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작가/목록]] [[파일:/image/020/2013/02/07/52875942.2_59_20130207040802.jpg|width=150]] 金永郎 1903~1950 대한민국의 [[시인]]이다. 본관은 김해. 본명은 [[김윤식]](金允植). 1903년 [[전라남도]] [[강진군]]에서 태어났다. 1917년 [[휘문고등학교|휘문의숙]]에 입학하였다. 1920년 일본의 아오야마 학원 중학부를 거쳐 아오야마 학원 영문학과에서 수학했으나, 1923년 [[관동 대지진]]으로 인해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했다. 유학 중에는 무정부주의 혁명가인 박열과 교류했고, 괴테, 키츠 등의 외국 문학에 깊이 심취했다. 1930년 [[정지용]]과 함께 박용철이 주재하던 <시문학> 동인으로 참여했다.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끝까지 거부한 지조있는 시인이었다. 1949년 공보처 출판국장 등을 지내며 우익보수주의자의 입장에서 정치에 참여했고, 비교적 여유있는 삶을 살다가 1950년 9월 28일 서울 수복 때 유탄에 맞아 사망했다. 대표적 작품으로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내 마음을 아실 이> 등이 있다. 주로 언어의 조탁을 통해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발굴하고 세련된 시형과 율격으로 섬세하고 투명한 감성의 세계를 고운 어조로 표현했다. 전라남도 강진군에서 시인이 살았던 영랑생가를 관리하고 있다. [[분류:시인]] [include(틀:문서 가져옴,title=김영랑,version=3)]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문서 가져옴 (원본 보기) 김영랑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