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상위 문서 : [[한국 만화/목록]] [[파일:attachment/고바우 영감/ko.jpg]] [목차] == 소개 == 시사만화가 [[김성환(만화가)|김성환]] 작가의 4컷짜리 시사 풍자만화. http://www.dinonabi.com/shop/data/editor/OP7dInuzX20141006201652..jpg [* 왼쪽 만화의 마지막 컷의 한자는 '무전생존'이다. ~~錢 자 획이 왠지 많다.~~] [[1950년]] 주간지 '''만화신보'''에 첫 연재가 되었고 [[1955년]]부터 [[동아일보]]로 자리를 옮겨서 매일 연재되었다가 [[1980년]] [[5월 14일]]부터 [[조선일보]]로 자리를 옮겨서 매일 연재하게 되었고 1992년부터 작가가 조선일보를 퇴사하여 [[문화일보]]로 자리를 옮겨서 연재되었다가 [[2000년]] [[9월 29일]]을 끝으로 50년 만에 연재가 종료되었다. [[대한민국]] 시사만화 중에서 1만 4139회 연재라는 최장 기록을 가지게 되었으며 스크린톤을 사용하지 않고[* 1992년 문화일보로 옮긴 이후 연재 분량에서는 스크린톤을 간간히 쓴다.] 만화 펜촉 그대로 매일 신문에 연재하게 되었던 4컷짜리 만화라는 점에서도 보듯 작가의 필력도 세월에 따라 변화된 적이 있기도 하였다. 초기에는 가정적이고 넌센스적으로 그려낸 풍자물이었으나 함께 연재되던 1컷만평을 대신하여 1950년대 후반 [[경무대 똥통 사건]]으로 사회적 탄압을 받고 1960년대 [[4.19 혁명]]과 [[5.16 군사정변]]기 등을 거치면서 점차 정치적 풍자물로 바뀌어갔으며 만화검열이 [[만화 검열제|심했던 7-80년대]]를 거치면서는 정치사회를 비판하고 풍자하는 만화로 진화해가면서 그 당시 검열당국의 경고와 제재 등을 받은 적도 있었다. 심한 경우 말풍선 하나가 통째로 잘린다거나 아예 한 화 전체가 지워져서 나간 적도 있다. 몇몇 에피소드를 대충 봐도 이렇다. * 새로운 건물 디자인 1955년 11월 23일자. 11월 18일 [[서울신문]] [[대구광역시|대구]] 지사에 자유당 높으신 분을 친척으로 둔 대구 주둔 부대 소속 육군 [[대령]] 최석대가 여러 부하들을 이끌고 난입해 자신의 아내가 구타당한 끝에 자살한 걸 보도한 게 엉터리라며 들이닥쳐 대구 지사시설을 파괴하고 기자를 구타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걸 본 고바우 영감이 신문사로 와서 새로운 신문사 건물 디자인을 만들었다며 그림을 보여준다. 그것은 '''신문사 건물을 대포로 중무장한 요새화'''한 그림이다. * 국가보안법 반대 1958년 12월 28일자. 당시 [[민주당(1955년)]]은 [[자유당]]이 [[국가보안법]]이란 이름으로 영구권력화를 한다면서 엉터리 보안법을 없애라는 시위를 벌였고 당연히 자유당은 [[빨갱이]] 드립으로 뭉개던 걸 풍자한 연재분. [[야당]] 측에서 "보안법이 싫다"는 현수막을 들고 시위함에도 자유당은 보안법을 선포한다고 일갈. 야당이 "우리가 싫다고 하면 꼭 반대로 한다!"라고 화를 내는데 고바우 영감이 나타나서 "그럼, 이렇게 해보시게."라고 뭔가 말을 하는데 그 말을 들은 야당은 현수막으로 '''"돈두 싫다!"'''라고 외치자 자유당에선 돈다발을 내던진다. ~~돈 득템하셨습니다~~ * 검열을 풍자한 만화 [[5.16 군사정변]] 이후 연재된 부분으로 고바우 영감이 내기바둑을 두는데 엿장수가 나타나 가위로 철컥철컥 소리를 내서 고바우 영감이 계속 지는 내용으로 당시 군부에서 검열을 비꼬는 것이냐고 입건하여 벌금형을 내렸다. * 어민들의 시름 한일 국교 정상화로 [[이승만 라인]]이 없어지면서 어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한 일이 있었다. 이 당시 그린 고바우영감에선 한 어민이 산에 가서 물고기 뼈다귀를 벼심듯 심는다. 고바우 영감이 대체 뭐하냐고 하자, 그 어민은 "이렇게 심으면 벼처럼 물고기가 자라지 않을까 싶어서요." 김성환 화백은 이걸로 또 경찰서에 불려나갔다고 한다. 벌금으로 얼마를 내다 바쳤는지도 모르겠다고 할 정도로 웃으며 회고할 정도였다. * [[병역기피]]를 신랄하게 풍자한 만화도 있다. 1958년 3월 16일자 징집예정자 : "귀속에 비누물을 넣으면..." 고바우 영감 : "귀머거리는 안 되지." 징집예정자 : "회젓가락을 달구어 입에 넣어도..." 고바우 영감 : "벙어리가 되진 않아." 징집예정자 : "팔에다 못을 박아도..." 고바우 영감 : "곰배팔이(팔을 못 쓰는 사람)가 되진 않아." 징집예정자 : "나는 천생 나갈 팔자구나." 고바우 영감 : ('축 입대 기합술군'라는 걸개를 들고 축하해준다) [[흠좀무]]한 것은, 실제로 이 때는 이런 수법을 쓰면서까지 군대 안 가려고 했던 사람들이 꽤 있었다는 사실이다. [[6.25 전쟁]]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아 [[거지]]가 된 [[상이군인]]들의 처참한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고,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북한의 재남침 위협이 컸던 때였다. 게다가 당시 [[군납비리]]는 심각한 수준이어서, [[짬밥]]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사병으로 군대를 가면 제대로 먹지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당시에는 복무규율도 제대로 정해져있지 않고, [[일본군]]시절의 [[똥군기]] 잔재가 엄청나던 시절이라--그건 지금도...-- [[구타]]와 가혹행위가 수시로 벌어지던 때였다.[* 흔히들 말하는 '''[[쌍팔년도]] 군대'''가 바로 이 시절을 가리키는 말이다. 1962년까지 한국은 [[서력기원|서기]]가 아닌 [[단군기원|단기]]를 사용했고, 4288년인 1955년 시절의 열악한 군대가 바로 이 시기이다.] 이러니 입대에 대한 두려움이 워낙 커서 이렇게까지 했던 모양이다. 참고로 김성환 본인은 6.25 당시 입대하여 '''현역으로 실전을 겪으며''' 살아남았다. 검열은 [[제5공화국]] 시절인 80년대가 가장 극심하여 이때는 50년대 초처럼 내용 없는 만화로 돌아갔는데도 각종 의심, 검열, 방해를 받았다고 한다. 이렇게 풍자의 맛이 사라진 만화에 딴 사람이 그린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고. 다만 영향력이 하도 큰 지라 독재정권 하에서 여러번 잡혀가거나 벌금을 내어도 손찌검도 당하지 않고 불수면 고문도 없었다고 한다. [[흠좀무]]. 되려 5일 뒤 석방되어 인지도만 높아졌는데, 화백은 '''작전 성공'''이었다고 회고했다. --역시 [[대인배]]-- 이승만 정권에서는 450[[환]]의 저렴한 벌금으로 퉁친 적도 있는데 이때도 만화가 무슨 허위"보도"를 하느냐며 욕이나 더 먹었다고. 독자들에게는 정치사회를 풍자하고 신랄한 비판을 그려내었기 때문에 신문을 보는 입장에서는 답답한 기분을 날렸다거나 풍자적인 내용으로 인해서 재밌었다는 평가들이 오갔다. 자체 설문조사에서 신문을 볼 때 가장 먼저보는 기사로 고바우 영감이 꼽히는 일도 부지기수였다고. 연재가 종료된 2000년 11월에는 고바우 영감 연재 50주년 기념우표가 발행되기도 하였다. == 등장인물 == * 고바우 영감 이 만화의 사실상 주인공격인 캐릭터. 나이는 40에서 50대로 보였으나 점차 60대 이상으로 설정되었다는 설도 있다. 이 만화에서 유일하게 메인 캐릭터로 등장하며 정치사회를 풍자하고 신랄하게 비판하는 역할을 하는 캐릭터. --알고보면 50년 간 한 모습이었던 [[생 제르맹]]과 [[뱀파이어]]-- 김성환 화백이 18세(!!)에 고바우를 그리기 시작했으니 결국 그 청년이 고바우 영감 나이가 될 때 만화가 끝난 셈이다. * 그 외의 인물들 시대상에 따라 단역 캐릭터들이 나오기도 하였는데 실제 사건상황에 따라 대통령, 총리, 국회의원, 경제인, 사회인사 등이 번갈아 나오기도 하였다. [[북한]]과 관련해서 [[김일성]], [[김정일]] 부자도 나온 적이 있는 듯. == 여담 == [[네모바지 스폰지밥]]에서 출연하였다.[* 더빙만] [[https://www.youtube.com/watch?v=9NpSxfOHT7o|e지식채널]]에서 다룬적이 있다. 고바우 영감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