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야구 관련 인물(KBO)]] [[분류:야구선수]] [[분류:순천시 출신 인물]] [[분류:1971년 출생]] [[분류:투수]] [[분류:좌완 투수]] [[분류:좌투좌타]] [[http://mblogthumb1.phinf.naver.net/20150726_288/so009911_1437866660774cNCEG_PNG/%3F%3F%3F%A2%AF%3F.png?type=w2|한창 날리던 1990년대 중후반 무렵]] --즉, 20대 시절 찍은 것이다.-- 前 [[해태 타이거즈]]의 투수이자 현재 [[삼성 라이온즈]]의 스카우트. 1971년 5월 15일 生. [[전라남도]] [[순천시]] 출신이다. [[해태 타이거즈]]에서 전통적으로 희귀한 왼손잡이로 주로 중간계투로 등판하며 짭짤한 활약을 했다. 별명은 쌀봉이(밥을 많이 먹는다고 해서)! [[순천상업고등학교 야구부|순천상고]]를 졸업한 뒤[* 당시 동기생이 [[조웅천]]이었고, 둘 다 팀의 간판 미들맨이었던지라 현대와 해태가 맞붙은 [[1996년 한국시리즈]]나 [[홀드]] 제도가 처음으로 도입된 2000년에 조웅천과 강태원을 라이벌로 엮은 기사가 종종 나오곤 했다.] 1989년에 입단한 후 2군에서 꾸준히 실력을 키워 오다, 1994년부터 본격적으로 1군 무대에서 활약했다. 최고 구속이 135km/h로 야구 선수로서는 다소 불리했으나, 타자와의 수싸움에 진가를 발휘하며 자리를 잡아갔던 것. 1995년부터는 선수 달력에서도 제법 크게 사진이 실리는 등 비중이 부쩍부쩍 늘어났다. 2002년 은퇴할 때까지 '왕조'의 전성기와 쇠퇴기를 함께한 선수. [[http://www.koreabaseball.com/Record/Retire/Pitcher.aspx?playerId=89672|강태원 투수의 역대 성적]] 인터벌이 역시 느린 공 투수였던 당시 삼성의 [[성준]]과 맞먹는 '공포의 투수'이기도 하다. 한동안 농담소재로 곧잘 쓰였던 '''[[박한이]] vs. [[성준]]'''은 [[성준]]이 1999년에 은퇴한 후 [[박한이]]가 입단하면서 상상으로 남았지만, '''강태원 vs. [[성준]]''' 두 '라이벌' 간의 대결은 이미 수 차례 펼쳐진 바 있다. 구종이 별로 많지 않았는데, 이 때문에 [[LG 트윈스]]에서 이적해 온 [[이병훈(야구)|이병훈]]이[* 이 무렵이 [[김응용]] 감독이 "타자로 대성할 선수"라며 이 선수에게 '''애정어린 갈굼'''을 시전하던 시기. 나중의 갈등과는 별개로 "대성할 수 있었는데, 술이 그를 망치고 말았다."며 인터뷰에서 안타까움을 표시한 바 있다.] "구종도 많지 않으면서 왜 그리 포수 사인을 자주 거부하느냐?"고 묻자, "그렇게 하면 [[블러핑|'''상대가 내 구종을 쉽게 짐작못할 것''']]"이라 답했다고 한다.[* 이병훈이 해설가로 활동할 무렵 이 일화를 얘기하며, "우리 마누라도 강태원 구종이 OO개인거 다 알아요!"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위 사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노안]]'''이라는 특성 때문에 이따금 해프닝도 있었다고 한다. 사우나에서 [[김성한]] 전 감독에게서 "나이도 젊은 놈이 그라운드에서 땀을 빼야지 왜 여기서 땀을 빼냐?"고 꾸짖자, 그걸 들은 나이 지긋한 분이 "왜 나이든 사람한테 함부로 말하냐"고 오히려 [[김성한]] 감독을 나무랐다고.[* 강태원이 1971년 5월생이고 [[김성한]] 감독이 2001년에 취임했으니, 이제 갓 서른 넘겼을 때 생긴 일이다.] ~~그보다 더한 [[안승민|노안]]도 있다~~ 은퇴 후 2009년까지 [[KIA 타이거즈]]의 스카우트를 맡았다가 현재는 [[삼성 라이온즈]]에서 스카우트로 활동 중. 삼성 프런트 직원들은 무려 '''[[안한수|영감님]]'''이라고 부른다고(...) [[흠좀무]] [[분류:야구선수]][[분류:해태 타이거즈]] 강태원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