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상위 항목: [[왕비]]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6/66/NamPhuong.jpg ||http://cms.kienthuc.net.vn/static/images/contents/maianh/20130628/ktt_28-6_namphuong2_kienthuc.jpg || ||황후의 정장을 한 남 프엉 황후||이건 [[출산]] 직후의 사진. 아기는 [[장남]]인 바오 롱.|| 1914.12.14.~1963.9.16. Nam Phương, 남방황후(南芳皇后) 원유씨(阮有氏) [[베트남]] 제국 마지막 황제 [[바오다이]]의 정비. 절세미인으로 유명하다. 남 프엉이라는 이름은 '남쪽으로 부터 오는 향기(南芳)'라는 뜻이다. 꽃다울 방(芳) 자를 쓴다. 휘는 응우옌흐우티란(Nguyễn Hữu Thị Lan, 원유씨란 阮有氏蘭). 베트남 남부 재벌 가문의 딸이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라서, [[불교]]를 믿는 황실에서 가톨릭 신앙 유지를 조건으로 바오다이의 황후가 되었다고 한다. 내막을 살펴보면, 식민통치를 하는 [[프랑스]]가 바오다이를 천주교도로 바꾸고자 하였고 바오다이의 황후로 천주교도를 고른 게 남 프엉이었던것. 1934년에 결혼했다. 바오다이는 프랑스 유학 후에도 천주교로 개종하지 않았지만, 남 프엉 황후와 아들은 천주교도였다. 2남 3녀를 두었다. [[한국]]으로 치면 [[이방자]]와 비슷한 포지션으로, 실제로 남 프엉 황후도 자선활동 같은 걸 하며 ~~게다가 예쁘니까~~ 사랑 받았다고 한다. [[호치민]]이 왕가에 대한 예우로 1만 달러에 달하는 돈을 생활비로 주었으나, 폐위된 황후는 그 돈을 모두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지금 시각으로 봐도 빼어난 미인이라 그런지 [[베트남]]에서는 지금도 상당히 인기가 있다고 한다. 물론 남편인 [[바오다이]]는 전혀 인기 없고. 바오다이는 소문난 바람둥이에다 공식적인 [[후궁]]도 몇 명 두었고 그녀 사후 재혼도 했지만 다들 첫 황후보다 못했다는 평이다. 워낙 옛날 사람이라 돌아다니는 사진도 얼마 안 되지만 요즘 같았으면 언론의 빅스타였을 듯. 여담으로 [[응우옌 왕조]]의 역대 황후들 중에서 [[추존]]이 아니라 살아 있을 때 황후 칭호를 받은 유이(唯二)한 사람이다.[* 다른 한 사람은 왕조의 초대 황제 가륭제의 첫 황후인 투아티엔(承天高皇后, 승천고황후).] 1963년 49세를 일기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분류:황후]] 남 프엉 황후 문서로 돌아갑니다.