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상위 항목 : [[한국사 관련 정보]] [목차] == 개요 == 庚戌國賊 [[을사오적]], [[정미칠적]]에 이어 [[1910년]][* [[갑자|60갑자]]로 따지면 경술(庚戌)년이다.] [[8월]]에 [[경술국치|한일 병합 조약]] 체결에 찬성 또는 협조한 매국노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http://www.pressian.com/data/photos/IMAGE_ROOT/images/2013/11/20/10131120150736(0).JPG 경술국적 중 한명인 윤덕영의 대저택이다. 이름은 벽수산장. 광복 이후에는 UNCURK의 본부로 사용되다 1973년에 철거되었다. 다만 여전히 터 주변은 UNCURK에서 따와 엉컹크길이라고 부른다. == 명단 == * '''내각총리대신 [[이완용]]''' * '''시종원경 [[윤덕영]]''' : [[순정효황후 윤씨]]의 백부로 순정효황후가 치마폭에 숨겨놓은 옥새를 빼앗어서 옥새를 찍는데 큰 공을 세웠다. * '''궁내부대신 [[민병석]]''' * '''탁지부대신 [[고영희]]''' * '''외부대신 [[박제순]]''' * '''농상공부대신 [[조중응]]''' * '''친위부장관 겸 시종무관장 [[이병무]]''' * '''승녕부총관 [[조민희]] - 이완용의 [[처남]]''' 총 여덟. 특히 '''[[이완용]]'''은 '''[[을사오적]]''', '''[[정미칠적]]'''에 이어 여기에도 이름을 올리는 '''[[해트 트릭|삼관왕]]을 달성'''했다. --실질적으론 [[기유각서]]까지 포함해서 4관왕이다.-- [[을사오적]]에만 참여하지 않은 고영희는 2관왕, 그나마 5적 중에 당시엔 부끄러움은 알았던 박제순도 2관왕이다. 이로서 박제순은 일말의 옹호[* 을사조약 당시 민영기는 반대했으나 자구 첨삭에 참여하고 훗날 훈장•작위를 받았으며, 이하영도 찬성자로 분류되었다. 반면 박제순은 "시대와 대세를 안다"라는 언급으로 이토에 의해 찬성자로 분류되었으나 조약 당시엔 묵묵부답이었다.]도 불가능해졌다. 이들은 모두합방의 공을 인정받아 일제로부터 [[조선귀족|귀족작위]]를 받았으며,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과 '광복회'가 공동 발표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당연히 모두 수록되었다. 당시 이들이 일제강점기에 받은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0/07/13/0200000000AKR20100713218900004.HTML|은사금은 엄청났다.]] 일단, [[이완용]]은 15만 엔(30억 원)을 받았다. 여기까지 보면 [[이완용]] 혼자만 나라를 팔아먹은 돈으로 호의호식한 것 같지만, 이지용은 10만 엔, 송병준과 고영희는 자작이지만 10만 엔을 받았다. 왕족 출신의 후작, 이재각과 이재완은 16만 8천 엔을 받았다. 최고액 수령자는 궁내부 대신인 [[이재면]]으로, 83만 엔을 받았다. 순종의 장인인 윤택영은 50만 엔을 받았고, 신궁봉경회 총재이자 대원군의 손자인 [[영선군|이준용]]은 16만 3천 엔을 받았다. 귀족은 아니지만, 이용구는 10만 엔을 받았다. == 경술국적 명단에 들지 않은 이들 == 참고로 이 당시 조약 테이블에 같이 앉아 있던 학부대신 [[이용직]]은 비록 조약 후에 중추원 간부를 지냈고 일본에게 자작 지위를 받았으나, 조약에 결사 반대하였고[* 그러나 혼자 반대해 봤자 대세를 뒤집을 힘 따윈 없었다.], 이후 [[3.1 운동]] 당시에 독립청원서를 제출하여 결국 지위를 박탈당했기 때문에 친일파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용직과 같은 길을 걸은 사람이 바로 온건 [[개화파]]로 한국 근·현대사에서 [[김홍집]]만큼 이름을 뿌리는 [[김윤식(조선)|김윤식]]이다. 둘 다 [[친일파]] 소리를 들었던 적도 있지만, 애시당초 일본의 힘을 빌어 국가를 근대화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던 이들이기 때문에 매국노와는 근본이 다르다. 실제로 대한제국이 멸망을 피할 수 없게 된 시점에 매국노의 반열에 접어든 자들이 아닌 개화파들은 모두 돌아섰다. 그들의 목적인 조국의 근대화지, 매국이 아니었으니까.[* 근데 김윤식은 좀 애매한게 자작 박탈 이후에도 조선총독부 부의장으로 임명되기도 했으며 민족운동의 분열에 기여하기도 하였다.] == 관련 항목 == * [[경술국치]] * [[친일파]] * [[매국노]] * [[을사오적]] * [[정미칠적]] * [[민족반역자]] [각주] [[분류:친일반민족행위자]] 경술국적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