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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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光一
1939년 9월 11일 ~ 2010년 5월 24일

1 개요

대한민국의 법조인, 정치인이다.

1939년 경상남도 합천군에서 태어났다. 경남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였다.

고등고시 사법과 15회에 합격하고 유신 정권 시절 대구지방법원 판사를 지내다가 반공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학생에게 무죄를 선고해 인사상 불이익을 받자 사표를 내고 부산직할시에서 변호사로 개업하였다. 변호사로 활동하면서도 1979년 부마민주항쟁에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1980년대 내내 부산지역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부림사건,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 등 굶직한 시국사건때마다 학생운동가, 민주화운동가들을 변호하였다. 부산지역 재야민주화운동의 핵심인물로 노무현, 문재인 등과 함께 1987년 6월 항쟁에 참여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김영삼이 부산 재야의 대표격인 김광일 변호사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자신을 포함한 재야인사 3인 부산지역 공천'을 조건으로 해서 통일민주당에 입당하였다. 이때 김영삼에게 추천한 재야인사가 노무현문재인인데 노무현은 제안을 받아들여서 통일민주당에 입당해서 총선에 출마하였고, 문재인은 거절하고 변호사로 남았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부산직할시 중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0년 3당 합당 때 김영삼을 따라가지 않고 꼬마민주당에 남았다. 꼬마민주당이 신민주연합당과 합당하여 민주당이 되자 거기에 따라가지 않고 1992년 정주영통일국민당에 입당하였다.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자유당 정상천 후보에게 밀려 낙선하였다.

문민정부가 출범하자 김영삼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서 대통령 비서실장과 초대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부산광역시 서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정문화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영화 변호인의 배역 김상필이 김광일을 모티브로 한 것이라고 한다.

2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선거종류소속정당득표수(득표율)당선여부비고
1988제13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직할시 중구)통일민주당-당선
1992제14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직할시 중구)통일국민당-낙선
2000제16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광역시 서구)민주국민당-낙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