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상위 항목 : [[FC 서울]], [[축구 관련 인물]], [[축구 해외파 선수들]] http://m.kfa.or.kr/_Data/kfa_photo/200810/2008101771614.jpg ||||<:><#e60026> '''{{{#ffffff FC 서울 수석코치 }}}''' || ||||<:><#000000> {{{#ffff00 강철 (姜喆 / Kang Chul)}}} || || 생년월일 || 1971년 11월 2일 || || 국적 || [[대한민국]] || || 키 || 176cm || || 선수 커리어 || [[제주 유나이티드/유공과 SK 시절|유공 코끼리/부천 SK]](1993~2000) [br] [[상무]](군복무)(1996~1998) [br] LASK 린츠(2001) [br] [[전남 드래곤즈]](2001~2004) || || 지도자 커리어 || [[전남 드래곤즈]](2005~2008/코치) [br]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U-23(2007~2008/코치) [br] [[부산 아이파크]](2008~2010/코치) [br] [[포항 스틸러스]](2011~2015/수석코치) [br] [[FC 서울]](2016.6~/수석코치) || || 행정 커리어 ||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 부위원장(2016) || || 선수시절 포지션 || 왼쪽 풀백 || || 국가대표 || 54경기 1골 || ||<:><-12><#ee1111> '''{{{#ffffff 1999 K리그 베스트 일레븐 }}}''' || ||<:><-6> FW [br] [[안정환]] ||<:><-6> FW [br] [[사샤 드라쿨리치|샤샤]] || ||<:><-3> MF [br] [[서정원]] ||<:><-3> MF [br] [[고종수]] ||<:><-3> MF [br] [[데니스]] ||<:><-3> MF [br] [[고정운]] || ||<:><-3> DF [br] '''강철''' ||<:><-3> DF [br] [[김주성(축구)|김주성]] ||<:><-3> DF [br] [[마시엘]] ||<:><-3> DF [br] [[신홍기]] || ||<:><-12> GK [br] [[이운재]] || ||<:><-12><#ee1111> '''{{{#ffffff 2000 K리그 베스트 일레븐 }}}''' || ||<:><-6> FW [br] [[최용수]] ||<:><-6> FW [br] [[김도훈]] || ||<:><-3> MF [br] [[안드레]] ||<:><-3> MF [br] [[신태용]] ||<:><-3> MF [br] [[전경준]] ||<:><-3> MF [br] [[데니스 락티오노프|데니스]] || ||<:><-3> DF [br] '''강철''' ||<:><-3> DF [br] [[이임생]] ||<:><-3> DF [br] [[김현수(1973년 3월)|김현수]] ||<:><-3> DF [br] [[마시엘]] || ||<:><-12> GK [br] [[신의손]] || [목차] == 소개 ==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 2016년 현재는 [[FC 서울]]의 수석코치를 맡고 있다. 선수시절 영리함과 강인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한 활약으로 팬들에게 많은 인상을 남겼다. 특이하게 학창 시절에는 스트라이커였다고 하며, 아시아 학생 선수권대회에서 득점왕과 MVP를 수상했을 정도로 공격적인 재능을 선보였다. 수비수로 포지션을 변경한 것은 대학 진학 후 주전 풀백을 보던 선수가 부상당해 땜빵용으로 들어간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 선수 시절 == === 클럽 === 1993년 [[부천 SK]]에 입단한 이후 계속 주전으로 활약했으며, [[발레리 니폼니시]]가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에는 이른바 "니포 축구"의 일원으로 K리그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데 일조했다. 이런 활약으로 1999년과 2000년에 2년 연속으로 K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 뒤 2001년 [[최성용]]과 함께 [[오스트리아]]의 [[LASK 린츠]]로 이적했으나,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는 못하고 4개월만에 국내로 복귀했다. 하지만 친정팀인 부천 SK가 아닌 [[전남 드래곤즈]]에 입단해 부천 팬들의 공분을 샀다.[* 어느 정도였냐면 이 때 부천 팬들이 경기장에서 강철의 유니폼을 태우는 화형식까지 했을 정도였다.] 이후에는 전남 드래곤즈에서 2004년에 은퇴. 특이하게도 부천 시절과 전남 시절 모두 주장 완장을 차면서 특유의 리더십을 보여준 바 있다. === 국가대표 === 대학 재학중이던 1989년에 '''만 17세 7개월'''로 국가대표팀에 입성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걸었다. 이 때 기존의 국가대표팀 선수들과 나이차이가 제법 나서 "삼촌"이라고 불렀다고... 비록 A매치에서 활약하지는 못하고 훈련만 소화한 것이었지만 당시 같이 대학 무대에서 명성을 떨치던 [[홍명보]]도 받지 못했던 대우였다. 하지만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1990 FIFA 월드컵]] 직전 대표팀에서 낙마하고 그 자리에 대학 무대에서 맹활약하던 홍명보가 발탁되면서 월드컵 무대를 밟지는 못했다. 비록 월드컵에는 출전하지 못했으나 대신 1991년 [[포르투갈]]에서 열린 U-20 월드컵에 출전했다. 여담으로 당시 국가대표팀은 남북단일팀으로 구성되었는데, 북한의 최철과 윤철, 대한민국의 박철과 함께 "철 4총사"로 불렸다고 한다. 이 대회에서 강철은 몸을 아끼지 않는 수비를 선사했고, 단일팀은 첫 경기에서 [[아르헨티나]]를 1-0으로 잡는 이변을 일으키며 8강에 진출했다. 이후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도 대표팀으로 발탁되었지만, 대표팀은 [[서정원]]과 [[정재권]] 등 수준급의 공격 자원을 보유했음에도 불구하고 단 두골만을 득점하는 부진 끝에 3무로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했다. 유독 [[FIFA 월드컵]]과는 인연이 없는데, [[1994 FIFA 월드컵 미국|1994 FIFA 월드컵]] 당시에는 대회 직전 발목 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당해 좌절되었고, 이후 1996년 [[상주 상무|상무]]에 입대해 1997년 전역했으나 당시 [[K리그]] 소속이 아니었던 상무에서 2년을 보낸 탓에 몸상태가 정상이 아닌지라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1998 FIFA 월드컵]]에도 나오지 못했다. 이후 [[거스 히딩크]]가 감독으로 부임해 한 때 주장 완장까지 차는 등 대표팀의 핵심 멤버로 활약했지만 결국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2002 FIFA 월드컵]] 본선 엔트리에 들어가는 데 실패했다. 반면 [[AFC 아시안컵]]은 [[1996년 AFC 아시안컵|1996년]]과 [[2000년 AFC 아시안컵|2000년]]에 모두 참가했으며,2001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도 발탁되었다. 다시 말해 국가대표팀으로 뛸 수 있는 대회에서 다 뛰었는데 결국 유독 월드컵만 못 나온 셈이다. 대표팀에서의 기록은 54경기 1골. 이외에 [[2000 시드니 올림픽]]에도 출전한 경력이 있어 선수 생활 동안 두 번이나 [[올림픽]]에 참가한 진귀한 기록도 가지고 있다.[* 강철 이외에 이런 기록일 갖고 있는 한국 선수는 [[이천수]], [[최태욱]], [[김동진(축구선수)|김동진]], [[김정우(축구선수)|김정우]] 정도밖에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홍명보 땜빵 격으로 뛰던 선수로 기억되고 있다. 그 단적인 예가 2000 시드니 올림픽 당시 홍명보가 부상으로 [[와일드카드]]에서 낙마하자 대회 며칠을 앞두고 바로 [[시드니]]로 합류했던 사건. 허나 다른 사람도 아닌 홍명보의 땜빵이었고, 홍명보는 부상도 거의 없었기에 당시에 축구를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인지도가 지극히 낮다. == 은퇴 이후 == 은퇴 이후에는 전남 드래곤즈 코치를 거쳐 [[2008 베이징 올림픽]]을 준비하던 [[박성화]] 감독을 보좌하는 코치로 활약했으며, 올림픽 이후에는 [[부산 아이파크]]의 코치로 있었다가 현재는 [[포항 스틸러스]]에서 수석코치를 역임하였다. 은퇴 후 스카우터로 스탭직을 시작했기에 선수 보는 눈이 좋다는 평가가 있다. [[황선홍]] 감독 부임 후 성적이 좋지 않았을 무렵에는 강철과 [[윤희준]]이 '수비축구의 원흉'으로 찍혀서 퇴진 압력을 받은 적도 있다.[* 하지만 황선홍 감독 체제에서 강철과 윤희준 두 코치가 수비전술을 만들다시피 한 점을 생각해보면 그런 평가는 좀 성급한 면이 있다. 2012년의 고비를 넘긴 이후에 탄탄한 수비를 바탕으로 시즌 더블을 일구어냈으니 결과적으로는 틀린 비판이 되었다. 그러나 이후 2014시즌 15시즌을 거치면서 '''도무지 나아지지 않는''' 포항의 세트피스 수비/공격을 보면 여전히 의문부호가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유한 성격의 황선홍 감독 대신 총대를 메고 팀의 기강을 잡는 역할을 하는 등 팀의 중심역할을 했고 황선홍 감독이 지휘봉을 내려놓으면서 같이 수석코치직도 내려놓았다. 이후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의 부위원장으로 선임되었다. 2016년 6월 황선홍 감독이 중국으로 떠난 최용수 감독 대신 FC 서울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강철 코치의 스태프 커리어도 금방 끝났다. 최용수 감독을 따라 중국으로 간 김성재 코치를 대신해 FC 서울 수석코치로 임명되었다. [[분류:FC 서울]] [[분류:축구선수]] 강철(축구인)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