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前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는 김남기(프로게이머) 항목으로.
이름 | 김남기 |
생년월일 | 1960년 9월 5일 |
국적 | 대한민국 |
출신학교 | 신일고 - 연세대 |
포지션 | 가드 |
신체사이즈 | 178Cm, 80Kg |
실업입단 | 1985년 기업은행 농구단 입단 |
소속팀 | 기업은행 (1985~1989) |
지도자 | 기업은행 코치 (1994~1996)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코치 (1996) 광주 나산 플라망스 코치 (1997) 연세대학교 코치 (1999~2001) 연세대학교 감독 (2002~2005)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감독 (2008~2009) 대구 오리온스 감독 (2009~2011) 명지대학교 감독 (2014~) |
1 선수 시절
신일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학교 1학년이던 1979년에 늑막염에 걸려 농구를 쉬었다가 복귀했고, 3학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하는 등 연대 시절에 우여곡절이 많았다. 가드로서 쏠쏠한 활약을 펼치면서 연세대의 주전 가드로 활약했지만, 상대적으로 작은 키 때문에 실업 무대에서 주전으로 뛰지는 못했다. 기업은행에 입단했지만, 오래 뛰지 못하고 1989년에 은퇴했다.
2 지도자 시절
그 뒤 1994년에 기업은행의 코치로 농구계에 컴백하여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남자 농구 국가대표팀 코치가 되었지만, 올림픽 도중 음주 파동에 휘말리면서 최인선 당시 대표팀 감독 등과 함께 3개월 간 지도자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다.
그 뒤 기업은행 농구 팀이 나산그룹에 인수되어 프로화될 때 황유하 감독과 함께 코치진으로 합류했지만, 1997-1998 시즌 도중 황유하 감독과의 갈등으로 인해 1997년 12월 11일 코치직에서 해임되었다.
이후 KBS에서 잠시 농구 해설위원으로 있다가 모교인 연세대학교 농구부 코치로 1999년에 부임했고, 2002년부터 최희암의 후임으로 연세대학교 농구부 감독에 임명되었다. 감독 재임 당시 방성윤, 이정석같은 선수들을 바탕으로 아마농구 무대를 평정하면서 대학 무대를 휩쓸었다. 그러다가 2005년에 사임했다. 연세대학교와의 갈등 때문이라는 설도 있고, 그냥 쉬고 싶다는 설도 있지만 확인된 바는 없다.
한동안 해설위원 및 중국 농구 무대에서 총감독으로 있다가 2008년 농구 국가대표팀 전임 감독 선발 당시 응모해서 전임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남자 농구 세계 예선전에서 제법 괜찮은 경기력을 보여 주면서 기대를 가지게 했지만, 연봉 자체가 적었던 상황에서 결국 오리온스의 제안을 받고 김유택 코치와 함께 이동하게 된다.(아내의 암 수술 때문에 목돈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2009-10 시즌 및 2010-11 시즌에 딱히 나쁘지 않은 경기력을 보여 주기는 했지만 6강은커녕 2년 연속 최하위에 그친 바람에 오히려 오리온스 팬들에게 "돌남기"로 까였고, 여기에 김승현 문제 및 오리온스의 막장 경영이 겹치면서 결국 3년 계약이 중도에 2년으로 축소되는 등 풍파 끝에 2010-2011 시즌 후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으며 추일승에게 감독직을 넘겼다. 그가 물러나고 몇 개월 뒤 오리온스는 대구광역시를 버리고 고양시로 야반도주했다.
참고로 오리온스 감독 시절 경기를 보면 10점차 이상으로 진 경기가 15경기가 안 된다. 전반까지 크게 앞서다 후반에 가면 알아서 자멸했기 때문에 후반은 항상 똥줄 농구였다. 베테랑이 없어서라는 지적이 나오는데, 김승현이 있었다면 달랐을 가능성이 높다. 이면계약 등 선수관리를 제대로 못한 오리온스 프런트가 원망스러워지는 대목.
이후 KBS N 스포츠의 농구 해설위원으로 재직하다가, 2014년 3월 1일부터 박상관 감독의 후임으로 명지대학교 농구부 감독을 맡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