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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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시에서 가져온 사진

사적 제 222호

1 개요

신라 55대 왕 경애왕의 무덤. 경애왕은 신라 최말기의 왕으로 성은 박씨이고 휘는 위응으로 재위 4년 포석정에 유연할 때 불의에 후백제 견훤의 습격을 받아 비참한 최후를 마쳤다. [1]

2 상세

일생을 마친 포석정에서 가깝다면 가까운 1.5km 정도 거리에 있다. 근처에 박씨 왕들의 왕릉인 배동 삼릉이나 오릉이 있어 경주 시가지 서남부의 이 지역이 박씨 왕조의 능원으로 조성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주변에 송림이 울창하고 봉토가 일반 묘보다는 크므로 왕릉으로 구전되어 오고 있다. 릉은 평범한 원형 토분이고 표면에는 아무 시설이 없다. 릉 앞에 석상이 있으나 최근에 설치한 것이다.

경애왕의 최후와 당시 신라의 국세가 재기할 수 없을만큼 기울었다는 정세를 감안하더라도 왕릉으로서는 빈약한 편이다.
  1. 927년 포석정에서 연회를 베풀면서 회장에서 모두들 흥에 겨우고 있었는데 갑자기 견훤과 그의 군사들이 습격해 경애왕에게 자살을 명령하고 왕비와 궁녀를 견훤과 그의 군사들이 욕보이게 한 뒤 김부(56대 경순왕)를 왕에 자리에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