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목차] == 개요 == [[한중록]], [[인현왕후전]]과 함께 조선 3대 --궁중 [[막장 드라마]]-- 궁중문학이다. 《서궁록(西宮錄)》이라고도 한다. 필사본으로 낙선재본(樂善齋本)〈계累일긔〉와 홍기원본(洪起元本)〈서궁일기(西宮日記)〉가 존재한다. 두 판본에는 약간의 차이점이 있는데, 모두 원본이 아니며 원본은 따로 존재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 내용 == 계축일기란 이름은 1613년의 [[계축옥사]]에서 나왔으나, 서술은 임인년(선조 35년인 1602년)부터 시작된다. [[선조]]의 죽음 이후 즉위한 [[광해군]]이 [[영창대군]]을 [[강화도]]로 내쳐 죽이는 비극과 [[소성대비]](=[[인목왕후]])가 폐비된 후 서궁에 갇혀 수난을 겪는 과정을 묘사했다. (서궁에 갇힌 한 나인([[궁녀]])의 시점에서만 묘사되고 있기 때문에 [[영창대군]]의 죽음 등은 [[꿈]]을 통해서 암시적으로 묘사된다.) 계해년(1623년) 3월 13일 [[인조반정]]이 일어나고 광해군이 쫓겨난 다음 [[소성대비]]의 연금이 풀리는 시점에서 완결된다. --해피엔딩처럼 보이지만 바로 뒤가 [[정묘호란]]-- == 저자 == [[소성대비]]를 모신 나인이라고 글쓴이가 스스로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에 이루어진 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소성대비]] 자신이 저자라는 설, 혹은 [[소성대비]]의 딸로서 같이 유폐되어 있던 [[정명공주]](貞明公主)라는 설, 그 외의 여러 나인들이 썼다는 설이 제시되고 있다. 일단 본문 비평으로 보아 적어도 단 1명의 나인이 쓴 것은 아니라는 설이 유력하다. == 평가 == 문체상의 특징으로는 [[순우리말]] 고유어와 궁중 용어를 많이 사용하였다고 평가받는다. 묘사가 섬세하고 상당히 사실적인 관점에서 기술되어 있기 때문에 문학적 평가가 높다. 물론 [[인조반정]] 이후에, [[광해군]]에 반대하는 시점에서 쓰여졌으므로 사료적 평가는 낮고 편파적으로 묘사되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문학적인 소설로 간주하는 견해를 벗어나서 책 속의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에 기인되어 서술된 만큼 넓은 의미에서 [[수필]]이나 기록문학과 수기문학으로 여기자는 주장도 있다. == 참조 == [[http://konkuk.ac.kr/~shindh/supil/gyechuk.htm|읽어보기]] [[분류:조선(17세기)]][[분류:조선의 도서]] 계축일기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