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노 시게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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永野茂門. 1922-2010.

1 개요

일본군인, 자위관. 14대 육상막료장국회의원, 법무대신 등을 지냈다.

2 생애

1922년 오이타에서 태어났다. 1941년에 55기로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고 종전 당시 계급은 대위였다.

1951년에 경찰예비대에 입대했고 병과통신이었다. 1978년에 다카시나 다케히코에 이어 육상막료장에 오른다. 통신 특기로는 몇 안 되는 육상막료장이다.[1] 1980년에 미야나가 간첩 사건[2] 으로 방위청장관이었던 구보타 엔지(久保田円次)와 사직했다. 육막장 후임자는 스즈키 도시미치였다.

퇴직 후에 1986년에 자민당 공천을 받아 비례대표로 당선됐다.[3] 1993년에는 탈당하여 신생당에 참여했다. 1994년에 호소카와 모리히로가 사임하자 하타 쓰토무가 취임하면서 법무대신을 맡았는데 자위관 출신 장관이 나오는 게 문민통제에 맞지 않단 지적이 나왔다. 그리고 법무대신이 되자 마이니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난징대학살은 꾸며낸 것 같다고 말해 11일만에 파워경질당했다.[4]

2010년 폐렴으로 사망했다.
  1. 일반적으로 육자대에서 보통과, 기갑, 특과가 육막장이 되고 해자대에서는 수상함 항해항공이 된다. 공자대는 대부분이 조종이나 항공정비, 방공관제, 고사특과에서 항공막료장이 나온 바 있다.
  2. 소련군의 정보기관인 GRU가 육자대에 간첩행위를 한 사건. 당시 육장보였던 미야나가 유키히사(宮永幸久)가 소련군 관계자와 만나 중국군 관련 정보를 넘겨줬다. 미야나가 본인은 소련에게서 정보를 캐내기 위해 기브 앤드 테이크로 했다곤 하지만 현금을 받은 것 때문에 문제가 되었고 경시청(일본 경찰)에게 걸려 잡혔다. 미야나가는 징역 1년을 받았다. 미야나가가 적발되고 두 달 뒤인 1980년 3월에 모스크바 방위주재관들이 독이 든 보드카를 권유받다가 죽을 뻔한 사건이 일어났다.
  3. 자민당의 대승으로 비례대표 순번 25명 중 21번인데 당선됐다.
  4. 최단 재임은 아니다. 1988년에 4일 만에 법무대신에서 사임한 사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