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아나운서)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대한민국 최초의 야구 전문 캐스터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스포츠 전문 캐스터로 널리 알려진 어느 킹카3루를 유독 좋아하는 바리톤이나 넘어가는 쪽의 담장을 연호하는 분, 스페인 족발(...) 창시자, 쭉쭉신 등이 있기 전에 이분이 오늘날 야구 중계 캐스터들의 활동 기반을 만들었다고 보면 된다.

유수호, 이장우, 양진수, 고창근, 임주완 등과 더불어 KBO 리그 초창기 시절을 대표하는 캐스터[1]이자 MBC 스포츠를 상징하는 목소리로 유명했다. 이분과 주로 호흡을 맞췄던 야구해설위원으로는 이호헌 씨[2], 배성서 전 감독[3], 그리고 허구연 위원[4]이 있다.

이분이 마이크를 잡았던 경기 중에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경기가 한 두 개가 아니다. 대표적으로 꼽자면 김재박의 개구리 번트와 한대화의 결승 홈런으로 유명한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결승전이종도의 끝내기 만루홈런이 터졌던 1982년 KBO 리그 원년 개막전, 최동원의 투혼과 유두열의 역전 홈런으로 빛났던 1984년 한국시리즈 등이다.[5] 심지어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빛나던 순간인 1988 서울 올림픽 개막식 중계 캐스터도 맡았다. ㅎㄷㄷ

현역 캐스터로 뛰던 시절에는 특유의 까랑까랑한 목소리와 현장의 분위기를 제대로 전달하는 역동적 멘트 덕에 그의 중계방송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1962년 KBS 아나운서로 방송 활동을 시작했던 그는 1969년 MBC가 TV 채널을 개국하면서 MBC로 이적했다. 이후 MBC 아나운서와 방송위원으로 일하면서 다양한 활동을 했다. 1989년 현역에서 은퇴하기 전까지 전국을 돌며 프로야구 중계를 했다. 현역 은퇴 이후에는 안동문화방송 사장과 MBC 아카데미 고문 등을 역임했고 후임 스포츠 캐스터 양성에도 힘을 썼다.

김용 캐스터의 가장 큰 업적이라면 당시 야구중계의 고질적 병폐로 남아있던 '외래어식 야구 용어'를 우리말로 순화한 것에 있다.[6][7] 그는 '피처'를 '투수'로, '베이스 온 볼스'를 '볼넷'으로, '데드 볼'을 '몸에 맞는 볼'로, ‘라이너(일명 '라이나')'를 ‘직선타구’로 고치는 등 외래어 일색인 야구 용어를 우리말로 순화하는데 앞장섰다.

은퇴 후 고령이던 모친의 병 수발을 하다가 2002년 본인도 뇌졸중으로 쓰러져 오랫동안 투병생활을 했고 2010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향년 69세.
  1. 이 중에서 유수호와 이장우는 동양방송에서 출발해 KBS에서 맹활약한다.
  2. 이용일 씨와 더불어 KBO 리그 탄생의 산파 역할을 한 원로 야구인. 그 전에도 야구 해설을 많이 한 것으로 유명하다. KBO 초대 사무차장을 지냈고 허구연이 청보 감독으로 자리를 비웠을 때 MBC 야구 해설위원을 했다. 2012년 지병으로 인해 향년 81세로 별세했다.
  3. 1982년 KBO 리그 원년 개막전 중계 때 해설위원으로 나오는 목소리가 이 분의 목소리.
  4. 대표적으로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결승전과 1984년 한국시리즈 당시 중계를 같이 했다.
  5. MBC 스포츠플러스에서 가끔 창고 대방출 식으로 방영하는 옛날 야구 중계 화면 속 캐스터 멘트를 보면 대부분 이 분의 목소리다.
  6. 동시대에 활약한 유수호 아나운서의 경우 영어식 용어를 자주 쓴 것을 볼 수 있다. 누상에 주자가 2루와 3루에 진루한 상황에서 타자가 2루수 키를 넘기는 우익수 방면 안타를 쳤을 상황의 멘트가 대략 이렇다. "(딱!) 쳤습니다. 세칸 오바~ 라이트 방면 안타입니다~ 써드런너 홈인, 세칸런너 써드까지. 볼 세칸까지 옵니다."
  7. 김성근 감독이 동양방송에서 고교야구 해설위원을 하던 시절 방송국에서 잘린 사유도 외래어 용어를 중계 도중 남발한다는 이유였다. 게다가 그가 뱉은 단어는 영어도 아니고 일본어였다고(...) 한다. 예를 들어 "좀전에 공이요? 인코스(몸쪽)로 잇빠이(꽉 차게) 들어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