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야구단 No.70 | |
김동건(金東建) | |
생년월일 | 1982년 3월 7일 |
학력 | 서울성동초-잠신중-춘천고 |
포지션 | 유격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2001년 2차지명 1라운드 (전체 3순위, SK) |
소속팀 | SK 와이번스 (2001~2009) NC 다이노스 (2012~2013) |
지도자 | 경찰 야구단 수비코치 (2014~) |
NC 다이노스 등번호 6번(2012~2013) | |||||
팀 창단 | → | 김동건(2012~2013) | → | 강민국(2014~) |
NC 다이노스 역대 주장 | |||||||||||
김동건 (2012) | → | 이호준 (2013~2014) |
1 소개
前 NC 다이노스 소속의 야구 선수 및 초대 주장. 現 경찰 야구단 수비코치.
2 아마추어 선수 경력
춘천고등학교 시절 청소년 대표로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열렸던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맛본 선수다. 당시 내야수 중에서 가장 촉망받는 유망주 중 한 선수였다.
3 프로 선수 경력
3.1 SK 와이번스
창단 특례로 2차 1번 지명을 선수 3명에게 할 수 있었던 SK 와이번스가 2차 1순위에서 김희걸, 조형식과 함께 그를 지명했다. 그러나 이 선택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상 최악의 선택 중 하나라고 평가할 수 있는데[1], 김희걸, 조형식, 김동건이 불려나간 다음에 롯데 자이언츠가 2차 1순위로 지명한 선수는 시애틀에 있는 조선의 4번 타자다.[2][3][4]
결론적으로 김동건은 SK 와이번스에서 망했다. 유격수 자리가 공백에 가까웠던 SK 와이번스에서 끝내 유격수 주전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것에서 그의 발전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다. 정체된 발전으로 인해 백업의 백업으로 밀렸고, 결국 2009년 시즌 후 SK에서 방출되었다.
3.2 NC 다이노스
한동안 야구와 인연을 맺지 못하다가[5] NC 다이노스 창단 트라이아웃에 합격하며 극적으로 다시 프로 생활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2012년 7월 이후 부상으로 경기 출전을 하지 못했고 2013년 시즌을 앞두고 실시하는 해외 전지훈련에서도 제외되었다. 2013 시즌에는 초반에 잠시 출전하다가, 주장 자리를 이호준에게 넘기고 2군으로 내려간 상황. 결국 다시 1군으로 올라오지 못했고 시즌 종료 후 NC에서 방출당했다. 팀의 창단 첫 백투백 홈런을 친 선수라는 기록을 남긴 채.(4월 5일 vs삼성 라이온즈전 9회 허준 - 김동건)
4 지도자 경력
방출된 후 경찰 야구단 코치를 맡게 되었다.- ↑ 다만, 이 선택을 제외하면, 나머지 선택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 이 때 뽑은 선수들이 김강민, 채병용, 박재상이고, 이후 트레이드로 SK를 떠났지만 박준서와 조중근도 이 때 SK가 지명한 선수들이다. 그런데 제일 중요한 2차 1순위를 망쳤으니(...)
- ↑ 이대호가 1차 지명이 되지 못한 이유는 메이저리그에 있는 어느 한국인 타자에게 1차 지명권을 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롯데 자이언츠가 추신수의 계약에 실패하여 지명권을 날리면서, 사실상 이대호가 선순위로 지명받아 롯데에 입단하게 된다.
- ↑ 근데 이때 이대호는 당시 고졸 선수 중에 못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김동건은 청대 주전 유격수라는 점이었다.~~뭐 이대호가 SK 와서 타자 전향해서 잘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 ↑ 그리고 2007년 추신수는 해외파 우선지명에 SK 와이번스가 지명하면서 3명은 묘한 인연이 생겼다.
그런데 추신수는 광저우에서 군 면제 받고 왔다는 것 - ↑ 그 사이 2011년 야구 영화의 붐이 일었을 때, "글러브"나 "완득이"의 야구 영화에서 야구 지도를 하기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