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야구 관련 인물(KBO)]] [[분류:야구선수]] [[분류:1982년 출생]] [[분류:타자]] [[분류:내야수]] [[분류:우투우타]] ||||<#333366><:> {{{#ffffff 경찰 야구단 No.70}}} || ||||<#ff3333><:> {{{#ffffff 김동건(金東建)}}} || ||<:> '''생년월일''' || [[1982년]] [[3월 7일]] || ||<:> '''학력''' || 서울성동초-잠신중-[[춘천고등학교 야구부|춘천고]] || ||<:> '''포지션''' || [[유격수]] || ||<:> '''투타''' || 우투우타 || ||<:> '''프로입단''' || 2001년 2차지명 1라운드 [BR] (전체 3순위, [[SK 와이번스|SK]]) || ||<:> '''소속팀''' || [[SK 와이번스]] (2001~2009) [br] [[NC 다이노스]] (2012~2013) || ||<:> '''지도자''' || [[경찰 야구단]] 수비코치 (2014~) || |||||||||||| '''[[NC 다이노스]] 등번호 6번(2012~2013)''' || || 팀 창단 || → || '''김동건'''(2012~2013) || → || [[강민국]](2014~) || ||<:><tablewidth=100%><-12><#315288> '''{{{#ffffff NC 다이노스 역대 주장}}}''' || ||<:><width=30%><#AF917B> '''{{{#00275a 김동건}}}'''[BR]'''{{{#00275a (2012) }}}''' ||<:> {{{+1 →}}} ||<:><width=30%> [[이호준]] [br] (2013~2014) || [목차] == 소개 == 前 [[NC 다이노스]] 소속의 야구 선수 및 초대 주장. 現 [[경찰 야구단]] 수비코치. == 아마추어 선수 경력 == [[춘천고등학교 야구부|춘천고등학교]] 시절 청소년 대표로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열렸던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맛본 선수다. 당시 내야수 중에서 가장 촉망받는 유망주 중 한 선수였다. == 프로 선수 경력 == === SK 와이번스 === http://www.sksports.net/Common/Attach/WyvernsPhoto/20010611/Thumbnail/Large_2001061123141775996_150.jpg 창단 특례로 2차 1번 지명을 선수 3명에게 할 수 있었던 [[SK 와이번스]]가 2차 1순위에서 [[김희걸]], [[조형식]]과 함께 그를 지명했다. 그러나 '''이 선택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상 최악의 선택 중 하나'''라고 평가할 수 있는데[* 다만, 이 선택을 제외하면, 나머지 선택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 이 때 뽑은 선수들이 [[김강민]], [[채병용]], [[박재상]]이고, 이후 트레이드로 SK를 떠났지만 [[박준서]]와 [[조중근]]도 이 때 SK가 지명한 선수들이다. 그런데 제일 중요한 2차 1순위를 망쳤으니(...)], [[김건한|김희걸]], 조형식, 김동건이 불려나간 다음에 [[롯데 자이언츠]]가 2차 1순위로 지명한 선수는 '''[[이대호|시애틀에 있는 조선의 4번 타자]]다.'''[* [[이대호]]가 1차 지명이 되지 못한 이유는 [[추신수|메이저리그에 있는 어느 한국인 타자]]에게 1차 지명권을 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롯데 자이언츠]]가 [[추신수]]의 계약에 실패하여 지명권을 날리면서, 사실상 [[이대호]]가 선순위로 지명받아 롯데에 입단하게 된다.][* 근데 이때 [[이대호]]는 당시 고졸 선수 중에 못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김동건은 청대 주전 유격수라는 점이었다.~~뭐 [[이대호]]가 SK 와서 타자 전향해서 잘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2007년 [[추신수]]는 해외파 우선지명에 [[SK 와이번스]]가 지명하면서 3명은 묘한 인연이 생겼다.~~그런데 [[추신수]]는 [[광저우]]에서 군 면제 받고 왔다는 것~~] 결론적으로 김동건은 [[SK 와이번스]]에서 망했다. 유격수 자리가 공백에 가까웠던 [[SK 와이번스]]에서 끝내 유격수 주전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것에서 그의 발전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다. 정체된 발전으로 인해 백업의 백업으로 밀렸고, 결국 2009년 시즌 후 SK에서 방출되었다. === NC 다이노스 === 한동안 야구와 인연을 맺지 못하다가[* 그 사이 2011년 야구 영화의 붐이 일었을 때, "글러브"나 "완득이"의 야구 영화에서 야구 지도를 하기는 했다.] [[NC 다이노스]] 창단 트라이아웃에 합격하며 극적으로 다시 프로 생활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2012년 7월 이후 부상으로 경기 출전을 하지 못했고 2013년 시즌을 앞두고 실시하는 해외 전지훈련에서도 제외되었다. 2013 시즌에는 초반에 잠시 출전하다가, 주장 자리를 [[이호준]]에게 넘기고 2군으로 내려간 상황. 결국 다시 1군으로 올라오지 못했고 시즌 종료 후 NC에서 방출당했다. 팀의 창단 첫 백투백 홈런을 친 선수라는 기록을 남긴 채.(4월 5일 vs[[삼성 라이온즈]]전 9회 [[허준(1981)|허준]] - 김동건) == 지도자 경력 == 방출된 후 [[경찰 야구단]] 코치를 맡게 되었다. 김동건(야구)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