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상위 문서 : [[왕릉(무덤)]]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history_site/2016012713492200.JPG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3,02220000,37|경주시에서 가져온 사진]] [목차] [[사적]] 제 222호 == 개요 == [[신라]] 55대 왕 [[경애왕]]의 무덤. 경애왕은 신라 최말기의 왕으로 성은 박씨이고 휘는 위응으로 재위 4년 [[포석정]]에 유연할 때 불의에 [[후백제]] [[왕]] [[견훤]]의 습격을 받아 비참한 최후를 마쳤다. [* 927년 포석정에서 연회를 베풀면서 회장에서 모두들 흥에 겨우고 있었는데 갑자기 견훤과 그의 군사들이 습격해 경애왕에게 자살을 명령하고 왕비와 궁녀를 견훤과 그의 군사들이 욕보이게 한 뒤 김부(56대 [[경순왕]])를 왕에 자리에 올렸다.] == 상세 == 일생을 마친 포석정에서 가깝다면 가까운 1.5km 정도 거리에 있다. 근처에 박씨 왕들의 왕릉인 [[배동 삼릉]]이나 [[오릉]]이 있어 경주 시가지 서남부의 이 지역이 박씨 왕조의 능원으로 조성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주변에 송림이 울창하고 봉토가 일반 묘보다는 크므로 왕릉으로 구전되어 오고 있다. 릉은 평범한 원형 토분이고 표면에는 아무 시설이 없다. 릉 앞에 석상이 있으나 최근에 설치한 것이다. 경애왕의 최후와 당시 신라의 국세가 재기할 수 없을만큼 기울었다는 정세를 감안하더라도 왕릉으로서는 빈약한 편이다. [[분류:왕릉]][[분류:통일신라]][[분류:경주역사유적지구]][[분류:대한민국의 사적]] 경애왕릉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