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http://www.geocities.co.jp/WallStreet/2687/jsdf/15nagano.jpg 永野茂門. 1922-2010. [목차] == 개요 == [[일본]]의 [[군인]], [[자위관]]. 14대 [[육상막료장]]과 [[국회의원]], [[법무장관|법무대신]] 등을 지냈다. == 생애 == 1922년 [[오이타]]에서 태어났다. 1941년에 55기로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고 종전 당시 계급은 [[대위]]였다. 1951년에 [[경찰예비대]]에 입대했고 [[병과]]는 [[통신]]이었다. 1978년에 [[다카시나 다케히코]]에 이어 육상막료장에 오른다. 통신 특기로는 몇 안 되는 [[육상막료장]]이다.[* 일반적으로 [[육자대]]에서 [[보병|보통과]], [[기갑]], [[포병|특과]]가 육막장이 되고 [[해자대]]에서는 [[수상함]] [[항해]]와 [[조종|항공]]이 된다. [[공자대]]는 대부분이 [[조종]]이나 항공정비, [[방공관제]], [[방공포병|고사특과]]에서 [[항공막료장]]이 나온 바 있다.] 1980년에 미야나가 간첩 사건[* [[소련군]]의 정보기관인 GRU가 육자대에 간첩행위를 한 사건. 당시 육장보였던 미야나가 유키히사(宮永幸久)가 소련군 관계자와 만나 [[중국군]] 관련 정보를 넘겨줬다. 미야나가 본인은 소련에게서 정보를 캐내기 위해 기브 앤드 테이크로 했다곤 하지만 현금을 받은 것 때문에 문제가 되었고 경시청([[일본 경찰]])에게 걸려 잡혔다. 미야나가는 징역 1년을 받았다. 미야나가가 적발되고 두 달 뒤인 1980년 3월에 [[모스크바]] 방위주재관들이 독이 든 보드카를 권유받다가 죽을 뻔한 사건이 일어났다.] 으로 [[국방장관|방위청장관]]이었던 구보타 엔지(久保田円次)와 사직했다. 육막장 후임자는 [[스즈키 도시미치]]였다. 퇴직 후에 1986년에 [[자민당]] 공천을 받아 비례대표로 당선됐다.[* 자민당의 대승으로 비례대표 순번 25명 중 21번인데 당선됐다.] 1993년에는 탈당하여 [[신생당]]에 참여했다. 1994년에 [[호소카와 모리히로]]가 사임하자 [[하타 쓰토무]]가 취임하면서 법무대신을 맡았는데 [[자위관]] 출신 장관이 나오는 게 [[문민통제]]에 맞지 않단 지적이 나왔다. 그리고 법무대신이 되자 [[마이니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난징대학살]]은 꾸며낸 것 같다고 말해 11일만에 파워경질당했다.[* 최단 재임은 아니다. 1988년에 4일 만에 법무대신에서 사임한 사례가 있다.] 2010년 폐렴으로 사망했다. [[분류:자위대/자위관]] [[분류:일본군/군인]] 나가노 시게토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