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분류:한국군/군인]] * 상위 항목 : [[대한민국 국군/인물]] ||||<table align=right><#030> {{{#ffffff '''남재준(南在俊)'''}}} || |||||| http://tv03.search.naver.net/nhnsvc?size=120x150&quality=9&q=http://sstatic.naver.net/people/128/20070202140949197226362.jpg?width=200 || ||||||<#030> {{{#ffffff '''1944년 ~'''}}} || ||<#2e8b57><:> {{{#ffffff '''복무'''}}} ||<#8fbc8f> 대한민국 육군 || ||<#2e8b57><:> {{{#ffffff '''기간'''}}} ||<#8fbc8f> 1969년 ~ 2005년 || ||<#2e8b57><:> {{{#ffffff '''임관'''}}} ||<#8fbc8f> 육사 25기 || ||<#2e8b57><:> {{{#ffffff '''최종계급'''}}} ||<#8fbc8f> 대장 || ||<#2e8b57><:> {{{#ffffff '''최종보직'''}}} ||<#8fbc8f> 육군참모총장 || |||||||||| [[대한민국 국군]]의 [[한미연합군사령부]]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부사령관]] || || 14대 [[이종옥]] || → || 15대 남재준 || → || 16대 [[신일순]] || |||||||||| [[대한민국 육군]]의 [[육군참모총장|참모총장]] || || 35대 [[김판규(육군)|김판규]] || → || 36대 남재준 || → || 37대 [[김장수]] || |||||||||| [[대한민국]]의 [[국가정보원/원장|국가정보원장]] || || 9대 [[원세훈]] || → || 10대 남재준 || → || 11대 [[이병기]] || [목차] == 소개 == [[대한민국]]의 [[군인]] 겸 [[공무원]]. 前 [[육군참모총장]] 및 前 [[국가정보원]]장. [[하나회]]의 훼방 때문에 '''육군최다 진급누락자'''라는 기록도 가지고 있다. 국정원장으로써 [[통합진보당]]을 개발살내고 추징미납금 은닉자 [[전두환]]을 참교육한 인물. == 일생 == [[1944년]] [[10월 20일]]생. [[서울특별시|서울]] 출신으로 [[배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9년]] [[육군사관학교]] 25기로 [[임관]]했다. === 군인 시절 === 소신있고 강직한 성격을 가진 그는 비[[하나회]] 출신으로 [[제5공화국]] 시절 [[소령]]에서 [[중령]]으로 [[진급]]할 때 한번에 하지 못하고 4차를 넘긴 끝에 했으며, [[대령]] 진급도 3차에서야 할 수 있었다. [[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13/07/23/201307230500006/201307230500006_3.html|新東亞 2013년 8월호 기사]] [[12.12 군사반란]] 때 [[정병주]] 특전사령관의 [[비서실장]]으로 반란군측의 총에 맞아 숨진 고 [[김오랑]] 중령이 그와 육군사관학교 동기인데, 그의 무덤을 찾아가 울분을 터뜨린 일로 밉보인 탓이라고 한다. [[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04/09/22/200409220500015/200409220500015_3.html|新東亞 2004년 10월호 기사]][* 이를 계기로 국정원장되자마자 남북정상회의록 공개보다 더 먼저 한일이 전두환 은닉재산 대공개(물론 공식적으론 검찰이 발표했지만 실질적으로 남재준이 추적한걸 발표한거에 가깝다)로 노태우 추징금완납을 실질적으로 이끌게 되었고 전두환 차남은 노역신세가 되었다.] [[노무현]] 정권 때 육군참모총장으로 있으면서 그 유명한 [[병영생활 행동강령]]을 시행하고, 폐타이어로 축성되어 있던 '전국의 모든 전투진지'를 콘크리트 블록 등으로 재구축하는 일대 사업을 추진했다. 육군 내 각종 가혹행위나 구타 등의 [[병영부조리|부조리]]를 청산하고 환경보호에 앞장선 것 등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실제 전투진지 재구축 당시 각 일선부대에선 예산 및 이런저런 이유로 [[가라]]를 쳐서, 비만 오면 무너지는 등 꽤 허술하게 재구축된 진지가 상당히 많았다. 군 전통의 악습 '보여주기'의 병폐가 좋은 의도를 말아먹은 셈. 재밌는 건 당시 현역 장병들에게 '쌩 노가다 시키고(진지재구축) 고참병들 권위 깎는다(행동강령)'고 평가절하 당하곤 했었다. ~~진짜로 아무 것도 없는 자기들 권위를 깎는다는 이유로 과감하게 육군 대장을 욕하는 대한 남아의 패기를 보라~~ [[2005년]] [[대장(계급)|대장]] 예편 후 [[서경대학교]] [[군사학과]]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07/02/06/200702060500015/200702060500015_1.html|2007년 남재준 대장 인터뷰]] 이때 있었던 육군사관학교 특강에서 "생도들은 내가 부러운가? 나는 생도들이 너무 부럽다. 생도들은 얼마든지 육군 참모총장이 될 수 있지만, 나는 다시는 생도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꿈이 있는 생도라는 신분에 감사해라"라는 명언을 남기며 생도들 사이에서 이름을 날렸다 남재준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