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永郎
1903~1950
대한민국의 시인이다. 본관은 김해. 본명은 김윤식(金允植).
1903년 전라남도 강진군에서 태어났다. 1917년 휘문의숙에 입학하였다. 1920년 일본의 아오야마 학원 중학부를 거쳐 아오야마 학원 영문학과에서 수학했으나, 1923년 관동 대지진으로 인해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했다. 유학 중에는 무정부주의 혁명가인 박열과 교류했고, 괴테, 키츠 등의 외국 문학에 깊이 심취했다.
1930년 정지용과 함께 박용철이 주재하던 <시문학> 동인으로 참여했다.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끝까지 거부한 지조있는 시인이었다.
1949년 공보처 출판국장 등을 지내며 우익보수주의자의 입장에서 정치에 참여했고, 비교적 여유있는 삶을 살다가 1950년 9월 28일 서울 수복 때 유탄에 맞아 사망했다.
대표적 작품으로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내 마음을 아실 이> 등이 있다. 주로 언어의 조탁을 통해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발굴하고 세련된 시형과 율격으로 섬세하고 투명한 감성의 세계를 고운 어조로 표현했다.
전라남도 강진군에서 시인이 살았던 영랑생가를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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