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바우 영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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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시사만화가 김성환 작가의 4컷짜리 시사 풍자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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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50년 주간지 만화신보에 첫 연재가 되었고 1955년부터 동아일보로 자리를 옮겨서 매일 연재되었다가 1980년 5월 14일부터 조선일보로 자리를 옮겨서 매일 연재하게 되었고 1992년부터 작가가 조선일보를 퇴사하여 문화일보로 자리를 옮겨서 연재되었다가 2000년 9월 29일을 끝으로 50년 만에 연재가 종료되었다.

대한민국 시사만화 중에서 1만 4139회 연재라는 최장 기록을 가지게 되었으며 스크린톤을 사용하지 않고[2] 만화 펜촉 그대로 매일 신문에 연재하게 되었던 4컷짜리 만화라는 점에서도 보듯 작가의 필력도 세월에 따라 변화된 적이 있기도 하였다.

초기에는 가정적이고 넌센스적으로 그려낸 풍자물이었으나 함께 연재되던 1컷만평을 대신하여 1950년대 후반 경무대 똥통 사건으로 사회적 탄압을 받고 1960년대 4.19 혁명5.16 군사정변기 등을 거치면서 점차 정치적 풍자물로 바뀌어갔으며 만화검열이 심했던 7-80년대를 거치면서는 정치사회를 비판하고 풍자하는 만화로 진화해가면서 그 당시 검열당국의 경고와 제재 등을 받은 적도 있었다. 심한 경우 말풍선 하나가 통째로 잘린다거나 아예 한 화 전체가 지워져서 나간 적도 있다. 몇몇 에피소드를 대충 봐도 이렇다.

  • 새로운 건물 디자인
1955년 11월 23일자. 11월 18일 서울신문 대구 지사에 자유당 높으신 분을 친척으로 둔 대구 주둔 부대 소속 육군 대령 최석대가 여러 부하들을 이끌고 난입해 자신의 아내가 구타당한 끝에 자살한 걸 보도한 게 엉터리라며 들이닥쳐 대구 지사시설을 파괴하고 기자를 구타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걸 본 고바우 영감이 신문사로 와서 새로운 신문사 건물 디자인을 만들었다며 그림을 보여준다. 그것은 신문사 건물을 대포로 중무장한 요새화한 그림이다.
  • 국가보안법 반대
1958년 12월 28일자. 당시 민주당(1955년)자유당국가보안법이란 이름으로 영구권력화를 한다면서 엉터리 보안법을 없애라는 시위를 벌였고 당연히 자유당은 빨갱이 드립으로 뭉개던 걸 풍자한 연재분. 야당 측에서 "보안법이 싫다"는 현수막을 들고 시위함에도 자유당은 보안법을 선포한다고 일갈. 야당이 "우리가 싫다고 하면 꼭 반대로 한다!"라고 화를 내는데 고바우 영감이 나타나서 "그럼, 이렇게 해보시게."라고 뭔가 말을 하는데 그 말을 들은 야당은 현수막으로 "돈두 싫다!"라고 외치자 자유당에선 돈다발을 내던진다. 돈 득템하셨습니다
  • 검열을 풍자한 만화
5.16 군사정변 이후 연재된 부분으로 고바우 영감이 내기바둑을 두는데 엿장수가 나타나 가위로 철컥철컥 소리를 내서 고바우 영감이 계속 지는 내용으로 당시 군부에서 검열을 비꼬는 것이냐고 입건하여 벌금형을 내렸다.
  • 어민들의 시름
한일 국교 정상화로 이승만 라인이 없어지면서 어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한 일이 있었다. 이 당시 그린 고바우영감에선 한 어민이 산에 가서 물고기 뼈다귀를 벼심듯 심는다. 고바우 영감이 대체 뭐하냐고 하자, 그 어민은 "이렇게 심으면 벼처럼 물고기가 자라지 않을까 싶어서요."
김성환 화백은 이걸로 또 경찰서에 불려나갔다고 한다. 벌금으로 얼마를 내다 바쳤는지도 모르겠다고 할 정도로 웃으며 회고할 정도였다.
  • 병역기피를 신랄하게 풍자한 만화도 있다. 1958년 3월 16일자
징집예정자 : "귀속에 비누물을 넣으면..."
고바우 영감 : "귀머거리는 안 되지."
징집예정자 : "회젓가락을 달구어 입에 넣어도..."
고바우 영감 : "벙어리가 되진 않아."
징집예정자 : "팔에다 못을 박아도..."
고바우 영감 : "곰배팔이(팔을 못 쓰는 사람)가 되진 않아."
징집예정자 : "나는 천생 나갈 팔자구나."
고바우 영감 : ('축 입대 기합술군'라는 걸개를 들고 축하해준다)
흠좀무한 것은, 실제로 이 때는 이런 수법을 쓰면서까지 군대 안 가려고 했던 사람들이 꽤 있었다는 사실이다. 6.25 전쟁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아 거지가 된 상이군인들의 처참한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고,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북한의 재남침 위협이 컸던 때였다. 게다가 당시 군납비리는 심각한 수준이어서, 짬밥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사병으로 군대를 가면 제대로 먹지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당시에는 복무규율도 제대로 정해져있지 않고, 일본군시절의 똥군기 잔재가 엄청나던 시절이라그건 지금도... 구타와 가혹행위가 수시로 벌어지던 때였다.[3] 이러니 입대에 대한 두려움이 워낙 커서 이렇게까지 했던 모양이다. 참고로 김성환 본인은 6.25 당시 입대하여 현역으로 실전을 겪으며 살아남았다.

검열은 제5공화국 시절인 80년대가 가장 극심하여 이때는 50년대 초처럼 내용 없는 만화로 돌아갔는데도 각종 의심, 검열, 방해를 받았다고 한다. 이렇게 풍자의 맛이 사라진 만화에 딴 사람이 그린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고.

다만 영향력이 하도 큰 지라 독재정권 하에서 여러번 잡혀가거나 벌금을 내어도 손찌검도 당하지 않고 불수면 고문도 없었다고 한다. 흠좀무. 되려 5일 뒤 석방되어 인지도만 높아졌는데, 화백은 작전 성공이었다고 회고했다. 역시 대인배 이승만 정권에서는 450의 저렴한 벌금으로 퉁친 적도 있는데 이때도 만화가 무슨 허위"보도"를 하느냐며 욕이나 더 먹었다고.

독자들에게는 정치사회를 풍자하고 신랄한 비판을 그려내었기 때문에 신문을 보는 입장에서는 답답한 기분을 날렸다거나 풍자적인 내용으로 인해서 재밌었다는 평가들이 오갔다. 자체 설문조사에서 신문을 볼 때 가장 먼저보는 기사로 고바우 영감이 꼽히는 일도 부지기수였다고.

연재가 종료된 2000년 11월에는 고바우 영감 연재 50주년 기념우표가 발행되기도 하였다.

2 등장인물

  • 고바우 영감

이 만화의 사실상 주인공격인 캐릭터. 나이는 40에서 50대로 보였으나 점차 60대 이상으로 설정되었다는 설도 있다. 이 만화에서 유일하게 메인 캐릭터로 등장하며 정치사회를 풍자하고 신랄하게 비판하는 역할을 하는 캐릭터. 알고보면 50년 간 한 모습이었던 생 제르맹뱀파이어 김성환 화백이 18세(!!)에 고바우를 그리기 시작했으니 결국 그 청년이 고바우 영감 나이가 될 때 만화가 끝난 셈이다.

  • 그 외의 인물들

시대상에 따라 단역 캐릭터들이 나오기도 하였는데 실제 사건상황에 따라 대통령, 총리, 국회의원, 경제인, 사회인사 등이 번갈아 나오기도 하였다. 북한과 관련해서 김일성, 김정일 부자도 나온 적이 있는 듯.

3 여담

네모바지 스폰지밥에서 출연하였다.[4]

e지식채널에서 다룬적이 있다.
  1. 왼쪽 만화의 마지막 컷의 한자는 '무전생존'이다. 錢 자 획이 왠지 많다.
  2. 1992년 문화일보로 옮긴 이후 연재 분량에서는 스크린톤을 간간히 쓴다.
  3. 흔히들 말하는 쌍팔년도 군대가 바로 이 시절을 가리키는 말이다. 1962년까지 한국은 서기가 아닌 단기를 사용했고, 4288년인 1955년 시절의 열악한 군대가 바로 이 시기이다.
  4. 더빙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