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원

한창 날리던 1990년대 중후반 무렵 즉, 20대 시절 찍은 것이다.

해태 타이거즈의 투수이자 현재 삼성 라이온즈의 스카우트. 1971년 5월 15일 生. 전라남도 순천시 출신이다.

해태 타이거즈에서 전통적으로 희귀한 왼손잡이로 주로 중간계투로 등판하며 짭짤한 활약을 했다. 별명은 쌀봉이(밥을 많이 먹는다고 해서)!

순천상고를 졸업한 뒤[1] 1989년에 입단한 후 2군에서 꾸준히 실력을 키워 오다, 1994년부터 본격적으로 1군 무대에서 활약했다. 최고 구속이 135km/h로 야구 선수로서는 다소 불리했으나, 타자와의 수싸움에 진가를 발휘하며 자리를 잡아갔던 것. 1995년부터는 선수 달력에서도 제법 크게 사진이 실리는 등 비중이 부쩍부쩍 늘어났다. 2002년 은퇴할 때까지 '왕조'의 전성기와 쇠퇴기를 함께한 선수.

강태원 투수의 역대 성적

인터벌이 역시 느린 공 투수였던 당시 삼성의 성준과 맞먹는 '공포의 투수'이기도 하다. 한동안 농담소재로 곧잘 쓰였던 박한이 vs. 성준성준이 1999년에 은퇴한 후 박한이가 입단하면서 상상으로 남았지만, 강태원 vs. 성준 두 '라이벌' 간의 대결은 이미 수 차례 펼쳐진 바 있다.

구종이 별로 많지 않았는데, 이 때문에 LG 트윈스에서 이적해 온 이병훈[2] "구종도 많지 않으면서 왜 그리 포수 사인을 자주 거부하느냐?"고 묻자, "그렇게 하면 상대가 내 구종을 쉽게 짐작못할 것"이라 답했다고 한다.[3]

위 사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노안이라는 특성 때문에 이따금 해프닝도 있었다고 한다. 사우나에서 김성한 전 감독에게서 "나이도 젊은 놈이 그라운드에서 땀을 빼야지 왜 여기서 땀을 빼냐?"고 꾸짖자, 그걸 들은 나이 지긋한 분이 "왜 나이든 사람한테 함부로 말하냐"고 오히려 김성한 감독을 나무랐다고.[4] 그보다 더한 노안도 있다

은퇴 후 2009년까지 KIA 타이거즈의 스카우트를 맡았다가 현재는 삼성 라이온즈에서 스카우트로 활동 중. 삼성 프런트 직원들은 무려 영감님이라고 부른다고(...) 흠좀무
  1. 당시 동기생이 조웅천이었고, 둘 다 팀의 간판 미들맨이었던지라 현대와 해태가 맞붙은 1996년 한국시리즈홀드 제도가 처음으로 도입된 2000년에 조웅천과 강태원을 라이벌로 엮은 기사가 종종 나오곤 했다.
  2. 이 무렵이 김응용 감독이 "타자로 대성할 선수"라며 이 선수에게 애정어린 갈굼을 시전하던 시기. 나중의 갈등과는 별개로 "대성할 수 있었는데, 술이 그를 망치고 말았다."며 인터뷰에서 안타까움을 표시한 바 있다.
  3. 이병훈이 해설가로 활동할 무렵 이 일화를 얘기하며, "우리 마누라도 강태원 구종이 OO개인거 다 알아요!"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4. 강태원이 1971년 5월생이고 김성한 감독이 2001년에 취임했으니, 이제 갓 서른 넘겼을 때 생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