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https://fbcdn-sphotos-d-a.akamaihd.net/hphotos-ak-prn2/t31.0-8/1799877_480274585431881_874244170_o.jpg?width=300 [[1995년]] 당시 [[파일:/image/213/2014/01/22/20140122_1390371676_35135500_1_59_20140122155709.jpg|width=300]] [[2014년]] 이렇게 바뀌었다.. ~~[[윤상(가수)|윤상]] : 자전거를 타는데도 왜 저러냐고...~~[* [[1996년]] 5집 <일생을> 활동 때부터 서서히 살이 찌기 시작했지만 현재는 살이 빠진 상태. 판정단으로 출연 중인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복면가왕]]을 보면 알 수 있다.][* [[윤상(가수)|윤상]]과 김현철은 꽤 오래 된 절친이다. 사실 호적상 [[윤상(가수)|윤상]]이 나이가 한 살 더 많지만 나이와 상관없이 막역히 지내 현재도 그 끈끈한 우정을 유지하고 있다.] [목차] == 기본 정보 == 출생 [[1969년]] [[6월 14일]] 학력 [[홍익대학교]] 전기제어공학과 신체 173cm, 70kg, [[B형]] 직업 [[가수]], [[싱어송라이터]] 데뷔 [[1989년]] '춘천가는 기차' == 개요 == '''시대를 초월한 세련미와 음악성으로 1990년대를 풍미한 싱어송라이터''' '''20세의 나이로 최고의 [[싱어송라이터]]가 된 가수''' '''퓨전재즈와 R&B를 접목시켜 천재성을 인정받은 싱어송라이터''' [[대한민국]]의 대중음악 [[가수]], DJ, MC. [[1969년]] [[6월 14일]] 생으로, [[홍익대학교]] 전기제어공학과를 졸업했다. == 어린 시절 == 1남 1녀 중 [[외동아들|첫째]]로, [[아버지]]가 --[[김영삼|대통령]]-- [[사우디아라비아]] 건설 현장에서 자금 담당으로 근무하게 되어 온 가족이 [[사우디아라비아]]로 이주하여, 초등학생 시절의 대부분을 [[사우디아라비아]] 현지에서 보냈다. 정확히는 2학년부터 6학년까지 5년간 체류했다고 한다. 귀국 후 서울 청담초등학교에서 학교 생활을 계속했다. 당시 [[음악]] 말고도 [[축구]]를 유별나게 좋아해 일화가 몇 가지 있다. 뚱뚱해서 축구 시합에 끼지 못했던 친구를 두고 "괜찮아. 얘는 [[골키퍼]]를 보면 다 함께 놀 수 있잖아!"라 친구들을 설득해 함께 축구를 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1990년대]] 당시 [[TV는 사랑을 싣고]]에 소개 되었는데, 수필가 [[장영희]] 님의 《괜찮아》에 수록되어 있다.]. 또 축구하다가 시비가 붙어서 싸움이 났는데, 상대방이 '''학교 짱'''이었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도 있다. 하여간 어린 시절부터 [[교회]] 성가대 활동을 하며 음악과 가까이 자랐다. [[본인]] 말로는 [[피아노]] 외에도 [[바이올린]]도 6살 때부터 5년 간 배웠다고. == 대학 진학의 고배, 그 과정에서 가수데뷔 == 청담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언북중학교를 거쳐 영동고등학교에 진학했다. 하지만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그의 음악 사랑은 계속되었고, 엄마에게 기타를 파손당하는 일까지 있었다. 음악을 좋아하긴 했지만, 공부도 제법 잘 했었다고 한다. 학창 시절 중 [[윤상(가수)|윤상]]을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 전태관이라는 대선배를 연결시켜주는 등 꽤 교류가 있었다. 당시 [[윤상(가수)|윤상]]은 그 동네 독서실 멤버의 [[베이시스트]] 중 가장 곱상한 외모여서 뽑히게 되었다고... ~~하지만 끝엔 탈출~~ [[부모님]]은[* 하지만 아버지가 딱히 거센 반대는 하지 않은 듯하며, 지금은 희귀템이 된 신디사이저를 출장 중에 구해 그에게 선물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에게 안정적인 진로가 보장되는 의대를 권했고, 그걸 수도 없이 들은 그도 이를 당연시 여겨 고3 때 열심히 공부하여 [[고려대학교]] 의예과에 지원했지만 아깝게 낙방하고, [[재수]]를 하였다. [[재수학원]]에서 여자친구를 사귀게 되었고, 어린이날에 함께 [[경춘선]] 기차를 타고 춘천으로 놀러 갔었는데, 이 날의 기억이 훗날 〈[[춘천 가는 기차]]〉의 모티브가 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재수 생활도 망쳤는지, 전기 모집에서 [[연세대학교]](의대인지 아닌지는 알려지지 않음)에 지원했다가 떨어졌고, 후기 모집에서는 안정하향지원을 하여 [[홍익대학교]] 전기제어공학과에 합격하게 된다. 그 이후 한동안 그는 연고대 두 학교만 생각하면 이를 벅벅 간다고(...) 한다. 이후 그는 지금의 홍대에서 활동하는 젊은 인디뮤지션들같이 데모 앨범을 만들며 음반 판매점에 돌리기도 했는데, 이게 인기가 꽤나 좋았다한다. 대학 합격자 발표날 고모에게 [[김수철]]의 공연 티켓을 받아 관람하던 중, 후반부에 게스트로 출연한 그룹 '[[어떤날]]'의 공연까지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그 그룹의 [[베이시스트]]인 '''[[조동익]]을 만나게 된다.''' 그는 말을 걸까 말까 고민했는데, 어느 새 그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고.(...) 당황한 [[조동익]]은 전화번호를 남긴 뒤 연락하라고 했다. 그는 바로 전화를 걸기 뭐해 한달 뒤에 연락해 그의 집을 찾아갔다. 그런 김현철에게 [[조동익]]~~의 부인~~은 [[삼겹살]]을 구워 주었다. 그렇게 [[조동익]]의 집을 자주 놀러가던 어느 날, [[조동익]]의 집에 있던 <오페라>[* 나중에 가수 [[김장훈]]이 부른 그 노래다.]의 악보를 손 봐주고 가 버렸다. 다음날 자고 일어난 [[조동익]]은 그 악보를 보고 '''이거 누가 그렸어?'''라며 김현철에게 전화를 걸어 당장 오라고 한 뒤, 그를 [[역삼동]]의 카페 「심플라이프」에 데려갔다. 그 카페는 가수 [[이장희]]의 전 부인이 운영하던 곳으로 당시 많은 가수들이 자주 찾았었는데, [[전인권]], [[최성원(가수)|최성원]], [[박학기]] 등을 만나 그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그들에게 "얘 재작년에 죽은 [[유재하|재하]]랑 비슷하지 않냐?"라는 얘기를 듣게 되고''' 이후 이들의 도움으로 그의 곡과 앨범 작업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이렇게 나온 것이 <우리노래 전시회> 3집. 당시 그는 [[홍익대학교]] 전기제어공학과 1학년 신입생이었지만 자신이 정말 하고 싶었던 음악에 완전히 빠져 있었고, 당연히 학교 생활은 뒷전이었다고 한다.~~게다가 의대를 지원했을 정도의 우등생이 대충 하향지원해서 아무데나 들어간 곳이라 그렇기도 했겠지~~ "어느 날 학교를 갔더니 동기들이 문제 풀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라고 라디오 프로에서 술회하기도 했다. 시간이 많이 걸리긴 했지만, 나중에 졸업은 하였다. 이후 그의 재능을 알아본 [[동아기획]]의 김영 사장은 보자마자 '''골프 가방에 돈을 현찰로 담아서 가져가라'''는 이야기부터 꺼냈다. 그러나 당시 김현철은 ~~정 붙이지 못하고 학교 생활을 망쳐 버린 홍익대를 때려치우고~~ 외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당시 [[브라운 대학교]]에 입학 원서를 넣고 심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다.] 이를 거부하게 된다. 21세의 가수 지망생에게 뻰찌를 맞아 자존심이 약간 상한 김영 사장은 김현철을 다시 만났을 때, '''그 골프가방에 현금 3,000만 원을 미리 넣어 두었다.''' 김현철은 바로 [[동아기획]]과 계약하게 된다.[* 이 때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유영석도 함께 들어갔다. 이 둘은 당시 동아기획의 차기 핵심 멤버로 꼽힌 기대주였고 기대에 부응하듯 차례차례 히트치게된다.] 이 앨범이 바로 자신이 직접 앨범 전체를 작사, 작곡, 프로듀스하여 [[1989년]]에 발표한 1집 "김현철 Vol.1"이다. 이 앨범에 수록된 〈[[춘천 가는 기차]]〉가 상당한 히트를 치게 된다. 또한 동 앨범에 수록된 〈아침 향기〉[* '아침향기'는 김현철이 고교 시절 활동하던 밴드명으로, 6집의 '아침의 그 노래는'이라는 곡도 이 당시에 썼던 곡이다.]"라는 곡은 고등학교 시절 만든 곡을 다듬어서 수록한 것이라고 한다. 그의 동반자였던 [[조동익]]도 받쳐 주는 등 세션 진영도 화려했다. 이 앨범의 성공으로 꽤 이른 나이에 [[싱어송라이터]]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김현철의 1집과 2집은 비록 당시에는 아는 이들만 아는 앨범이었지만, 소년적인 감성을 세련된 퓨전 재즈 양식에 담아낸 명반으로 평가받았다. 그 중 1집은 [[대한민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17위에 선정되는 등 당시의 명문 레이블인 [[동아기획]]의 마지막 적자로 평가받았다. == 대중적 지명도를 높인 이후 == 그러나 1집 활동을 마친 후 교통사고를 크게 당해 뇌출혈 등으로 생사의 고비를 넘긴 적이 있었다. 그래서 2년 동안 활동하지 못하다가 [[1992년]]에 2집을 발표하며 활동을 재개했다. 이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인해 군대는 면제. 같은 해에는 영화 《[[그대 안의 블루]]》의 OST를 작업하며 [[이소라(가수)|이소라]]와 불렀던 동명의 곡이 큰 인기를 끌며 대중적 지명도를 높였고, [[1993년]]에 발표한 3집〈달의 몰락〉이 빅 히트하며 인기가수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 [[1995년]]에 발표한 4집에서는 〈나를〉과 〈왜 그래〉가 인기를 얻었고 앨범 프로듀싱 및 작곡가로 참여한 [[이소라(가수)|이소라]]의 1집이 큰 성공을 거둔다. 특히 직접 곡과 가사를 도맡았던 〈난 행복해〉의 인기는 대단한 것이어서 무명의 신인 가수 이소라를 단숨에 전국구 가수로 끌어올렸다. [[1996년]], 5집의 〈일생을〉이 대중적인 성과를 거두었으나, 극도의 도회적 세련미를 추구한 그의 음악은 데뷔 당시의 것에서 너무도 멀어져 버려 아쉬워하는 음악 팬들이 많았다. ~~가요계의 [[최동훈]];~~후술된 표절 시비와 맞물려 [[1990년대]] 중후반 김현철에 대해서는 호오가 극명히 갈리는 모습이었는데, 당시 대중음악 팬덤에서는 '만약 김현철이 요절했다면 [[유재하]]처럼 되었을 것이다' 와 같은 투의 분석을 낯설지 않게 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변절했네 뭐네 얘기해도, 당시 브라스 편곡에 있어서만큼은 국내 뮤지션 중 따를 자가 드물었다는 평 또한 일반적이었다. 항상 음악만은 열심히 해 왔던 셈. [[윤상(가수)|윤상]], [[이승환]], [[토이]], [[전람회]] 등과 함께 [[1990년대]] 웰메이드 음악의 전성기를 이끌던 한 축이었다. 하지만 [[2006년]] 9집을 발표한 이후로 음악 활동이 거의 없어, 동료들에 비해 긴 공백기를 지니고 있다. 2012년 당시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10집 작업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지만, 현재까진 [[답이 없다]]. 특히 이소라와 진행한 공동 작업에서 여러 고급스러운 작업물을 내놓으며 많은 관심을 받았다. [[유재하]] 10주기 추모 앨범에서도 원곡의 스타일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현대적인 편곡과 프로듀스로 양질의 트리뷰트 앨범을 만들었다는 평을 받았다. [[2000년대]] 중반에는 어린이들의 순수한 동심을 담은 노래를 만들어 보급한다는 취지로 '키즈 팝'이라는 타이틀의 앨범 두 장을 발매하기도 했다. 동요 앨범이지만 성인이 꼼꼼히 듣기에도 음악적으로 나무랄 곳이 거의 없다는 평. 그의 앨범의 특징이라면 거의 전곡을 자작곡 내지는 공동 작업의 결과물로 배치하며, 가장 최근의 작업이었던 9집([[2006년]])을 제외하고는 전 앨범에 연주곡을 집어넣는 것 등, 싱어송라이터다운 면모를 보이고 있다. 9집에서는 당시 데뷔도 하지 않았던 [[노 리플라이]]의 멤버 권순관의 재능을 알아보고 공동작업을 하기도 했다. == 흑역사 == 나름대로 베테랑 뮤지션으로 [[대한민국]] 대중음악계에 발자취를 남겼지만, [[표절]]과 관련된 [[흑역사]]도 여럿 있다. 꽤 야심차게 준비한 앨범이었던 4집 《Who Stepped on it》의 타이틀곡인 〈나를〉의 후렴부가 [[일본]]의 퓨전 재즈 그룹인 [[티스퀘어]]의 연주곡 〈Twilight in upper west〉의 클라이맥스 부분을 완전히 베낀 것으로 판명되어 표절 시비가 일어났다. 그 후에 나온 앨범들이 안타깝게도 4집 앨범의 퀄리티를 넘어선 적이 없다.[* 여기에 대해서는 그의 브라스 활용이 절정에 달했던 6집이나, 데뷔 시절의 감성을 일정 부분 회복했다고 평가받는 9집을 좋아하는 이들도 있다.] 더불어 [[이문세]]가 부른 〈난 괜찮아〉[* 〈[[조조할인]]〉이 수록된 [[이문세]] 10집 《화무》에 수록된 곡이다. [[이문세]]의 9~11집을 김현철이 프로듀싱했다.]를 작곡했는데, 이 노래도 Bobby Caldwell이 부른 〈China〉의 표절로 드러나면서 [[이문세]]의 경력에도 오점을 남겨 버렸다.[* 여담으로 이 곡의 [[뮤직비디오]]에 ~~절대[[동안]]~~ [[황신혜]]가 출연했다.] 이때문에 "김현철의 음악은 2집까지만 듣고 3집부터는 스킵해라"라는 얘기가 엄청 많이 나온다. 여기에 대해서 어느 인터뷰 구절이 하나 있다. 판단은 각자 알아서 하자. > 한 때 '나를...'이라는 곡 코러스 라인이 티 스퀘어(T-Square)의 〈Twilight In Upper West〉와 비슷하다는 얘기가 떠돌았었습니다. 거기에 대한 김현철씨의 입장은 어떠신지요? > 김현철 :그 게 음악을 좀 하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리크'(lick)라는 게 있어요. 일종의 '시퀀스'란 게 있는데, (직접 코러스 라인을 흥얼거리며) "띠라란~ 따리리라란~" 그게 이제 비슷하다는 건데. 티 스퀘어는 거기서 발전시켜 나갔고 저는 그 뒤에 리크를 갖고 발전시켜 나간 거죠. 그러니까 그건 어떻게 보면 우연의 일치일 수 있는데 그 뒷부분을 좀 보고 나름대로 "아, 저 사람이 저거 표절이 아니다. 나름대로 리크를 이렇게 이렇게 발전시켜 나갔구나", 근데 우리나라는 그런 시스템이 안 되어 있으니까 일단 멜로디가 똑같으면 다 똑같은 거고. 우리나라, 그렇잖아요. 하여튼 누구에게 나쁜 일이 생겼으면 다 자기가 전문가에요.(웃음) "그 노래 아냐?", "그 노래 그 노래하고 똑같지?" 뭐 이런 식으로. 저는 절대 그렇게 안 보구요. 그 다음에 그건 곡 자체 분위기도 틀렸고, 어쨌든 그게 문제가 아니라 '''그냥 요즘에는 편곡을 베껴가지고, 그러니까 누구의 편곡을 쫙 베낀 뒤 거기에 노랫말만 다시 붙이는 저는 그런 게 오히려 더 위험한 것일 수 있다고 봐요. ''' == 라디오 DJ == [[1994년]] 4월부터 3년 간 [[MBC FM4U|MBC FM]]에서 심야시간대에 '''<김현철의 디스크쇼>'''를 진행했다. 방송 초기 시간은 밤 11시부터 1시까지였으나, [[1996년]] 심야 시간대에 <[[FM 음악도시]]>가 편성되면서 방송시간이 한시간 앞당겨져 밤 10시부터 자정까지로 바뀌었다. 1995년 당시 앞시간대인 <[[FM데이트]]>(밤 9시-11시) 진행자가 [[고소영]]이었는데, 이들은 서로를 "이웃", "옆집 총각"으로 부르며 친분을 과시했다.[* 이후 이 호칭은 FM데이트의 후임 DJ [[박소현]]이 물려받는다.] 4집 수록곡 <왜 그래>의 "그만 만나"라는 여성의 나레이션은 [[고소영]]이다. [[파일:/image/108/2012/02/09/2012020913354067019_1.jpg]] 이 당시 경쟁 프로그램이던 [[KBS 2FM]]의 <FM인기가요>[* [[2001년]] 3월 [[KBS 제2라디오]]로 이관되었다가 종영되었다.]는 [[유영석]]이, [[SBS 러브FM|SBS 라디오]]의 <기쁜 우리 젊은 날>은 [[윤종신]]이 진행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5090500209135001&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5-09-05&officeId=00020&pageNo=35&printNo=22960&publishType=00010|1995년 9월 7일 동아일보에서 'DJ 3파전'이라고 소개될 정도였다.]] 한편 김현철은 자신을 '''국가대표 DJ'''라고 칭했다.[* 팬들은 다 알겠지만, 이 세 명은 서로 격없이 친하며 서로간의 음악세계를 누구보다 인정해주는 친우. 노총각이란 기믹으로 [[이현우(가수)|이현우]], [[윤상(가수)|윤상]], 김현철, [[윤종신]] 등이 함께 했던 적이 있다. [[2000년대]] 후반 들어서 김현철은 방송 등에 유영석과 함께 참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둘은 학창 시절부터 친해 호형호제하는 사이.] 하여간 당시 '밤의 문교부장관'이라 불리던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 다음으로 인기 많았던 게 이 디스크쇼였다.''' [[응답하라 1994]]에서 조윤진이 서태지의 집 앞에서 기다리는 장면에서 <김현철의 디스크쇼> 당시 방송 일부분이 나온다.''' 이후 2000년~2002년경 [[KBS 2FM]]에서 자정시간대에 <뮤직플러스>를 진행하였고, 2007년 [[MBC FM4U]]로 돌아와 오후 4~6시에 [[김원희]]가 하던 <[[오후의 발견]]>을 반년 가량 진행했다. 이후 조용하다가 2013년 9월부터 다시 <[[오후의 발견]]>의 DJ로 복귀해, 1980~1990년대 추억의 가요들을 리퀘스트 형식으로 틀어주며 호응을 얻고 있는 중. 그의 라디오 진행은 <디스크쇼> 때부터 즉흥적인 멘트구사, 이른바 [[개드립]]에 특화되어 느끼하다가도 엉뚱한 데서 웃기는 데 매력이 있었다. == 트리비아 == 초창기 [[리즈 시절]]에는 은근히 [[강원도]]를 좋아한 듯하다. 데뷔곡으로 큰 인기를 얻은 '춘천 가는 기차' 부터, 3집 타이틀 연주곡인 '횡계에서 돌아오는 저녁'도 그렇고.--군 면제됐으니 당연한 거 아님?-- 그런데 정작 본인은 현재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거주하며, 성남아트센터의 홍보대사로 위촉되어 자주 공연을 기획하고 있다고 한다. 아마도 젊은 시절 여행을 다니면서 자연미가 돋보이던 [[강원도]]의 매력에 심취해 자신의 음악 소재로 표현한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파일:/image/001/2002/06/28/kp1_2020628k0521.jpg]] 2002년 6월 [[발레리나]] 이경은 씨와 결혼했다. <Loving You>가 타이틀곡으로 나왔던 2002년 8집 <그리고 김현철...>은 '''결혼 날짜를 미리 잡아놓고 아예 아내에게 불러준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던 앨범이라고 한다.''' '''뜻하지 않은 삼계탕 프로포즈''' 에피소드로 유명하다. 원래는 크리스마스 때 호텔 식당을 예약해 놓았는데 가는 길에 교통사고가 나버려 시간이 지연되어 예약이 아예 취소가 되어버린 것. 주린 배를 주여잡고 삼계탕 집에 들어갔는데, 김현철은 식당 아주머니에게 닭 안에 반지를 집어넣어달라고 한다. 그러나 아내가 삼계탕 먹다말고 갑자기 나가버렸다. 당황한 김현철은 한손은 아내를 잡고, 한손은 닭 구멍안으로 밀어넣어 반지를 찾았다. 근데 반지가 깊숙이 들어갔는지 오래 걸렸다. 캐치한 뒤 주머니에 보지도 않고 집어넣은 다음 차 안에서 아내에게 반지를 보여주려는데, 그 반지에는 '''찹쌀, 인삼찌끼, 기름 등이 덕지덕지 묻어있었다.'''(...) 그래도 정성에 감격했는지 서로 눈물을 흘렸다고. 슬하에 세살 터울의 두 아들 이안, 정안이를 두고 있다. [[2006년]]에 진행을 맡았던 [[한국교육방송공사|EBS]]의 <60분 부모>에서 '''[[정관수술|나는 이제 의학적으로 셋째를 낳고 싶어도 못 낳는다]]'''며 묶었음을 시인했다. 현재 연예기획사 후너스엔터테인먼트(현재는 Fe 엔터테인먼트)의 대표로 재직 중이다. 2009년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스]]에서 밝힌 것에 따르면 '''회사를 장인어른과 같이 설립했다고 한다.'''[* 본인과 처가 모두 재산 좀 있는 집안이다. 김현철의 부친이 건설회사 중역이라면, 장인은 화학자재회사 사장. 애초에 부인이 발레리나로 미국 유학을 갔고, 김현철과 아내가 만난 것도 미국 교민 연회장이었다.] 이 회사는 현재 [[심현보]] 등 가수는 물론이고 [[김갑수]], [[김뢰하]] 등 배우들까지 보유하고 있다. 유명한 [[자전거]]광이다. 일주일에 한두번은 자택인 분당에서 출발해, 강남에 있는 회사 사무실을 찍고 오후에 여의도 MBC까지 라디오를 진행하러 온다고 한다. MTB 자전거복 차림 그대로. 2014년 5월 [[라디오 스타]]에 함께 출연했던 [[배철수]] 옹은 "옛날엔 천재였는데 이제는 동네 아저씨"라며 디스했고, [[박준형(god)|박준형]]은 “분장실에서 만났는데 빨간 트레이닝복을 갖춰 입고 가위들고 코털 깎더라"고 했다. 아아.. 요리에도 관심이 많아 프로그램을 하기도 했다. [[OBS]] 개국 초기 데일리 요리 프로그램이었던 <김현철의 아이러브 쿡>과 푸드채널([[올리브(CJ E&M)|올리브]] 채널의 전신)의 유아요리 프로그램인 <김현철의 베베쿡>이 그것이다. 베테랑 뮤지션이 [[이유식]]을 만들고 있었다.... [[김원준]], [[이성재]]와 더불어 [[삼성 라이온즈]]의 광팬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의 서울 원정 경기가 있을 때 자주 테이블석에서 경기를 관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진갑용]]의 부인과 친분이 있어서 [[진갑용]]의 응원가도 만들어 줬고, [[최형우]]의 결혼식 당시 축가도 불러주는 등 선수단들과의 친분도 괜찮은 편. 2012년 당시 [[MBC SPORTS+|엠스플]]에서 특집으로 방송한 '나는 야구인이다'의 진행을 맡기도 했다. 또한 [[2016년]] [[3월 6일]]자 [[복면가왕]] 방영분에서 [[김구라]]가 자신을 [[두산 베어스]] 팬으로 지칭하자 본인은 삼성 팬이라며 김구라를 타박하는 모습이 나오기도 했다.[* 참고로 '''[[김구라]] 역시 [[삼성 라이온즈]] 팬'''이다. 방송에서 [[인천광역시|인천]] 토박이 출신임을 강조해 [[SK 와이번스]]나 [[넥센 히어로즈]]의 팬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으나 본인이 [[마이 리틀 텔레비전|마리텔]] 시험방송에서 직접 삼성 팬임을 인증했다. 자세한 건 항목 참고.] 여기에도 에피소드가 있는 게, 하루는 라디오 방송 중 "[[두산 베어스|두산]]이 졌습니다. 미련곰탱이 어쩌고(내용은 정확치 않아 추가바람)"라는 '''청취자의 사연을 그대로 읽었는데''', 김현철이 [[두산 베어스]]를 라디오에서 디스한 줄 안 [[두산 베어스|두산]] 팬들이 라디오 게시판을 습격했다고 한다.(...) [[호서대학교]] 교수를 거쳐 현재는 [[경희대학교]]의 교수로 재직 중. 2014년 5월 방송된 라디오스타에서 MC [[규현]]에게 "C 줄만해서 C학점 줬다"라고 했고, [[조권]]에게는 '''"요즘 할 일 없어서그런지 학교 자주 나와요"'''라며 아주 조용히 디스했다.(...) --교수가 학생한테 학교 자주 나온다고 뭐라 하는 크라스-- 드라마에도 간혹 출연하고 있으며, [[2014년]] 2월부터 5월까지 방송한 [[한국교육방송공사|EBS]]의 어린이 드라마인 <플루토 비밀결사대>에 전직 대기업 연구원이자 주인공 아버지인 이상식 역할로 출연했다. 아들을 위해 드라마 출연을 결심했다고. 4집에 수록되어 있는 나름 '''댄스곡'''인 <왜 그래>를 [[흑역사]]격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모다시경]]이 생각나는 건 기분 탓-- 2015년 6월에 1996년 당시 [[가요톱10]]에 출연해[* 케이블 채널 [[GMTV]]에서 하루 세번 방송 중이다.] <왜 그래>를 부른 김현철을 본 한 청취자가 그 날 [[오후의 발견]] 생방송에 "<왜 그래> 부르시는 거 잘봤습니다"라고 사연을 보내자 기겁했다. PD가 기습적으로 <왜 그래> 전주를 틀자 왜 트냐고 하기도... 활동 당시 댄스를 시킨 매니저가 미웠다고 한다. 1996년에 "환장"이라는 라이브 앨범을 한 장 내는데, 이 콘서트 동영상을 보면 <왜 그래>의 댄스는 백댄서들도 그렇지만 특히 김현철 본인의 율동은 차마 오글거려서 봐 줄 수가 없다.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의 패널로 참여하며, 전문가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캐릭터는 '성대 전문가'다.~~요즘은 '가요계의 삼촌'이라더라~~ == 정규 앨범 목록 == [[김현철(가수)/음반 목록]] 항목 참조. [[분류:한국 가수]] [[분류:싱어송라이터]] 김현철(가수)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