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前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는 [[김남기(프로게이머)]] 항목으로. [[분류:동명이인]] [목차] * [[농구 관련 인물(한국)]] http://image.newsis.com/2011/01/16/NISI20110116_0003938821_web.jpg || 이름 || 김남기 || || 생년월일 || [[1960년]] [[9월 5일]] || || 국적 || [[대한민국]] || || 출신학교 || 신일고 - [[연세대학교|연세대]] || || 포지션 || 가드 || || 신체사이즈 || 178Cm, 80Kg || || 실업입단 || 1985년 기업은행 농구단 입단 || || 소속팀 || 기업은행 (1985~1989) || || 지도자 || 기업은행 코치 (1994~1996) [br]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코치 (1996) [br] [[부산 kt 소닉붐|광주 나산 플라망스]] 코치 (1997) [br] [[연세대학교]] 코치 (1999~2001) [br] [[연세대학교]] 감독 (2002~2005) [br]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감독 (2008~2009) [br]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대구 오리온스]] 감독 (2009~2011) [br] [[명지대학교]] 감독 (2014~) || === 선수 시절 === 신일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학교]] 1학년이던 1979년에 늑막염에 걸려 농구를 쉬었다가 복귀했고, 3학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하는 등 연대 시절에 우여곡절이 많았다. 가드로서 쏠쏠한 활약을 펼치면서 연세대의 주전 가드로 활약했지만, 상대적으로 작은 키 때문에 실업 무대에서 주전으로 뛰지는 못했다. 기업은행에 입단했지만, 오래 뛰지 못하고 1989년에 은퇴했다. === 지도자 시절 === 그 뒤 1994년에 기업은행의 코치로 농구계에 컴백하여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남자 농구 국가대표팀 코치가 되었지만, 올림픽 도중 음주 파동에 휘말리면서 [[최인선]] 당시 대표팀 감독 등과 함께 3개월 간 지도자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다. 그 뒤 기업은행 농구 팀이 나산그룹에 인수되어 프로화될 때 [[황유하]] 감독과 함께 코치진으로 합류했지만, 1997-1998 시즌 도중 [[황유하]] 감독과의 갈등으로 인해 1997년 12월 11일 코치직에서 해임되었다. 이후 KBS에서 잠시 농구 해설위원으로 있다가 모교인 [[연세대학교]] 농구부 코치로 1999년에 부임했고, 2002년부터 [[최희암]]의 후임으로 [[연세대학교]] 농구부 감독에 임명되었다. 감독 재임 당시 [[방성윤]], [[이정석]]같은 선수들을 바탕으로 아마농구 무대를 평정하면서 대학 무대를 휩쓸었다. 그러다가 2005년에 사임했다. [[연세대학교]]와의 갈등 때문이라는 설도 있고, 그냥 쉬고 싶다는 설도 있지만 확인된 바는 없다. 한동안 [[해설자|해설위원]] 및 [[중국]] 농구 무대에서 총감독으로 있다가 2008년 농구 국가대표팀 전임 감독 선발 당시 응모해서 전임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남자 농구 세계 예선전에서 제법 괜찮은 경기력을 보여 주면서 기대를 가지게 했지만, 연봉 자체가 적었던 상황에서 결국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오리온스]]의 제안을 받고 [[김유택]] 코치와 함께 이동하게 된다.(아내의 암 수술 때문에 목돈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2009-10 시즌 및 2010-11 시즌에 딱히 나쁘지 않은 경기력을 보여 주기는 했지만 6강은커녕 2년 연속 최하위에 그친 바람에 오히려 오리온스 팬들에게 "'''돌남기'''"로 까였고, 여기에 [[김승현(농구선수)|김승현]] 문제 및 오리온스의 막장 경영이 겹치면서 결국 3년 계약이 중도에 2년으로 축소되는 등 풍파 끝에 2010-2011 시즌 후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으며 [[추일승]]에게 감독직을 넘겼다. 그가 물러나고 몇 개월 뒤 오리온스는 [[대구광역시]]를 버리고 [[고양시]]로 [[야반도주]]했다. 참고로 오리온스 감독 시절 경기를 보면 10점차 이상으로 진 경기가 15경기가 안 된다. 전반까지 크게 앞서다 후반에 가면 알아서 자멸했기 때문에 후반은 항상 똥줄 농구였다. 베테랑이 없어서라는 지적이 나오는데, [[김승현(농구선수)|김승현]]이 있었다면 달랐을 가능성이 높다. 이면계약 등 선수관리를 제대로 못한 오리온스 [[프런트]]가 원망스러워지는 대목. 이후 [[KBS N 스포츠]]의 농구 해설위원으로 재직하다가, 2014년 3월 1일부터 박상관 감독의 후임으로 [[명지대학교]] 농구부 감독을 맡게 되었다. [각주] 김남기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