로 여겨졌다. 주교가 된 이후 [[1987년]]부터 [[1996년]]까지 주교회의 전례위원장을 맡아 [[미사]]경본 개정 작업과 함께 [[삼위일체]]의 3번째 위격인 sanctus spiritus의 번역을 성신(聖神)에서 [[성령]]으로 바꾸는 등 [[한국 천주교]]의 개혁에 앞장섰다. [[1995년]]부터 [[1998년]]까지는 [[성심여자대학교]]와 통합한 [[가톨릭대학교]]의 초대 총장을 지냈다. [[한국 천주교]] 내에서 주교급 성직자가 대학 이사장이 아닌 총장을 맡은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고[* 당시 이사장은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이었다.][* 1995~1997년까지는 그래서 이사장이 추기경, 총장이 주교, 부총장이 신부와 수녀인 흠좀무한 라인업이 등장했었다.] 통합 이후의 학교 내부의 혼란의 해결과 학교운영에 대한 [[서울대교구]]의 의지를 보여줬다. 강 주교는 대학발전을 위한 중장기 계획인 '2005 플랜' 을 세우고 새 교과과정을 실시했으며, 해외 각 대학들과의 공격적인 교류 확대를 이루어 내는 등 학교 운영을 매우 잘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1999년부터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장을 맡아 [[북한]]과의 교류를 다각적으로 시도했으며, 2001년 12월부터는 교구의 거의 모든 살림을 맡아 하는 [[서울대교구]] 총대리 겸 교구청장으로 임명받아 충실히 수행하여 차기 교구장과 [[대주교]] 더 나아가 차기 [[추기경]]으로 각광과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2002년]] [[7월 28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강 주교를 [[천주교 제주교구]] 제3대 교구장으로 전보발령하였고, 10월 8일, 교구장 착좌식과 동시에 제주교구장으로 공식 취임하였다. 사실상 좌천으로, 아무리 제주도 교구가 한 교구라고 하더라도, 신자와 돈이 없어서 따른 교구들에게 돈을 지원받을 정도로 신부 입장에서는 별로 메리트가 없는 자리인데다가 서울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강우일 주교는 [[서울대교구]]의 중요한 직책들을 거친 소위 '엘리트 신부'였으며, [[가톨릭대학교]]의 초대 총장이였으므로 김수환 추기경 은퇴 이후, [[서울대교구]] 교구장직을 이어받으며 [[가톨릭대학교]] 이사장직을 이어받을 것으로 예측되기도 하였다. [[정진석(성직자)|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이 은퇴한 2012년에도, 커리어상 가장 [[서울대교구]] 대주교직에 근접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사실상 서울대교구 대주교직과 가톨릭대학교 이사장만 안 해봤지 이 시점에서, 만 40세 젊은 나이에 주교서품부터 시작해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까지 거의 한국에서 신부로써 찍을 수 있는 최고의 커리어를 찍었다 해도 무방하다.], [[염수정]] 추기경이 서울대교구장직을 가져간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부의장과 2008년부터 2014년 10월까지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을 맡아 사회적 발언을 많이 하고 있으며, 신자들에게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현재 [[한국 천주교]]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의 하나로, 진보 성향의 신자들은 차기 [[추기경]] 후보로 항상 내세우고 있으나, 한국에는 현재 추기경이 이미 2명이나 있고 추기경 서임은 나라별로 자리 배당과 서임 날짜가 굉장히 가변적인 데다, 현 강우일 주교의 나이도 70대가 넘었을 뿐더러 사실상 서임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사실 강우일 주교를 서울대교구에서 제주교구로 발령한 것 자체가, 이미 교황청에서는 강우일 주교를 추기경으로 서임할 의사가 없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내비쳤다고도 볼 수 있다.[* 통상 다른 국가만 봐도 해당 국가 대표 교구의 장은 추기경으로 서임된 사례가 많다. 서울대교구는 조선교구로부터 이어진 우리나라의 대표 교구이므로, 교구장이 되면 십중팔구는 이후 추기경으로 서임된다 봐도 무리가 없다.] 2014년 8월 14일 ~ 8월 18일까지 진행된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추진위원회장을 지냈다. 특별히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강우일 주교의 덕분이라고 전해진다. [[대전교구]]장인 [[유흥식]] 라자로 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과 더불어 이번 방한에 공헌을 많이 했다. == 여담 ==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의 선종 5일 후인 2009년 2월 20일 거행된 장례[[미사]]에서 추도사를 낭독한 인물 중 하나였는데, 많은 이들의 감동을 자아내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http://catholics.co.kr/xe/board_MMnM19/1064|#]] >"저도 지난 2년여 동안 [[추기경]]님이 입원과 퇴원을 되풀이 하시고 급속도로 체력이 약화되시다가 7개월 전부터는 퇴원도 못하신 채 계속 병실에 붙잡혀 계시니 참으로 애처로웠습니다. (중략) 저는 이런 추기경님 모습을 뵈면서 [[야훼|하느님]]께 투정 섞인 넋두리를 늘어놓았습니다. '우리 추기경님 무슨 보속할 것이 그리도 많아서 이렇게 길게 고난을 맛보게 하십니까? 추기경 정도 되는 분을 이 정도로 족치신다면 나중에 저희 같은 범인은 얼마나 호되게 다루시려는 것입니까? 겁나고 무섭습니다.' 몇 주일 전에는 '주님, 이제 그만하면 되시지 않았습니까? 우리 추기경님 좀 편히 쉬게 해주십시오.' 하고 기도했습니다." > >"그런데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추기경님의 고난이 왜 필요했는지를! 지금 추기경님은 당신의 투병생활과 죽음을 통하여 경제위기와 사회불안으로 깜깜하고 싸늘하게 식어버린 국민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덥혀주기 시작하셨습니다. (중략) 추기경님의 고난이 있었기에 추기경님의 [[부활]]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추기경님께서 이 세상에 살아계시며 여러 곳에서 말씀하셨을 때보다 지금 훨씬 더 많은 이들이 추기경님 말씀을 음미하고 그 가르침을 실천하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 >"추기경님은 이제 혜화동 할아버지가 아니라 한국의 할아버지가 되셨습니다." > >"사랑하는 추기경님, 저는 믿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어서 오너라, 내 사랑하는 [[바보]]야! 그만하면 다 이루었다!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 >"평안히 가십시오, 추기경님. 그리고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시면 당신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애틋하게 사랑하셨던 우리 백성을 위하여 주님께 간구하여 주십시오." 그의 이모가 미스코리아 출신이라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굉장한 미남이었고, 미노년이다. 실제로 뵈면 미노년 간지와 근엄이 넘치신다. [[분류:종교인]] 강우일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