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대한민국 최초의 야구 전문 [[캐스터]]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스포츠 전문 캐스터로 널리 알려진 [[한명재|어느 킹카]]나 [[임용수|3루를 유독 좋아하는 바리톤]]이나 [[권성욱|넘어가는 쪽의 담장을 연호하는 분]], [[정우영(아나운서)|스페인 족발(...) 창시자]], [[이기호(아나운서)|쭉쭉신]] 등이 있기 전에 이분이 오늘날 야구 중계 캐스터들의 활동 기반을 만들었다고 보면 된다. [[유수호(1947)|유수호]], 이장우, 양진수, 고창근, [[임주완]] 등과 더불어 [[KBO 리그]] 초창기 시절을 대표하는 캐스터[* 이 중에서 유수호와 이장우는 [[동양방송]]에서 출발해 [[KBS]]에서 맹활약한다.]이자 MBC 스포츠를 상징하는 목소리로 유명했다. 이분과 주로 호흡을 맞췄던 야구해설위원으로는 이호헌 씨[* [[이용일]] 씨와 더불어 [[KBO 리그]] 탄생의 산파 역할을 한 원로 야구인. 그 전에도 야구 해설을 많이 한 것으로 유명하다. [[KBO]] 초대 사무차장을 지냈고 [[허구연]]이 청보 감독으로 자리를 비웠을 때 MBC 야구 해설위원을 했다. 2012년 지병으로 인해 향년 81세로 별세했다.], [[배성서]] 전 감독[* 1982년 [[KBO 리그]] 원년 개막전 중계 때 해설위원으로 나오는 목소리가 이 분의 목소리.], 그리고 '''[[허구연]] 위원'''[* 대표적으로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결승전과 [[1984년 한국시리즈]] 당시 중계를 같이 했다.]이 있다. 이분이 마이크를 잡았던 경기 중에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경기가 한 두 개가 아니다. 대표적으로 꼽자면 [[김재박]]의 개구리 번트와 [[한대화]]의 결승 홈런으로 유명한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결승전'''과 [[이종도]]의 끝내기 만루홈런이 터졌던 '''1982년 [[KBO 리그]] 원년 개막전''', [[최동원]]의 투혼과 [[유두열]]의 역전 홈런으로 빛났던 '''[[1984년 한국시리즈]]''' 등이다.[* [[MBC 스포츠플러스]]에서 가끔 창고 대방출 식으로 방영하는 옛날 야구 중계 화면 속 캐스터 멘트를 보면 대부분 이 분의 목소리다.] 심지어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빛나던 순간인 '''[[1988 서울 올림픽]] 개막식''' 중계 캐스터도 맡았다. [[ㅎㄷㄷ]] 현역 캐스터로 뛰던 시절에는 특유의 까랑까랑한 목소리와 현장의 분위기를 제대로 전달하는 역동적 멘트 덕에 그의 중계방송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1962년 [[KBS]] 아나운서로 방송 활동을 시작했던 그는 1969년 [[MBC]]가 TV 채널을 개국하면서 MBC로 이적했다. 이후 MBC 아나운서와 방송위원으로 일하면서 다양한 활동을 했다. 1989년 현역에서 은퇴하기 전까지 전국을 돌며 프로야구 중계를 했다. 현역 은퇴 이후에는 [[안동문화방송]] 사장과 [[MBC]] 아카데미 고문 등을 역임했고 후임 스포츠 캐스터 양성에도 힘을 썼다. 김용 캐스터의 가장 큰 업적이라면 당시 야구중계의 고질적 병폐로 남아있던 '외래어식 야구 용어'를 우리말로 순화한 것에 있다.[* 동시대에 활약한 [[유수호(1947)|유수호]] 아나운서의 경우 영어식 용어를 자주 쓴 것을 볼 수 있다. 누상에 주자가 2루와 3루에 진루한 상황에서 타자가 2루수 키를 넘기는 우익수 방면 안타를 쳤을 상황의 멘트가 대략 이렇다. "(딱!) 쳤습니다. [[2루수|세칸]] 오바~ [[우익수|라이트]] 방면 [[안타]]입니다~ 써드런너 홈인, 세칸런너 써드까지. 볼 [[2루수|세칸]]까지 옵니다."][* [[김성근]] 감독이 [[동양방송]]에서 고교야구 해설위원을 하던 시절 [[해고|방송국에서 잘린]] 사유도 외래어 용어를 중계 도중 남발한다는 이유였다. 게다가 그가 뱉은 단어는 영어도 아니고 [[일본어]]였다고(...) 한다. 예를 들어 "좀전에 공이요? 인코스(몸쪽)로 '''잇빠이'''(꽉 차게) 들어왔어요!"(...)] 그는 '피처'를 '투수'로, '베이스 온 볼스'를 '볼넷'으로, '데드 볼'을 '몸에 맞는 볼'로, ‘라이너(일명 '라이나')'를 ‘직선타구’로 고치는 등 외래어 일색인 야구 용어를 우리말로 순화하는데 앞장섰다. 은퇴 후 고령이던 모친의 병 수발을 하다가 2002년 본인도 뇌졸중으로 쓰러져 오랫동안 투병생활을 했고 2010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향년 69세. 김용(아나운서)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