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한국사 관련 정보]] 權擥(1416~1465) [목차] == 소개 == [[조선]] 전기의 문신. 자는 정경(正卿)이고 호 소한당(所閑堂)이고[* 그의 사위 신승선도 호가 소한당이다.] 시호는 익평(翼平)이다. [[신숙주]], [[한명회]], [[정인지]]와 함께 [[세조(조선)|세조]]의 쿠데타 성공에 기여한 주요 인물. == 생애 == [[남이]]와 [[신승선]][* 연산군의 부인 폐왕비 신씨의 친정아버지이자, 중종의 첫 부인 [[단경왕후]]의 할아버지이다.]은 그의 사위[* 여섯째딸과 둘째딸의 남편]들이었다. 원래는 [[개국공신]] [[권근]]의 손자이자 [[세종대왕]]과 [[정인지]]를 가르친 대학자 [[권우]]의 조카손자였지만 아버지 권제가 술과 여자에 빠져 어머니와 형제들을 구타하자 이를 말리다가 본인도 폭행을 당했으며[* 가문의 흑역사라 권씨의 후손들은 이를 언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는 바람에...][* 여담으로 권람의 아버지 권제는 실록에서 '''머리는 좋은데 가장으로서의 노릇을 똑바로 못해서 세상사람들이 안좋게 본다'''고 대차게 까였다. 어지간히 안좋은 쪽으로 유명했던 모양.] 어머니를 버리자 가출하여 방랑하였다. 그뒤 [[한명회]]를 만나 같이 전국 유람을 하다가 권람은 과거를 봐서 장원급제하고 한명회는 또 과거에서 떨어져 음서로 들어갔다. 사실 이 장원급제는 문제가 있는데, 본래 권람의 성적은 4위였으나, 1위를 한 김의정이 수군[* 조선시대의 수군은 칠반천역(七般賤役)의 하나로 꼽힐 만큼 천한 계급으로 대우받았다.]의 아들이라 집안이 변변치 않다는 이유로 당시 왕인 문종의 명으로 4위인 권람을 장원으로 올려 준 것. 참고로 이 때 2위였다가 3위로 억울하게 강등당한 사람은 [[이시애의 난]] 때 살해당한 [[강효문]]. [[수양대군]]을 만나고 그뒤로 한명회을 추천하고 함께 쿠데타를 모의하게 된다. [[계유정난]]이 성공한 후에는 1등 정난공신에 오른다. 그후 세조가 즉위하자 벼슬이 우찬성과 좌찬성,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에 이르렀다. 세조의 각별한 총애를 받았고, 활을 잘 쏘고 문장에도 뛰어났으나 치부가 심해 여러 번 탄핵을 받았다. 세조 말년에 병을 이유로 관직에서 물러났고, 결국 1465년 병으로 죽었다. 어떤 사극에서는 임종 직전에 [[신숙주]]에게 '''[[한명회]]를 조심하게. 그놈은 천하를 몇번이고 뒤집을 놈일세.'''라고 경고한다. ~~같이 일해봤으니 자세히 파악한다.~~ 여담으로 사육신 사건 때 처형된 [[김문기]]의 며느리가 권람 덕택에 사실상 노비 신세를 면했다. 왜냐면 김문기의 며느리 영금은 '''권람의 오촌 조카였기 때문.''' 사육신 집안의 다른 여성들처럼 영금 역시 노비가 되었으나 이를 본 권람이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일부러 자신의 노비로 하사받았다고 한다. 공식적으로는 권람의 노비가 된 것이지만 실질적으로 따지고 보면 당숙의 빽으로 풀려나 보호받은 셈이다. 드라마 [[왕과 비]]에서는 [[김갑수]]가 연기하였다.--김갑수가 연기한 배역치곤 대단히 오래 살아남았다.-- 오래전 드라마였던 [[조선왕조 오백년]]에서는 놀랍게도 성우 [[박일]]이 연기했다. [[분류:조선/인물]] 권람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