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백제/인물]] 謙益 ?~? 겸익은 [[백제]]의 [[승려]]로 [[율종]]의 [[시조]]이다. [[529년]](백제 [[성왕]] 4년)에 혼란스러운 정국의 [[인도]]에 다녀와서 율종을 개창하였다. 그는 인도 중부의 [[상가나사]](常伽那寺)에서 [[산스크리트어]]를 배우고 율부(律部)를 전공하여 인도 승려 배달다삼장(倍達多三藏)과 함께 백제로 돌아왔다. 성왕이 예를 갖추고 마중을 나가 환영했다. 겸익과 배달다삼장은 [[흥륜사]](興輪寺)에 머물면서 인도에서 가지고온 율문을 백제의 고승 28인과 함께 율부 72권으로 번역했다. 당시 백제의 고승들은 겸익을 도와 윤문(潤文-글을 윤색함)과 증의(證義-[[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04660&mobile&categoryId=2886|링크]])를 했으며, 그후 [[담욱]](曇旭)과 [[혜인]](惠仁)이 이 율에 대한 소(疏-주석) 36권을 지어 성왕에게 바쳤다. 이때 번역한 율은 《범본아담장오부율문(梵本阿曇藏五部律文)》 또는 《비담신율(毘曇新律)》이라고 한다. 아담이나 비담은 아비달마(阿毘達磨)의 준말이지만 아비달마율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아직 모른다. 성왕이 이 신역율본을 태요전(台耀殿)에 보관하여 널리 보급하려 하였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붕어]]했다. 사실 [[중국]]에 이미 《오분율(五分律)》 등 몇 종의 율부가 번역되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인도로부터 직접 원전을 가져와 번역한 것이다. 겸익의 율학으로 인하여 백제불교는 계율 중심의 불교가 되었고 그후 [[일본]] 율종의 근거가 되었다고 한다. 이사람이 인도에 갈때 바닷길을 탔는지 [[실크로드]]를 탔는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백제의 교류 범위가 꽤나 넓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겸익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