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김(성씨)/목록]]. 본명이 김광일인 배우는 [[남포동]] 문서로. * [[정치인/목록]]. [[변호사/목록]] [include(틀:국내 정치인)] http://tv03.search.naver.net/thm?size=w120&quality=9&q=http://sstatic.naver.net/people/18/201502271724255441.jpg?width=150 金光一 1939년 9월 11일 ~ 2010년 5월 24일 [목차] == 개요 == [[대한민국]]의 법조인, [[정치인]]이다. 1939년 [[경상남도]] [[합천군]]에서 태어났다. [[경남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였다. 고등고시 사법과 15회에 합격하고 [[10월 유신|유신 정권]] 시절 대구지방법원 판사를 지내다가 반공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학생에게 무죄를 선고해 인사상 불이익을 받자 사표를 내고 [[부산광역시|부산직할시]]에서 [[변호사]]로 개업하였다. 변호사로 활동하면서도 1979년 [[부마민주항쟁]]에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1980년대 내내 부산지역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부림사건]],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 등 굶직한 시국사건때마다 학생운동가, 민주화운동가들을 변호하였다. 부산지역 재야민주화운동의 핵심인물로 [[노무현]], [[문재인]] 등과 함께 1987년 [[6월 항쟁]]에 참여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김영삼]]이 부산 재야의 대표격인 김광일 변호사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자신을 포함한 재야인사 3인 부산지역 공천'을 조건으로 해서 [[통일민주당]]에 입당하였다. 이때 김영삼에게 추천한 재야인사가 [[노무현]]과 [[문재인]]인데 노무현은 제안을 받아들여서 통일민주당에 입당해서 총선에 출마하였고, 문재인은 거절하고 변호사로 남았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부산직할시 [[중구(부산)|중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0년 [[3당 합당]] 때 김영삼을 따라가지 않고 [[민주당(1990년)|꼬마민주당]]에 남았다. 꼬마민주당이 [[평화민주당|신민주연합당]]과 합당하여 [[민주당(1991년)|민주당]]이 되자 거기에 따라가지 않고 1992년 [[정주영]]의 [[통일국민당]]에 입당하였다.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자유당]] [[정상천]] 후보에게 밀려 낙선하였다. 문민정부가 출범하자 김영삼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서 [[대통령비서실|대통령 비서실장]]과 초대 [[국민권익위원회|국민고충처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2000년)|민주국민당]] 후보로 [[부산광역시]] [[서구(부산)|서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정문화]]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영화 [[변호인(영화)|변호인]]의 배역 김상필이 김광일을 모티브로 한 것이라고 한다. == 선거이력 ==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 연도 || 선거종류 || 소속정당 || 득표수(득표율) || 당선여부 || 비고 || || 1988 ||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직할시 [[중구(부산)|중구]]) || [[통일민주당]] || - || '''당선''' || || || 1992 ||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직할시 [[중구(부산)|중구]]) || [[통일국민당]] || - || 낙선 || || || 2000 ||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광역시 서구) || [[민주국민당(2000년)|민주국민당]] || - || 낙선 || ||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동명이인]][[분류:대한민국의 법조인]][[분류:경상남도 출신 인물]]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국내 정치인 (원본 보기) 김광일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